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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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화장품의 위력 (1) 2019/04/10 PM 09:40

화장품의 위력

 

 

여기 남자분들 중에 화장품 쓰는 사람 손? 오 생각보다 적구나. 참 나도 화장품이란 건 전혀 몰랐어. 그러다 면접 준비를 하는데 친구가 화장 좀 하라더군. 평소라면 남자가 어디! 라며 꼰대기질로 넘어갔겠지만, 당시에는 절박했던 터라 친구말대로 했어.

 

문제는 친구 또한 한평생 개기름으로 살아온 남정네였다는 거지. 둘이서 이마트 화장품코너에 들어갔는데, , 뭘 알겠어. 그저 점원누나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듣고 제품을 샀지. 친구는 코에 점박이 제거하는 거 샀는데, 그걸 뭐라고 하더라. 코팩? , 블랙헤드. 그걸 사고. 난 자외선 차단 겸용 비비크림을 샀어. 내 피부색과 비슷한 갈색으로.

 

대망의 면접날 새벽, 잡티를 없앤다며 열심히도 발랐지. 근데 바른 거랑 안 바른 거랑 차이가 없는 거야! 양이 부족한가 싶어서 50미리 쥐똥만한 걸 푸드득 사정없이 짜냈지. 바르고 또 바르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됐어.

 

그 연한 똥색 크림이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어느새 새하얀 와이셔츠 칼라에 안착했더군. 아아. 거기에 화장품 만진 손은 아무리 씻어도 똥색이 묻어나와. 뭘 만질 수가 없어! KTX 시간은 다가오는데 사태는 심각해지고, 갑갑한 정장 속에 땀은 쏟아지고. 줄줄 흐르고! ! 망했어요!

 

그날 이후로 화장하는 여성분들을 우러러 봐. 그 환장할 작업을 매일 아침마다 한다는 거야? 어우! 요즘은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라는데 난 따라가지 못하겠어. 도저히.

 

아무튼, 한 동안 화장품과는 머나먼 이별을 했지. 그러다 극적으로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도 면접 때문이었어. 저번과 다른 게 있다면 파트너였지. 같은 학교 여자! 후배님. 화장품 한번 써보실래요? 그럼요!

 

전문경력자는 확실히 다르더라고. 위치는 올리브영, 거기다 50% 세일기간을 이용한 경제적 구매까지. 비비크림의 아픈 추억을 털어 놓으니 그럴 걱정 없는 투명한 썬로션을 골라줬지. 썬로션에도 뭐가 그리 많은지. 무기자차, 유기자차, 혼합자차? 피부를 위해선 무기자차를 권하지만, 나같이 귀차니즘들에겐 쫙쫙 발리는 유기자차가 좋다더라고.

 

여기에 성분분석까지! 무슨 무슨 틸레이드, 벤조 어쩌고저쩌고. 확실히 기억나는 건 피이지! 이것들은 별로 안 좋다며? 발암물질이라던데. 좁쌀보다 작게 적힌 성분구성표를 모조리 읽은 다음 제일 좋은 걸 골라줬어. 난 그저 옆에서 경이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지금도 그때 추천받은 그 제품만 써. 에뛰드 하우스의 유브이 더블컷. 홍보는 아니고, 괜찮아 괜찮아. 특히 향이! 남자목욕탕에서 나는 스킨, 로션과는 차원이 다른 산뜻한, 여성의 향이 나지. 크흠, 아까부터 성차별적 발언을 계속 한다고 느낀다면 그건 오해!

 

성적 편견이다 선입관이다 비판해도 좋아. 그러나 진심으로 말할게. 여기 남자들에게. 화장품은 꼭 여자와 상의하라고. 사랑하는 여성이면 더 좋고.

 

세일기간, 성분, 향기, 효과 때문만은 아냐.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지. 내 생애 통 털어 그때만큼 여성과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화를 한 적이 없어! 어색한 웃음도, 공백을 메꾸기 위한 각색도 필요 없었지. 그저 감탄하고, 모르는 걸 묻고, 듣고, 존중하고. 완벽한 하모니. 그러다 피부와 피부라도 슬쩍 스치면 따따봉이고.

 

이보다 더 좋은 공감이 어딨어. 어제 내 꿈에 너 나왔어. 이런 뒤도 없는 멘트보단 4조배 낫지! 전국의 순수한 남성들이여! 여성분과 화장품 가게를 가라! , 반대도 되겠다. 자상한 여인들이여! 하루 정도는 남자 따라 다나와 컴퓨터 코너를 항해하자! 그러다 폰허브라는 항구에 들려도 좋고! 어오...워닝 워닝.

 

흐음. 그래서 그녀와 어떻게 됐냐고? ...., 모쏠인거 다 알잖아. 면접 떨어지고 나서 연락할 용기도 없었어. 이 멍청이! 아 정말. 나란 놈은 대체.

 

그대들에겐 화장품의 가호가 충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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