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방주
기억나? 근혜누님이 대통령이었을 때. 창조경제! 그게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뭐라도 지껄여야 했으니. 우리 공사의 발전방향을 창조경제의 관점에서 말해보시오. 이딴 질문들. 면접관도 몰랐을 거야.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그 환장할 질문에 창조적 구라를 짜내느라 창조성을 발휘했으니, 된 거지 뭐.
창조경제 못지않게 어려운 말이 있어. 창조과학! 정말 안 어울리는 두 단어가 떡하니 붙었네? 성경과 과학을 어떻게든 묶어보려는 노력! 보고 있으면 눈물겹기까지 해. 그분들에겐 뭔가 투철한 사명감이 느껴지지. 보통의 과학자들에겐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있어.
종교적 맹신이라기엔 뭔가 설명이 안 돼. 지성의 보고라는 대학교수님들 중에서도 창조과학에 열일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늘 의문이었어. 냉철하며 F폭격기라고 불리는 우리 학과 교수님. 그런데 한 편으론 기도를 꼭 드리는 모습에 충격 받았다고. 내 편협한 고정관념인가? 대학 교수정도나 되는 지성들은 종교와 담쌓을 거라는 거? 살아보니 전혀 아냐. 오히려 교수님들 신앙심이 제일 깊더라니까.
아무튼, 난 창조과학을 믿지 않아. 성스런 구라라 생각해. 유튜브에 추천영상으로 올라올 때면 썸네일도 보지 않고 넘겨버리지.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 노아의 방주 분석! 뭔 개소리지 하려는데 제목에 교수! 라는 단어가 딱! 그래,... 교수가 뭐라고...그 단어 하나 때문에 영상을 끝가지 다 봤어. 나란 놈은 대체.
그래서 이제부터 창조과학 신봉자냐고? 아니! 아무리 교수님이라도 내 인간만능주의는 꺾지 못했거든! 그러나 다 흘려들은 건 아냐. 배와 방주의 차이도 배우고. 배와 방주 차이 아는 사람? 배는 키도 있고, 노도 있고 하는 건데, 방주는 아무것도 없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통이래. 그저 물살에 몸을 맡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참 하나님 스럽지?
방주의 크기는 성경에 숫자까지 써가며 기록되어 있어. 길이 155미터, 넓이 26미터, 높이 15미터. 소재는 전나무. 미국에선 1165억을 써가며 직접 만들기도 했고. 거기에 모형으로 안정성테스트까지 했다니 놀라울 지경이야. 방주가? 아니. 과학에 대한 투철함이. 나 같이 신앙 없는 인간은 시도할 생각도 못 했을 건데!
근데 조선분야 교수님이어서 그랬던 걸까, 사회적 분석은 안하셨더라고. 에헴. 사회과학! 대학 출신으로서 말씀드립니다. 노아의 방주는 온갖 사회 부조리 결정체입니다. 왜냐고요?
일단 살인적인 노동을 요구했어. 노아에게. 그 거대한 놈을 만들라고! 오늘날도 기중기들이 사방에 붙어서 짜 맞춘 걸. 세부조건은 뭐 그리 깐깐하신지. 3층으로 해라, 방을 만들어라, 역청을 칠해라.
거기다 온갖 동물을 쌍으로 데려오라는데 미칠 노릇 아냐. 북극곰부터 저기 남극 황제펭귄까지. 심지어 공룡도 데려왔다는데 와우. 거시기 들춰가며 일일이 암수 확인하고! 데려왔다 한들 그 다음도 문제야. 거대한 동물원이 됐겠지. 사료 먹이랴, 똥 치우랴. 서로 잡아먹으려는 놈들 쥐어박으랴. 주 1680시간 일해도 모자랐겠다.
노아가 600살 때 홍수가 일어났거든. 600년 한평생 나무 깎는 노인이었을 거야. 그러다 허리 잠깐 필 때 동물 잡으러 가고. 이런 혹독한 노동환경에서도 아무 말 못했지. 24시간 하늘에서 항상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말 안 들으면 너도 수장 시킬 테니까.
이 노동착취와, 협박과, 삼림황폐화와, 곡식수탈과, 동물학대의 역사를 왜 증명하려고 하는 거야! 여기 무슨 사랑이 있어? 이걸 증명까지 해야 할 가치 있는 역산가? 오히려 하나님 변덕쟁이에, 악독한 놈에, 살인마란걸 전 인류에 들어내는 거 밖에 안 되잖아.
역시 계약할 땐 약관을 꼼꼼히 살펴야 돼. 아무 생각 없이 사인했다간 노아 꼴 나는 거지. 노예 같이 살았던 노아를 위해 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