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찾기
스승의 날인데 내 행색이 초라해서 찾아뵐 용기가 없어. 아무렴 어때. 스승이 꼭 선생님은 아니잖아. 그래, 진짜 심장에 꼽힌 가르침은 선생님 아닌 다른 분에게 배운 경우도 많아. 그 중에서 내 스스로가 스승일 때는 여파가 엄청나지.
밥상머리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된다는 걸 유치원 때 배웠어. 6살 때인가? 아빠, 엄마가 밥 먹고 있는데 난 옆에서 한발 들고 콩콩 거리고 있었지. 이상한 건 내가 왜 그렇게 업 됐는지 기억나질 않아. 엄청 하이 텐션이었는데. 그러다 고꾸라졌어. 한 손은 된장찌개가 담긴 그릇으로 직행했고. 우아아아앙! 찬 물로 씻고 말도 아니었어. 할머닌 감자를 갈아서 내 손에 덮으셨지. 민간요법이라나? 지금 생각하면 감자는 아닌 거 같아.
아무튼, 그 후로 먹는 데서 까분 적이 없어.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애들 보면 그 때 일이 떠올라. 후훗. 녀석들. 핫쵸코 세례를 받아라....왜? 너무 심한가? 그럼 갓 구운 쇠고기 패티에 코 데여라. 케첩, 마요네즈, 햄버거소스가 아주 덕지덕지 가관일거야. 노키즈존보다 확실할걸?
중학교 때는 의약품의 무서움을 알았어. 아주 화끈하게. 묵직한 아랫도리를 가진 분들은 알 거야. 여름만 되면 그곳이 가렵지. 나도 예외가 아니었어. 알보자기와 허벅지가 이어지는 부분을 벅벅 긁어댔거든. 거기다 당시 내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것 마냥 일을 벌였어. 고추 털을 잘랐.... 털 나는 게 부끄러워서 삭둑삭둑. 나만 그런 거야? 지금은 이렇지만 얼마나 순수했다고.
땀과 바짝 선 털의 조합은 환상이었어. 나중엔 손톱에 피가 보이도록 긁었지. 이래선 안 되겠다. 그렇게 찾다가 발견한 것이 맨소래담 로션! 오, 안 돼 애야. 그것만은. 소년은 몰랐어. 허벅지는 물론이고 기둥까지 싹 다 칠했지. 그 뒤는 상상에 맡길게. 그 민감한 나이에 아빠 앞에서 고추 까놓고 샤워기 대고 있었어. 반나절을! 쏴아아. 그 뒤로 약은 함부로 안 먹어.
물 하니 그것도 생각나네. 찬물에 바로 들어가면 안 된다! 이건 어른이 돼서야 배웠어. 군대에서. 혹한기훈련을 하는데 바다에 들어가라고 하더라고. 전 부대원 다. 처음엔 별 거 아니라 생각했어. 아무리 추워봤자 바단데 뭐. 심장마비 안 오게 준비운동 열심히 하고. 입수!
그 날 알았지. 진짜 오질라게 추운 물에 들어가면 추위를 느끼지 못 한다. 다만 불알이 터질 듯이 아프다! 이건 마치 전방 6미터에서 날아온 축구공에 또 다른 공 2개가 맞은 느낌이야. 얼마나 아팠으면 추운 걸 잊었다니까. 이래서 찬 물에 함부로 들어가는 게 아니구나 절감했지. 나와서도 문제였어. 소대장님이 여자였거든. 춥지? ....아닙니다. 대신 불알이 터질 거 같습니다. 이렇겐 말 못하잖아. 쪽팔려서 핫팩도 아랫도리에 대지 못했어.
반농담으로 말했지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뼈아픈 가르침들이야. 너무 아파서 잊을 수가 없어. 그래도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후회로 얼룩진 스승은 너무 부끄럽고, 자신이 미워져. 날 사랑하는 사람을 외모로 차별했어. 상처 줬지. 나만 보면 꼬리 흔들던 강아지 모모도 죽을 때까지 괴롭혔어.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을 찢고 싶을 정도로 분해. 난 죽일 놈이야.
사과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 초등학교 소녀는 내 인생에 닿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모모는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차라리 평생 후회 속에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이런 놈이 홀가분하게 죽는다니 말이 안 돼지. 그래도 앞으론 안 만났으면 좋겠어. 이런 무서운 선생님은 이젠 괜찮아. 착하게 살자... 돈 몇 푼 준다면 그새 까먹고 영혼을 팔겠지만 그래도.
너무 무거워졌네. 분위기를 뒤집어서! 스승의 날인데 기억나는 선생님을 떠올려 볼까! 음...처음으로 떠오르는 분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쌤! 시스루의 참맛을 알게 해 준 분. 인생 최초 팔짱을 껴 본 분이야. 그래서일까 중학교 때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어. 수업시간에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상상 속에서도! 어!....잠깐, 이건 존경이라기보다 사몬데. 크흠.
존경하는 분을 뽑으라면....못 하겠어! 셀 수도 없는 분이 떠올라. 왕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길 가는 아저씨, 강아지, 선생님, 교수님, 친구, 책, 텔레비전, 게임, 폰, 유튜브, 폰허브, 아이유, 유마 아사미 등등. 다 스승님이고, 존경하는 분들이야. 가끔 나쁜 어른의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그거야 내가 안 배우면 그만이고.
스승은 언제 어디에나 있구나. 좋은 학생만 되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