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인의 여행
친구가 부산에 놀러 왔는데, 아, 힘들어. 내 평소 작업을 유지하면서 관광안내도 해야 하니까. 백수가 무슨 일이 있냐고? 있어. 매일 로그인 상품 받기, 접속일수 채우기, 그리고 칼린풍자쇼에서 말할 대본 쓰기. 지금은 백수가 잠들기 좋은 새벽 1시. 그러나 대본을 쓰고 있지. 야근, 잔업에 걸린 직장인, 노동자 심정이 이거구나!
집구석에서만 생활하던 놈이 밖에 돌아다니니 말도 아니야. 종아리는 아프고, 무릎은 까닥하고, 발바닥 눈깔엔 쌍으로 물집이 생겼어. 내 돈이 아닌 엄마 돈 5만원이 깨졌고. 돈 쓴 만큼 만족도를 얻었냐? 아니! 이 돈 주고 왜 이걸 처먹지! 흑흑, 미안하다! 치킨아, 냉동 돈까스야, 만두야, 라면아.
그래도 다시 방구석에 돌아오니 경험을 쌓은 거 같아 괜찮아. 친구도 만나고, 여러분에게 이야기 할 거리도 생기고. 친구는 1년에 1번만 오면 좋겠네. 다리가 남아나지 않아! 주머니 사정도...이것도 엄마 주머니지만. 아, 자괴감! 그러나 이 자괴감을 긍정적으로 바라볼까! 오늘 배운 인생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친구와 여행하며 얻은 인생경험 첫 번째! 여행 할 사람은 입맛이 맞아야 한다. 나랑 친구녀석이랑 입맛이 극과 극이야. 난 맵고, 짜고, 치즈 들어가고, 느끼한 소스 들어간 거 극혐해. 그런데 친구녀석은 맵떡에 환장하고, 치즈스틱을 퍼먹지. 뭐 먹을 때 마다 눈치 봐야 돼. 친구야, 이건 내 입맛에 안 맞네. 소심하게 말하지. 소심맨의 언어는 잘 파악할 필요가 있어. 소심맨이 이 정도 말했다는 건, 그 음식은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여행 한번만 해도 이런데 부부라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배우자를 만날 때 성적취향 뿐만 아니라 음식취향도 봐야 해. 틀어지면 매일 싸울 거 아냐. 왜 반찬 남겨? 왜 이건 안 먹어? 내가 한 것 보다 라면이 맛있어? 응! 우리 헤어져. 그래서 조상님들이 요리 잘하는 여성을 만나라고 했구나! 요리 잘 하세요? 괜찮습니다. 제가 배우지요.
인생경험 두 번째. 우리나라가 중국 깔 처지가 아니다. 뭔 소리인고 하니, 친구 녀석이 중국인과 교류를 한다는 거야. 조만간 중국에 놀러 간대. 평소에 내가 중국을 많이 까잖아. 그래서 물어봤지? 중국인들은 과연 시진핑, 공산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상한 답변이었어. 시진핑은 독재자 아니다! 시진핑 좋아요! 공산당 체제에 대해선 살짝 불만을 갖고 있으나 대놓고 말하진 않는 딱 그 정도. 그러면서 대만 정치 체제를 은근슬쩍 떠 본대. 선거가 있는 대만이 부러웠나 봐. 호오. 중국인이 대만을 부러워한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중국에서 대만 텔레비전 방송을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거야. 아, 그래서 대만체제를 알았구나. 그리고 묻더래. 한국도 북한 방송 볼 수 있지?.....아니. 아니! 뒷통수에 짜장면을 엎은 듯한 충격이었어.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 북한TV 못 본다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헐, 근데 막상 질문을 받으니 못 볼 이유를 모르겠는 거야. 왜 못 보지? 국가보안법 위반인가? 찾아보니 방송내용으로 선동만 하지 않으면 위반은 아니래. 근데 개인이 신호를 받기엔 까다롭다네. 방해전파도 있고 신호규격이 달라서 대빵 만한 안테나가 필요하대. 정 보고 싶다면 일본 인터넷 방송에서 봐야 한다네. 니코니코란 곳에서. 아스트랄!
대망의 마지막! 오늘 해운대 센텀시티에 있는 찜질방에 갔거든. 저녁 8시 이후에 가서 할인을 받았는데도 1인당 1만 5천원이야. 커헉. 치킨 1마리 값이라고. 기대가 컸지. 결과는 실망투성이었지만. 신세계! 대기업이 하는 곳인데! 물도 콸콸 나오고, 시설은 반딱반딱 하겠지! 현실은 변기는 막혀있어, 사물함엔 찜질복이 뒹굴고, 휴게실 TV 몇 대는 고장 나 있었지.
근데 친구는 지금까지 와 본 찜찔방 중에 최고래. 여기서 느낀 거야. 아, 찜질방 가보지도 않은 방구석 다크템플러의 기준과, 찜질방 다니고 또 다녀본 사람의 기준은 다르구나. 다른 곳에 비교하면 이곳은 특급찜질방이구나. 이것이 경험의 차이로구나! 그래도 아쉬워. 우리나라 찜질방은 일본 야외 온천 뺨칠 정도로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야외 온천 가 봤냐고? 아니, 야동으로 섭렵했지.
실망했던 건만은 아냐. 커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 내가 소심이만 아니었어도 계속 쳐다봤을 거야. 하던 일 계속 하세요. 녹화해도 되나요? 근데 아무리 봐도 찜질방에 여자 친구랑은 올 곳이 못되는 거 같아. 너무 모험수거든! 야외 족탕실을 갔는데 역시나 커플들 구경했지. 입구에 있는 여성분 얼굴이 이상해. 맙소사. 풀메이크업! 아니, 잠깐만요. 저기 발 담그고 있는 여성분도 눈화장을 했잖아! 뭐지? 얼굴은 씻지 않는 거야? 아니면 씻고 나서 다시 화장을 하는 거야?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런 부담을 주긴 싫어. 찜질방은 결혼 하고 나서 오자고.....어차피 못하겠지만.
아무튼, 이런 인생 경험들을 했어. 내일도 나가. 지금도 간당한데 다리가 죽어나가겠지? 엄마한테 한 소리 듣고. 크흐흑.
살아 돌아오길 빌어 주세요. -심란한 새벽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