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장에 간 부회장님
미국의 한 갑부가 대학 졸업식에서 통큰 선행을 한 기사 들어봤어? 로버트 스미스씨. 졸업생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준다는데, 이게 500억 정도야. 호우! 500억! 좋은 일이지. 참 좋은 일이야. 바다 건너 우리도 축하해줄 일.....은 잠깐! 뭔가 불편한데. 나만 그런가?
앞으로 졸업식이 어떻게 되겠어? 학교에선 어떻게든 갑부들 졸업식에 초청하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각종 명예졸업장을 내걸고. 졸업 당일, 모든 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 볼 거야. 한턱 쏴. 한턱 쏴! 어디 겁나서 졸업식장에 갈 수 있겠어? 말만 하고 내려가면 계란을 던질 기센데?
자그마치 478억! 이건 부자라도 부담되는 돈이지. 세계 최고 부자 빌게이츠 형도 이틀은 벌어야 되는 돈이니까. 초당 14만원을 버는 사람도 이럴 지언데 평범한 부자는 어후, 한 1년 벌이를 몽땅 다 퍼부어야 할 거야.
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 사립대학이 아무리 삥 처먹는다 해도 미국에 비해선 양반같아. 396명이 학자금으로 478억이라. 하, 한 사람당 1억 2천. 1억 2천! 맙소사. 정말 대학 아무나 가는 게 아니구나. 이 빚덩이를 안고도 공부하겠다는 의지!
이제 알겠어. 고등학교 때까진 세계 1위를 달리는 우리나라 학생 성적이 왜 대학만 가면 순위권 밖으로 떨어지는지. 목숨을 걸지 않아서야. 1억 2천씩 빚지고 공부하는 학생들과 어떻게 경쟁 하겠어. 정말 살벌하구만.
왜 학자금 대출만 갚아준 걸까? 생각해 봐. 누군 악착같이 학자금 갚아가며 반쯤 눈이 나간 상태로 졸업식장에 섰는데, 웬걸 축사하러 온 사람이 대신 다 갚아준다고 한다? 와우! 홀리 쉿!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흑흑. 기뻐하는 동기들 보고 박수는 쳐주지만 속은 썩어가. 여긴 어디? 난 누구? 4년간 내 고생은 무엇이었는가? 아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알바의 향연이여. 하하하.
이건 돈 쓰고도 욕먹는 일이야. 물론 비스타 에퀴티 파트너스라는 스미스씨 회사 홍보에는 탁월했지만. 얼마나 홍보효과가 좋았으면 전 세계인이 알잖아.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있던 모어대학 학생들 중에는 나 같은 좀팽이도 있을 거라고. 왜죠? 이럴 줄 알았으면 학자금 대출 팍팍 땡겨서 쓰는 건데!
차라리 졸업생 전체에게 치킨 한 마리씩 돌리는 게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 2만 원짜리 메이저치킨을 1000명한테 뿌린대도 2천 밖에 안 돼. 아니면 현금으로 똑같이 주던가. 478억을 1000명이 나누면 한 사람당 4천 8백. 아아, 정말 모두가 행복하다!
이번 일로 느낀 건데, 돈 뿌릴 때는 평등하게 뿌리자. 그래야 누구는 받네, 누구는 못 받네 소리가 안 나오니까. 돈쓰고 뒷담아 듣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어. 그러니 어려운 사람만 골라서 도와주자가 아닌 다 도와주자! 다 누리자! 백수인 나나 갑부인 재용이형이나 똑같이 의료보험 혜택 누리듯이. 대신 재용이형은 세금을 좀 더 내셔야지. 많이 벌잖아요! 쌈바!
아무튼, 로버트 스미스씨의 기부에 대해선 화자가 많이 됐는데 정작 연설내용은 어떤지 말이 없더라고. 할 수 없이 안 되는 영어 써가며 들어봤어. 크흠. 좋은 이야기야. 졸업생 중에 흑형....이 아니라 아프리칸아메리칸이 많다 보니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정직해라, 성실해라, 관대해라.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것들 있잖아.
이렇게 좋은 말이라도 장장 30분 가까이 길어지니 귀에 들어오겠어? 날은 더운데 학사모에 가운까지 걸치니 땀은 쏟아지고, 뒤에선 부채질 하느라 정신없어. 그러나 마지막에 쨔잔! 여러분의 학자금 대출, 내가 낸다! 정말 영혼이 담긴 리액션이 나오더라. 나도 돈 많이 벌면 써먹고 싶어. 오늘 관객 분위기가 처참하네, 신사임당 뿌려!
농담이고, 그의 선행에 우리 모두 박수를 보내주자!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준 그 결정. 쉽지 않은 길을 택했잖아. 396명에 이르는 졸업생들에게 희망을 줬고. 당신은 기름 조금 채워준 거라 했지만 아니요! 478억이면 주유소 하나를 통째로 들이부은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런 분이 나오겠지? 그래, 졸업식장에 회장님을! 삼성은 부회장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