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엔 지폐
일주일 정도 됐을 거야. 더불어민주당이 행사를 하나 했어. 민주주의의 길이라고. 목포에서 저기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까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기린다는 의미로 했다네. 출정식을 서울 민주당 당사에서 했는데 살짝 소동이 있었지. 아주머니들의 기습시위.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어머니들의 시위였어.
뭐 때문일까? 손에 들린 팻말로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시각장애인의 복지를 권리로 보장하지 않는 가짜 등급제 폐지를 중단하라! 어? 가짜 등급제를 중단하라가 아니라, 폐지를 중단하라? 폐지를 하지 말라는 거야? 끄아악, 이해력 부족! 뭔 말이야? 구글신 도와줘요!
사연인 즉 올해 7월부터 기존 장애인 등급 제도를 폐지하고 개정한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지원을 한다네. 진짜 장애인인지, 장애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도 하고....괜찮잖아! 이참에 조사 빡세게 해서 사지 멀쩡한 공갈범들 다 없어져라!
문제는 이 조사가 시각장애인 특수성을 체크할 만큼 꼼꼼하지 못했던 거지. 조사표를 보니 정말 기초적인 것들로 점수를 매겨. 식사하기, 옮겨 앉기, 실내보행, 배변, 배뇨, 전화사용, 빨래하기 등. 시각장애인이라도 자기 집에선 웬만하면 할 수 있는 것들. 그러니 점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점수가 낮으면 돌봄서비스 시간이 줄어들어. 여전히 서비스가 필요한데도. 시각장애인이 집안에만 있을 순 없잖아. 낯선 곳에선 어떻게 해. 특히 요즘같이 무인 터치로 햄버거 주문하는 세상에. 제일 간단하게 아는 법. 그냥 1분만 눈감고 있어보자. 끼요옷! 정말 앞이 캄캄하다.
이런 상황인데 7월부터 당장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니 난감할 수밖에. 그러니 기습시위를 한 거였어. 그나마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민주당 앞에서. 출정식 축하하러 나온 이해찬 의원 당황하셨어요?
여기서 끝났다면 그저 기습시위에 여당대표 피신. 이런 평범한 정치기사였겠지만 이번엔 달랐지! 김성환 의원. 흥분한 어머니들이랑 대화하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들이 처음엔 국회의원인지도 모르더라고. 비서 정도로 생각했나 봐. 그러다 이야기가 나누고, 의원 마크 찍힌 명함 주고받고. 슬슬 분위기가 달라지더라. 좀 지나니 언제 고성이 오간 곳인지 모를 정도로 정 넘치는 풍경이 펼쳐졌지.
호오. 김성환 의원. 괜찮은데! 서울 노원구 붙박이더군. 아무튼, 이렇게 흐뭇한 모습을 보는데 살짝 씁쓸했어. 의경생활 했던 친구가 생각나서. 걔랑은 중학교 때부터 알았으니 2차 성징 불알 친구지. 공부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어서 학생회장까지 한 생각 깊은 친구. 그랬던 친구가 의경에 가더니 사람이 달라졌어.
휴가 때면 하소연을 했지. 두꺼운 방검복 입고 나갈 때면 핵고통이래. 난 몰랐어. 뭔 시위가 그렇게 많은지. 그리곤 대뜸 장애인 욕을 하는 거야. 장애인 시위장에서 날아온 돌에 선임 한 명이 맞았다네. 중대 분위기가 어떻겠어? 회사로 치면 부장이 돌 맞고 빡돈거지. 어휴. 그날 이후로 말도 못하게 갈궜나 봐. 악에 받치게. 니들이 똑바로 안 해서 내가 돌 맞았잖아!
그렇게 편견없던 청년은 장애인 욕부터 하는 인간이 돼버렸어. 그걸 보는 내 심정은 씁쓸 그 자체. 마치 첫사랑이 버닝썬에서 버닝으로 패배한 기분이랄까. 후우. 아니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왜 그 앞에 있는 애들한테 돌을 던지고 그래요! 야! 넌 또 돌 맞으면 몸이나 잘 사릴 것이지 왜 밑에 애들 갈구는데!
이번처럼 서로 좋게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서로 알아가며, 이해하며, 공감하는 시간. 내 친구가 장애인 차별주의자가 안 될 수도 있었지. 그래서 씁쓸했어. 그래서 좋은 일인데도 마음 한편이 싱숭했던 거야.
그렇다고 시위 금지론자가 된 건 아냐. 말이 안 통하면 이대로 청와대로 간다! 해야지. 혁명의 나라 프랑스처럼. 근데 그 전에 대화하고, 가운데 손가락 들어보고 나서 할 수 있잖아. 그래도 안 되면 가벼운 걸로 시작하고. 돌, 화염병이 뭬야!
던져도 기분 좋은 거에 뭐가 있을까. 계란? 크흠, 끈적끈적한 것이 성적수치심을 주는 걸. 아, 홈런볼 어때? 해태 홈런볼! 맞아도 아프지 않고, 주워 먹을 수도 있고. 커헉, 음식 갖곤 장난치는 거 아냐. 그럼 물풍선은? 겨울엔 몰라도 여름엔 괜찮겠다. 좋았어. 그럼 겨울에도 쓸 수 있는 만능템 없을까? 아! 돈이 있었지! 동전은 위험하니 부드러운 지폐로. 이황 선생님 날아갑니다! 돈 없으면? .....우리에겐 어린이 지폐가 있어요!
아무튼, 김성환 의원이 자리 회피용 거짓말은 아니더라고. 일주일 후에 시각장애인 단체와 의견을 나눴어. 참하게 생긴 리트리버 안내견도 함께. 흐뭇! 어라, 민주당만 거론해서 미안하네. 자한당도 한 건 해야지.
백만 백수여! 어린이은행 지폐를 들고 자한당 당사로 모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