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놓고 전기요금 모른다
축복받은 일요일이어라! 주말 잘 보내고 있어? 나는 대장 속에 찌꺼기가 내려간 듯 시원한 기분이야. 어제 밤만 하더라도 잠을 잘 수 없었거든. 첫사랑의 추억 때문에 뒤척인 건 아니고, 주인아주머니와 혈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로. 전세 생활 5년 동안 알게 모르게 월세도 내고 있었어. 쓰지도 않은 전기요금을!
전기세라 해봤자 이사 오기 전엔 16,000원 정도였어. 근데 지금 집에선 보통 24,000원, 많게는 3만원까지 나와. 이상하잖아! 전기세가 올랐나? 내가 이전보다 많이 쓰나? 확인할 방법 없이 그냥 대충 넘겼어. 5년 동안. 으힉.
이 황당한 현상은 특히 여름에 심해. 더워질수록 요금이 더 나오는 거야. 에어컨을 틀면 몰라, 우리 집은 선풍기로 버티거든. 아니, 많이 나오려면 전기장판 트는 겨울에 더 나와야지. 이해할 수 없었어. 누전인가 싶어서 한전에 연락까지 해 봤지. 이상이 없대.
후우. 대책 없이 나가는 전기세 때문에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봤어. 일단 불빛 나오는 거는 모조리 LED로 교체! 요새는 LED 아닌 제품을 찾기 더 어렵지? 결과는...응, 소용없어. 엄마는 급기야 밥통을 취사용으로만 쓰기 시작했지. 이젠 식은 밥 식생활에 적응했어. 여름에 잘못하면 쉰내 나는 게 문제지만.
이런 노력에도 전기요금은 줄어들지 않았어. 내가 얼마나 빡쳤었냐면 게임인생을 포기하고 컴퓨터 성능제한을 걸었다니까. 남들은 오버클럭이다 해서 성능을 올리는 마당에. 파워도 전기효율 좋다는 고오급 제품 지르고. 다 물거품!
그러다 바로 어제, 이 흉악한 전기도둑을 잡은 거야. 어디였을까? 바로 마당에 놓인 562리터 구형 냉장고! 끼요옷! 문과의 실수를 또 저지르다니. 나 전기 먹어요 대놓고 자랑하는 큼직한 흰둥이가 코앞에 있었는데. 허어, 여태껏 의심 하나 안 한 거야. 그냥 주인집 창고용으로 쓰나 했지. 돌아가는지도 몰랐어.
여하튼, 어제 청소하다가 문득 여름철 전기세가 생각난 거야. 이유도 없이 치솟는 마법. 딴에는 점검해 본다고 차단기를 내려 봤지. 딸깍. 암흑 속, 어디선가 들리는 크르릉 꺼지는 소리. 어디지. 바로 마당 냉장고. 차단기 올리니 다시 작동하는 그 냉장고. 내가 5년간 전기세 바친 주인집 냉장고! 야!
혹시 모르잖아. 차단기는 우리 집에 연결됐어도 계량기는 주인집으로 됐을지. 당장 인터넷 성님들께 물어봤지. 이런 상황인데 제가 전기 대신 내고 있는 건가요? 답변은, 계량기 따로 써? 예. 응, 그럼 전기 상납하고 있는 거. 끄아아악!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어. 왜 전기세가 저번 집보다 많이 나왔는지. 왜 여름에 더 나왔는지! 냉장고는 더울수록 전기를 더 빨아들이니까. 후우. 마당에 놓인 녀석 모델을 확인해 보니 월 39.6 킬로와트를 잡수더군. 이건 25도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야. 현실은 실험실과 다르지. 특히 이번 경우엔.
마당에서 땡볕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점부터 경악스러워. 여름의 열기 한가운데서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었을 거 아냐! 절전과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진 연식에 불안감은 커져. 거기다 하필 브랜드가 대우? 대우! 아, 대우 무시하는 건 아닌데, 내가 수구 LG빠라서. 요새 대우 제품 좋나? 에헴.
아무튼, 이런 악조건에선 2배도 넘게 전기를 소모한대. 39.6 곱하기 2 하면 거진 80킬로와트! 웟더. 이 녀석 하나가 우리집 전기소비량에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어. 한 달 160킬로와트 썼을 땐 16,000원. 거기에 80킬로와트를 더하면 240킬로와트. 요금은.....31,570원! 이런 수박바야!
에어컨만 정속형이니 인버터니 고민할 게 아니었어. 진짜 전기 먹는 코끼리는 냉장고니까. 일 년 365일 계속 돌아가는 가전의 대빵. 다른 건 5등급이어도 냉장고만큼은 1등급 가야 돼. 전국의 부부, 솔로들이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등급 냉장고 가즈아! 무슨 이야기하다 냉장고 광고를 하고 있지. 어.....아무튼.
160킬로와트랑 240킬로와트는 요금 단가부터가 달라. 200킬로와트를 넘는 순간 팍팍 오르거든. 5년 동안 한 달에 15,000원을 빨리고 있었던 거야. 안 그래도 돈 없는 백수가! 주인집은 태양광까지 달았으면서! 이건.... 너무하잖아!
내가 아무리 방구석 찐따라도 이 문제는 넘어갈 수 없었어. 밤 꼬박 새우며 전투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지. 굽실거릴까, 세게 나가봐. 어떻게 설명할까. 방 빼라 하면 어쩌지. 아 골치 아픈데. 크흑. 세입자는 웁니다.
뒷이야기는 내일 공개! 아, 내일은 월요일이야. 그렇다고.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