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교수가 되고 싶어요
강사법이라고 들어봤어? 8월 1일부로 시행된 법인데 참. 뉴스를 보고 있자니 씁쓸하더라고. 친구들 중에 2명이나 교수를 꿈꾸고 있거든.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좋나보다 생각했지. 되긴 어렵지만 혹시 모르잖아. 되면 대박! 캠퍼스 공기를 맡으며, 파릇파릇한 대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정년보장의 직장!
아직 둘 다 그 단계엔 근접도 못 했어. 시간강사 신세로 학교를 떠돌고 있지. 어쩔 땐 방구석 백수인 나보다 더 불쌍하게 보일 정도야. 어느 대학교가 그렇듯 이 쪽도 한 경사 하거든. 여기가 어디? 부산! 이름자체에 산이 들어가 있어. 호우! 메시. 이 더운 날에도 윗도리는 꼭 챙겨요. 불쌍한 녀석.
그래도 둘 중에 한 명은 제법 교수 티가 나. 강의영상을 몰래 봤는데, 와....이거 내가 아는 그 인간 맞나? 사회심리학이 어쩌고저쩌고. 작년엔 시간강사가 아닌 겸임교수 타이틀도 따냈지! 이야! 이제 교수님 됐네? 축하한다! 그 때 친구가 썩소를 날리더라고..이름만 교수지, 강사 나부랭이랑 똑같다. 에이. 그래도 교순데 상관있나.....으....상관있었어. 그것도 아주.
겸임교수! 이 있어 보이는 말을 뜯어볼까. 겸임, 뭔가 같이 한다? 맞아. 자기 주 밥벌이는 따로 있는 교수. 이를테면 연예인이 교수하는 경우 있잖아. 이순재 쌤은 연극과, 이영자는 코미디과. 비슷하게 변호사 하는 분이 법 강의 하고, 뮤지션이 음악 가르치고, 정치가가 선동, 사기 퍼뜨리는 거지. 응?
그런데 내 친구는 아무리 봐도 하는 일이 가르치는 일 밖에 없거든. 어디 취업 됐다는 소린 듣지 못 했어. 그런데 겸임교수? 금정구에서 한탕 뛰고, 사하구에서 한탕 더 뛰어서 겸임인가? 그런가 보다 하고 웃어 넘겼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어. 겸임 아닌 겸임교수는 불가촉강사란걸.
겸임교수에겐 학교에서 아무것도 해줄 필요가 없어. 왜? 4대 보험이며 퇴직금 다 원래 직장에서 주니까. 고용보장? 멀쩡한 직장 다니는 사람인데 고용 보장이 왜 필요해. 그냥 한 학기 계약하고 맘에 안 들면 쳐내도 상관없지. 그런데 내 친구처럼 직장 없는 구라 겸임교수는? 그냥 희망고문에 굴러다니는 똑같은 시간강사일 뿐이야.
시간강사가 얼마나 힘든지는 익히 들어왔어. 평균 월 90만원의 월급. 업무강도 빡세고. 그래서 과로사, 자살도 간혹 일어났지. 이걸 방지하고자 강사법이란 걸 만들어서 처우를 개선하려 했는데, 이게 참 어려워. 내용은 별 거 아냐. 시간강사에게 1년 고용보장, 4대보험 보장 같이 돈 좀 쓰겠다는 법이지. 문제는 각박한 현실! 이게 2011년에 발의됐거든. 무려 8년 전이야. 계속 유예, 유예 되다가 드디어 올해 시행됐지.
아아....완전 축소판 최저임금제를 보는 듯한 느낌이야. 여긴 좀 더 즉각적이랄까. 법 시행되기도 전에 돈 없다는 이유로 시간강사 자릴 쳐내. 아니면 내 친구처럼 겸임교수직을 주거나. 뭐, 대학 입장도 이해 못할 건 아냐. 이사장님이고 학교재단 배 불리려면 그럴 만도 하지.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가겠지만...... 8년 동안 대체 뭐한 거야! 8년이면 소녀시대가 누나시대가 될 시간인데!
아무튼. 끔찍해. 이런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교수직이 매력적인가? 그렇게 대학생들이 좋은 거야? 아니면 대학원 때 교수에게 당한 만큼 나도 돌려주겠다는 마인드? 하긴, 시간강사만 넘기면 불행 끝 행복시작이잖아.....는 과연 그럴까?
이번에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봤거든. 워호. 정말 미친 짓이었어. 교수라는 직함 아래 이렇게 많은 하부구조가 있는 줄 몰랐어. 일단 비정규직부터 시작해 볼까. 시간강사! 이건 잘 알지? 그리고 겸임교수. 교수라는 단어만 붙은 비정규직의 끝판왕.
여기서 운이 좋으면 드디어 전임교수의 기회를 얻어. 전임교수? 이제야 교원 대우 받는 급이지. 대신 보통 2년 계약직이야. 살 떨리게 성과 못 내면 언제 나가리 될지 몰라. 그래도 교수를 꿈꾼다면 반드시 뚫어야 할 1차 관문. 허허, 우리학교에선 공개강의까지 하더라고. 하반기 전임교원 신규채용 공개강의! 거기 가면 새내기부터 장수생까지 왕대접 받겠다. 교수님 이해가 안 돼요! 제가 이해 될 때까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가 끝이냐? 아니. 또 하나 문턱이 남았어. 드디어 학과 홈페이지에 사진 올릴 수 있는 조교수! 우리가 흔히 부르는 교수라면 조교수부터일거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지원을 받을 수 있지. 논문 꼬박꼬박 잘 쓰고 사고만 안 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어. 거기다 개인연구실 제공! 질문이 있으면 수업 끝나고 제 연구실로 찾아오세요. 키야. 이 한마디 하기가 이렇게 어렵네.
이제 전임자들이 빨리 퇴직하길 바라며 존버 해야 돼. 어디를 향해? 정교수를 향해! 대략 10년 정도 걸린다더군. 10년 동안 뼈 빠지게 능력을 보여야지. 국공립이야 능력으로 승부 볼 수 있겠지만 저기 지방 사립 같은 곳은 크흠. 회식 자리에서도 프로패서가 돼야 할 거야. 심지어 국공립도 안심할 수가 없어. 우리학과 교수님도 부당해고 당했다가 재판 끝에 복직하셨거든. 자세한 건 설명할 수 없지만, 그...해고의 원흉은 명박가카 밑에서 일했던 인물이란 점만 밝힐게.
이 환장할 과정을 거쳐서 정교수가 된 다음에야 진짜 교수가 되는 거였어. 정년 빵빵하고 유유자적 포스를 풍기는 그 교수님들! 어후.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때려치워! 이거 말만 교수지 완전 군대 뺨치잖아! 드라마 미생은 대우인터내셔널이 아니라 대학교에서 찍어야 했어. 저 정교수 될 수 있을까요? 아니. 해외 박사 학위도 없는 놈이 무슨 정교수야!
교수를 꿈꾸는 분들. 돈이나 명예를 보고 도전하기엔 너무 험난해. 그야말로 배움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못 버틸 거야. 앞으로는 더 하지. 애가 없어. 그 말은 대학생도 없어... 어쩌라고!....그냥... 열심히 하라고.
교수님 파이팅! 선생님 파이팅! .....파이팅 안 한 시간강사는 이미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