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임
에이요! 불타는 금요일 밤은 잘 지내고 계신가! 저는...보시다시피 안 괜찮아! 크흠. 농담!
1년에 한번 부산 벡스코가 뜨거워. 바로 지스타! 예전엔 무조건 갔는데, 요새는 가봤자 궁합 맞는 게 없으니 원. 으휴. 전 과거의 유물이죠. 키보드, 마우스, 패드로 하는 게임 아니면 게임으로 안 쳐주는 수꼴! 크흑. 소니도 가고, 블리자드도 가고. 다 갔네!
그래도 한번 가 봤어. 집구석에서 똑같은 하루 보낼 바에야 구경하러 가는 것도 괜찮잖아. 물론 입장권은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1만원을 투자하기엔 제 지갑이 너무 가볍죠. 대신 야외부스만을 공략한다!
워워. 공짜표 야외부스라고 무시할 게 아냐. 푸드 트럭도 있고, 코스프레 존도 있고, 어! 코스프레 존도 있고... 어... 크흠. 코스프레만 보면 됐지 뭐 더 필요합니까! 아름답고 멋진 이세계물 캐릭터들과 만나보세요! 전시관 안에 들어가 봤자 너님은 30분 줄서다 5분 체험하고 경품놀이에 중독되는 꼴을 면치 못합니다.
아무튼, 주말이 아닌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야외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한산하던데? 이번에 역대 최대로 출발했다는 기사를 봐서 걱정했는데 말야. 어디 기사를 다시 볼까, ..흠. 역대 최대 지스타 2019 개막, 참가 부스 3208개로 역대 최대 규모. ....야! 앞에 부스라고 또박또박 적어줘야 할 거 아냐! 역대 최대 부스! 관객이 아닌! 괜히 쫄았네.
다시 코스프레로 돌아가서. 솔직히 코스프레 쪽은 문외한이야. 내가 한 오덕을 넘어 십덕이라 자부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가까이서 봤어. 호오! 덕력이 높아지는군요! 그래서 소감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열정이 느껴져!
다리에 스프링 장착해서 고도높이 1미터 이상 올라간 상태로 몇 시간을 버틴 분. 와우! 대체 어떻게 그런 체력이 솟아나나요? ..고전적인 인형탈도 빼놓을 수 없지. 아무리 날이 추워졌다 하더라도 그거 끼고 30분만 돌아다니면 찜통이 따로 없거든. 이와 정반대도 있어. 겨우 가슴가리개와 빤쓰 하나 입고 버티는 분! 살신성인의 정신! 브라보. 제가 인간난로가 되어 안아드릴게요! ...찰싹!
생각보다 밀리터리 복장이 많이 보이더라. 얼굴에 3뚝배기 철판 낀 분, 중공군, 소련군, 심지어 북한군까지! 각종 특수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합의 장! 그런데 말입니다...여기서 군대 트라우마가 도지니, 군필자들은 알 거야. 군복 봐도 감흥이 없다는 거! 1년 365일 봤는데 무슨 기분이 나겠어! 총도 그래. 군생활 내내 따라붙은 철거머리 녀석! 지긋지긋하군요. 우리 이제 헤어져! ....응? 아니, 그렇다고 밀리터리 코스어 까는 건 아니고! ...아니, 사람의 순수한 의도를 이렇게 비틀 수 있단 말입니까! 총기 에로에로 소녀전선 만만세!
경연대회도 보고, 사진도 찍고 하니 벌써 해가 넘어가더라고. 3시 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노을이 지고 있어! 그 순간 현타강림! ....참 이상하지. 지스타만 보고 돌아갈 즈음만 되면 이런 기분에 휩싸여. 뭐랄까....마치 밤 11시의 기차역? 공항?
수많은 관람객. 멋진 코스어. 과감한 누나부터 청순한 동생까지. 혼자 온 사람도 있고, 아이랑 같이 온 아빠도 보이고. 정말 북적북적한 축제야!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워. 외로워 죽겠다고! 흐흑. 울어버릴래! 나 혼자 사진 찍고, 나 혼자 덕질 하고, 나 혼자 서성이고. 이게 뭐야!
그냥 집에 있었으면 느끼지 못할 현타! 에잇, 괜히 갔어! 크흑.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못 느꼈을 텐데. 왜? 같이 있는 게 뭔지도 모르니까! ..나는 늘 혼자였기 때문에 외로움이 뭔지 모릅니다. 오늘따라 이 명언이 가슴에 파묻히는군.
여기서 잠깐! 내가 방금 전에 현타 라고 했는데, 과연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어. 현타란 무엇입니까? 한발 뺀 김정은. 좀 더 지켜볼 것! ..그렇습니다. 한발 뺀 상태!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난 채 세상을 되돌아보는 시간.
그런데 이번에 느낀 감정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단 말이지. 내가 한발 뺐나? 아니! 그랬으면 이미 전자발찌행이야! ..욕망을 벗어버렸나? 그것도 아닌데. 코스프레 누님들 보면서 살과 살을 부비부비하고 싶었어. 아잇, 이거 또 오해하실라. 말 그대로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날도 추운데 손만 잡고 자면 안 될까요? 오!
오히려 욕망의 좌절에서 오는 현자타임. 내가 얼마나 쓸쓸한지, 인생이 왜 이렇게 고독한지 절실하게 맞닥뜨린 순간. 그때 오는 공포였어. 푸후후. 이런 상태로는 현자가 될 수 없지. 오히려 욕망이 풀어질 때까지 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응? 이런 경우에는 현실 자각 타임이라고요? 그래서 현자타임? 그, 그래? 그렇구나. 난 또 4대 현자가 됐을 경우에만 현자타임이라 하는 줄 알았지. 크흠. 아무튼. 그래서 현실 자각 했으니 이를 어쩔까? 아무에게나 들이대? 아니면 다시 안전한 이불안으로 대피해?
잘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연의 소중함은 깨달았다는 거지. 2명밖에 없는 내 소중한 친구. 이들에겐 뒷문을 개방해서라도 우정을 변치 말자. 응? ...어. 그리고 스쳐지나가듯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잘 하자! 150억 광년 우주 속에서 겨우 만난 사이인데 친하게 지내야지, 싸우고 그라믄 안 돼.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일요일 또 갈 거야! 한번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보지 뭐! 카메라 들춰 메고 찍어버린다! 하하하. 외로워도 슬퍼도,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제가 허벅지 사이를 찍은 건 손이 미끄러져서입니다. 엇! 어이쿠. 가슴골과 고추핏을 놓치지 않은 것도 손이 미끄러져서입니다! 집에서 진정한 현자타임을 가져야지. 힛...찰싹!
청소년보호법 위반 및 음란물촬영혐의로 구속. 끼요옷! ..코스튬 플레이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