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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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엄마는 외계인 (0) 2019/12/30 PM 09:50

 

 

 

엄마는 외계인

 

 

2019년의 마지막 월요일이건만 운수가 좋지 않네요. 엄마랑 한바탕 했지 뭐야. 그놈의 공인인증서 때문에! 엄마가 며칠 전부터 공인인증서에 꽂히더니 계속 받아 놓으래. 제가 누굽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고의 효자! 바로 덕지덕지 보안 프로그램 설치해가며 폰에 받아놨어. 그런데 오늘 엄마가 공인인증서 받으러 은행에 또 갔다네? ..아니, 엄마. 내가 받아놨는데 왜 갔노? ..공인인증서가 어디 있는데! 니가 와서 함 찾아봐라! ..호우.

 

여기서부터 분노의 수레바퀴는 굴러 굴러서 집사태가 돼버렸어. 공인인증서 하나 못 받아놓는 놈이 무슨 사회생활을 하겠노, 내년에도 집구석에서 그렇게 살래? ...크흠.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방구석에서 폭풍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근데 엄마. 이번엔 내 말이 맞는데! 엄마 폰에 공인인증서 분명히 있는데!

 

찌질하게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내가 잘못했더라. 아니, 멍청했어. 엄마는 공인인증서가 뭔지 몰랐던 거야. 흔히 보는 A4용지에 도장 쾅 찍힌 인증서로 생각한 거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주민등록등본 같은 거. 에휴. 내가 잘 설명했으면 스무스하게 넘어갔을 것을, 그럼 오늘 저녁 반찬이 달라졌을 건데!

 

공인인증서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정보통신부로부터 지정된 국가공인인증기관에서 발행하는 법적 효력을 지닌 온라인상의 인감도장, 신분증 같은 역할을 하는 전자인증서. 코호호. 정말 사전적인 설명이죠. 제대로 설명해 놨지만 살짝 받아들이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어. 좀 더 쉽게 풀고 싶은데....흐음... 엄마의 모든 걸 엿볼 수 있는 비밀열쇠? ...어감이 좀 이상하다. 부르르르.

 

요샌 은행업무도 다 간편인증, 생체인증 한다지만 아직까지도 쭉쭉 당겨보면 공인인증서 로그인이 자리 잡고 있어. 최초 로그인은 여전히 공인인증서만 가능한 은행도 있더라? 하나은행이었던가? 게다가 항상 한 발 느린 정부부처 사이트들! 이번에도 그래. 엄마가 이렇게 공인인증서 타령을 한 건 연말정산 때문이거든. 국세청 간편 연말정산 하려면 공인인증서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공인인증서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성당 사무실에서 남의 공인인증서를 달라고 하냐? 그것도 비번까지 첨부해서! ! ...원래 다 요구하는 거야? 회사 생활은 이렇습니까? 내가 아무리 한평생 백수로 지냈다지만 이건 아닌데... 아차! 삼성은 기부금 내역에 정치성향까지 다 파악하지. 제 불찰입니다. 내 모든 걸 회사에!

 

아무튼. 누군가와의 대화. 참 어려워. 엄마하고도 이런데 처음 본 여성과는 어휴...내가 이래서 모쏠입니다. ...대화하니 뜬금포로 외계인은 우리랑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을까? 일단 언어부터 정해야겠지. 세계를 지배하는 영어? ...아냐. 킹 세종의 한글! 그럼. 과학 따지는 외계인이라면 가장 판타스틱한 한글로 대화를 할 거라고.

 

이제 내용인데,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합니다. ..빵상. 안녕, 지구인들. 우린 그저 여러분과 인사만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영화에서처럼 인간을 정복하기엔 우리가 너무 도덕적이고 고등한 종족이라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우리도 잔인해질 필요가 있군요. 아름다운 지구, 그 위에 사는 수많은 생물. 그걸 지금 인간이 몰살시키려 하고 있으니 우리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호오. 너무 친환경 외계인을 상상했나? 그래도 말야, 아무리 자연에 무관심한 외계인도 안타깝긴 할 걸? 마치 우리가 천연기념물 수달을 보는 것처럼, 아마존의 눈물을 보는 것처럼. 그러다 고등 우주인 국회가 열려서 이 지구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광합성 토론이 펼쳐지겠지.

 

결론은, ...인간이 그러하듯 대충 중간 결과가 나올 거야. 다 죽이자 대 다 살리자. 그 사이에서 태어난 적절하게 죽이자? ? 크흠. ...삐리리. 지구인들이여. 3년 안에 온실가스 58%를 감축하라. 우린 협상하러 온 게 아니다. 통보다. 못해? 그럼 타노스 핑거가 현실에 강림하사 인구 절반이 사라질 겁니다.

 

아항.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러지 않을 거야. 크흑. 역시 난 인간 수준에서 생각했다니까. 이렇게 번거롭고, 반발심 생길 일을 왜 똑똑하신 외계인들이 하겠어. 더 은밀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이 세상에 딱 두 사람만 납치하면 돼. 그리고 환영분신술! 한 명은 트럼프 잘 하게 생긴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핑핑이 닮은 인간이야. 이 둘만 조종해도 세계가 바뀝니다. ..어느 날 갑자기 트럼프가 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시진핑이 미세먼지 절감에 전력을 다하겠다 하면 ..100%입니다. 외계인의 수작이 분명해. 본체 둘은 안드로메다에서 흙 퍼먹고 있고.

 

만약 환영분신술까진 구현하지 못한 외계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땐 좀 비신사적이지만 협박을 할 수 밖에. 세계지도자들 앞에 죽음의 72천 시간! 똑딱똑딱. 지구평균온도 0.5도를 내리지 못하면 당신은 사라집니다. 커헉. 그날로 공장이 무너지고 전기가 끊기는 기적이 펼쳐지겠지. 이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해 개발에 열중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진심 인정하겠습니다.

 

아무튼. 엄마랑 싸운 이야기하다가. 환경극단론 외계인 시나리오 얘길 하고 있네? 크흑. 아잇! 두서없이 미안해. 오늘 망쇼의 징조가 가득!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엄마랑 싸워서 그런가...

 

대화가 필요해. ..갑자기 엄마는 외계인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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