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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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운명은 SSR (0) 2020/01/01 PM 10:00

 

 

 

운명은 SSR

 

 

2020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너무 식상한가? 아니! 좋은 말은 많이 들어도 지겹지 않죠. 그러니 한 번 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고 부자 되세요! 로또 1등 돼서 인생 역전 가즈아!....잠깐. 로또는 1등 여러 명 나오면 배당 줄어들잖아! 방금 한 말 취소! 로또는 오직 나만 되게 해 주세요! ...?

 

새해도 됐고 하니 사주팔자 보는 분들 많겠구나. 어때? 여러분은 점 믿어?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도 돼. 미신이나 믿는 전근대적 인간이라고 아무도 욕 안 해. ...오홍! 저기 손드신 분! ...사이비 단체에 가입하기 딱 좋겠네. (찰싹!) 죄송합니다.

 

난 안 믿어. 그러니까 무당이 해 준 점은.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였지. 한밤중에 엄마가 날 데리고 낙동강 어디를 가는 거야. 처음 보는 아줌마, 아저씨랑. 뭐지? 설마 나 장기 털리나? (찰싹!) 크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 하고!

 

가서 보니 굿이었어. 외할머니 하늘나라 잘 가라고 보내드리는 굿. 지금 생각하면 엄마 심정도 이해되는데, 당시 중이병 이성주의가 한창인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 다짜고짜 생팥을 던지는데, 아오, 제사상 뒤집을까 말까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어.

 

그 후로 사주, 무당, 점과는 만날 일이 없었어. . 부산 살지만 비프광장 타로거리에도 갈 일이 없었죠. 여친이 없었으니까! 있어도 안 갔겠지만.. 게다가 엄마가 그 후로 하느님의 품에 귀의하셨어요. 세상에. 누가 전도한 것도 아닌데. 이 역전세계 펼쳐진 이유가 뭘까? 미스테리.

 

그러다 전혀 생각 못한 곳에서 점집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두둥탁. 잠깐 초등학교에서 일할 때 내 모든 걸 커버해주신 담임쌤! 결혼만 안 하셨더라도 바로 프로포즈했을 만큼 지적이고 매력 넘치는 분이셨지. 하루는 쌤이 대뜸 내 종교를 묻는 거야. 무교인데요. ..잘됐다. . 그럼 여기 한번 가볼래요? ..메모를 보니 점집 전화번호랑 위치였어. 부산 양정에 빨간천막. 여기 유명한데야? ....호오.

 

사실 처음엔 놀랬어. 이성으로 가득 차 보였던 선생님이 사주팔자라니! ...뭐 그래도 나 생각해서 알려 주신 거지. 애인도 없어, 모쏠이야, 취직도 못해. 그러니 얼마나 걱정됐겠어. 그 마음! 고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점집은 쵸큼 그렇더라고요!

 

아니, 그냥 재미삼아, 인생 상담 한다 치고 가보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내 안의 뭔가가 강력히 반발했어. 뭘까....흐음. 자존심? 그래, 자존심! 어설픈 인생살이지만, 적어도 통제 불가 미확인체에게 비굴하게 빈 적은 없었어. 내 운명은 내 것이다! 이런 자존심!

 

그런데 이런 녀석이 생활 곳곳에 미신을 만들어 놨더라? 특히 최종 면접 발표 날 되면 이 정도가 하늘나라를 뚫고 올라갈 기세야. 하나님, 부처님, 귀신님, 악마, 사탄, 아무나 좋으니 이번에는 제발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합격만 시켜주시면 영혼을 팔겠습니다. 코호호.

 

그럼 진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오늘은 똥오줌을 싸지 말거라. 그럼 합격할 것이다. ? ...알 수 없는 자기체면에 빠져서, 긴 가민가 하는 가운데서도, 그걸 또 지키고 있어요! 어휴! 배에서 구륵구륵 소리가 나는데도 안 가. 그래서 결과는요? 탈락!

 

이런 일을 한 10번 정도 겪고 나니까 알겠더라고. 아항, 이것은 내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구나. 허이허이, 과대망상아 떠나거라! ..똥 참는다고, 칫솔질을 강약약중간약 4번씩 한다고, 사타구니를 벌리고 있다고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면접장에서 판가름 났어요!

 

탈락의 고배를 퍼먹고 나서야 깨달은 거야. 진짜 운명의 신은 숫자 뒤에 있음을. 뭔 뜬구름 소리냐고? 이를테면 최종면접 경쟁률이 3:1이다. 그럼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합격확률 33%.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날카로운 수치!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왠지 합격할 것 같다고요? 천만에.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요!

 

비관론자가 되자는 건 아냐. 오히려 숫자를 보면 편하다니까. 떨어져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고. , 이번에는 합격할 것 같아!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 발표 날이 되어도 평소 일상대로 생활할 수 있어.

 

지금까지 인간 자주, 사주 타도! 이 자세로 말한 것 같은데, 크흠. 그건 아닙니다! 저도 결국엔 운명론자죠. 살아보니 그래. 인간 노오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더라... 갑자기 쓰러진 가족. 갑자기 생긴 병. 갑자기 생긴 사고.. 사람 인생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건만 아무 이유도 없이 생기는 것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운명이 아니면 어떻게 버티겠어. 그저 운명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물론 빌게이츠처럼 워크하드 외치는 초인도 있지만. 근데 누구라도 빌형 재산 갖고 있으면 운명 따위야 부수고 일어설 수 있겠다. 운명이 무섭다고요? 돈이 부족한 건 아닌지 확인해 봅시다.

 

아무튼. 아직 인본주의 자존심 남은 녀석이 운명론을 받아들이자니 쉽지 않아. 종교가 뭔가요? 예수님도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신이 너무 그리울 때가 있거든. 절대자! 태양 같은 존재! 내 모든 불만, 불행, 바람을 토로할 수 있는 그 무언가! ..그래서 제가 안착한 분이 바로 아테나님입니다!

 

왜 아테나님인가? 첫째, 나랑 같은 동정 모쏠이야. 크흠. 진정한 고독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지. 둘째, 여신이야. 예수님도 여자였으면 바로 교회 달려갔어. (찰싹!) 셋째,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시거든. 아테나님은 운명보다 지혜와 용기를 먼저 말하시지.

 

어때? 막 그 분에 대한 사랑이 솟구치지 않아? 어라. 어쩌다보니 전도가 됐네? 믿습니까! 그 분을 바라봐! 넌 지혜로워지고! 그 분을 불러봐! 넌 쏠로되고! ? ...이 자리에서 아테나님의 영광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신년 첫 가챠! 확률은 0.13%! 아테나님, 쩨발! SSR!

 

슈루룩. 핑핑핑!.......결과는요!.........뭐야, 다 흰색! 에라이! 아테나님께 영광 있으라!

 

 

 

내 사주는 내가 본다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2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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