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한 것에 대한 동경
요오. 일요일 저녁 잘들 보내고 계신가. 난 죽다 살아나서 지금 겨우 일어났지! 핫. 오늘 2.5 킬로그램 카메라 들쳐 메고 동네 한 바퀴 돌았어. 이 시국에! 이 시국이라서! 한적한 자갈치, 남포동, 국제시장, 깡통시장 사진 찍으면 관심 좀 받겠구나, 그런 인싸 마인드로! 그래서 결과는요!
후우... 2.5kg, 별 거 아니잖아? 그렇잖아! 치킨 한 마리, 1.5리터 펩시 한 사발 꺼억하면 불릴 수 있는 무게지. 근데 이게 내 뱃속이 아니라 어깨, 손위에 걸쳐져 있다? 미쳐. 카메라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근데 비싸서 그러지는 못하지. 애지중지, 전전긍긍, 그러다보면 발바닥엔 멍들고, 어깨는 상하대칭 쳐지고, 그와 함께 멘탈은 바사삭! 지금 사진 찍는 게 중요하냐? 골병들게 생겼는데!
카메라 살 때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건 아냐. 이미 한 차례 수업료 지불하고 똑똑히 배웠거든. 때는 2012년. 그때부터 이미 내 장비병은 시작됐지. 사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그냥 카메라가 좋아. 하악하악. 저 우람한 DSLR을 꼭 사고 말 거야! ..알바 두 달 뛴 거 고스란히 소니한테 바쳐서 구입한 것이 바로 이 녀석, 아르파 57!
12년산 구시대 카메라 치고 잘 생겼지? 검고 두꺼운 것이, 아랫도리 마냥 아주 멋있어.(찰싹!) 그런데 말입니다... 산 지 일주일 만에 팔았어! 왜? 무거워서! ..이거 놔두면 100% 장롱행이다,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려면 빨리 털어야 한다! ..다행히 올리자마자 그 날로 팔긴 했는데, 타격은 꽤 심했지. 산 가격에 70% 때려서 팔았으니 얼마를 날린 거야? 와우, 뒷골.
그 이후엔 성능이 뭐가 됐든 무게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어. 그래서 간택한 제품이 바로 이 녀석. 손휘 아르엑스 100! 크흑. 아름답다, 아름다워.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것이 마치 내 무발기 똘똘이를 보는 것 같아. 그러나 줌을 당기면, 짜쟌! 숨겨져 있던 어우야가! 츄릅. (찰싹!)
바지는 몰라도 코트 주머니엔 쏙 들어가. 이렇게 작고 가볍다 보니 어디든 함께했어. 부산 뒷골목 화장실부터 서울 광화문 앞까지. 얼마나 맘에 들었으면, 지금까지 안 처분하고 갖고 있잖아. 캬하하. 혹시 여기 카메라에 입덕할 용자 있어? 그렇다면 첫 타자는 RX100으로 시작하길 추천해. 마크1에서 마크7까지, 너님의 지갑사정에 맞춰서 아무거나 사면 돼. 불만족 시 소니가 어떻게 해 줄 겁니다. 응?
여기까지만 했으면 몸도 마음도 편했어.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크고 굵고 우람한 것에 대한 동경! 특히 이 욕망은 누님들 앞에서 더 커져. 그 있잖아. 부산 국제 모터쇼, 지스타. 앙? 합법적으로 여자 사람 찍을 수 있는 순간! 그때 똑딱이로 찍고 있자니 뭐랄까...이것이 발기부전? (찰싹!)
이 상태에 돌입하는 순간 이미 끝났어. 돌아올 수 없는 지름길을 떠난 거지. 큰 카메라! 카메라는 무엇인가? 자고로 센서는 무조건 풀 프레임이어야 하고, 렌즈는 대포처럼 우뚝 솟아 있어야 진정한 카메라라 할 수 있다! ..무한 자기세뇌. 잠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해피타임 보낼 때도 이 생각뿐이지. 찹찹찹. 이 정신적 과몰입 상태는 절대 끝나지 않아. 너님이 파산하거나, 아니면 지르거나, 둘 중 하나 할 때까지! ..지를 지어다! 지르는 자 평온할지어니.
그렇게 해서 또 한명의 풀 프레임 흑우가 탄생하는 거야. 음머~. 바친다. 내 모든 걸 캐논, 소니, 니콘에게. 이 시국이지만 아이 돈 케어. 하하하. 여기서 잠깐, 여러분, 이 시국이라도 카메라만큼은 이해해 줘야 돼. 선택지가 없어! 아예. 이러면 또 독일산 라이카를 사면된다느니, 미국산 핫셀블라드를 사라는 분 있을 텐데, 저기요. 세상 모든 사람이 두둑한 지갑 갖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기본 천 단위 찍는 브랜드를 어떻게 사란 말이오!
카메라만 사면 끝이냐? 아니. 거대한 기둥의 완성은 렌즈에 달렸거든. 이만한 거. 이따만한 거! 어우, 여긴 종류별로 색도 가지각색이야. 붉은 링 낀 녀석, 간혹 골드 링 낀 녀석도 있지. 보통은 시커먼스지만 간혹 대물 중엔 순백을 자랑한 것도 있어. 백형 아니랄까봐 하나같이 고가를 자랑하지. ...응?
그렇게 큰 카메라 사고 싶다고 해서 사고, 그렇게 우람한 렌즈 갖고 싶다고 해서 지르면, 안식을 얻고 극락왕생 하느냐? ...아니. 내 꼴 나. 전 재산 털어서 카메라에 플렉스는 해버렸는데, 막상 사 놓으니 손은 안 가고, 날 잡아 끌고 나가봤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명 지르는 꼴! 하하하! 카메라는 찍으라고 사는 거 아닙니다! 장롱보관용으로 사는 겁니다!
아무튼. 2.5킬로그램 지고 가며 나를 돌아본 하루였어. 아아, 이것이 바로 십자가 길 떠난 예수님 맘이구나! (찰싹!)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 들고 다니는 건데, 정작 카메라 무게에 눌려서 추억을 놓치는 일. 이래선 안 돼!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더 가벼운 장비를....지르기로요! 인생 뭐 있나! 지르고 보는 거지! 여기서 지금 장비 다 처분하고 똑딱이만 남겨 봐. 그럼 과거 반복 재생하는 거야. 어! 올해도 지스타는 열릴 것이고, 작은 내 발기력에 시무룩할 것이고, 그럼 대빵 카메라 살 것이고! 현자타임 온 몸으로 느낀 후 또 다시 평화로운 중고나라에 판매글 올리고 있겠지. 무한반복! 그럴 바에 다 지르고 만다!
자, 내 갓리적 논리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손들지 마! 안 보여! 하하하! 오늘 깨달은 것입니다! 카메라는 자고로 여러 대를 사 놔야 한다! 귀여운 거, 우람한 거, 광각, 망원, 사진용, 동영상용, 아주 세트로. ...미쳤다고? ...끄응. 흑흑. 그래 나 미쳤다. 살려줘!
...날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냐. 정말 간단하고 명료한 해결책이 있어. ...여친 생기면 됩니다. 결혼하면 됩니다. 끼요옷! ..집에 사랑하는 사람 있는데, 그 많은 카메라가 뭐 필요 있어. 뜨거운 밤(찰싹!), 그러니까 알콩달콩 사랑하는 모습 찍을 딱 1대만 있으면 충분하지.
동의하시죠? 카메라 덕후 유부남들? ....왜 불안하게 아무 말이 없어. 야! 형님들!
ff 3바디 들고다니는 용사아줌마 본 이후론 난 무겁고 큰고 싫으니 그냥 난 내갈길 가련다하고 1.5크롭에만 안착함. 원래는 골수 마포유저였지만 파나하는 꼬라지가 맘에 안들어서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