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예방접종
살다보면 신박한 경험을 할 때가 있지. 누가 날 감시하는 듯한 경험 말야. 일거수일투족 다 지켜보고 있다. 내겐 그 날이 오늘이었어! 호우!
내가 통풍 달고 산다는 거 말했었나? ...그래, 얼마나 포동포동 잘 먹었으면 벌써부터 발이 아파. 예전엔 부자의 상징과도 같은 병이었대... 끄응. 부자는 무슨! 아파 죽겠구만! 돈이라도 많으면 몰라, 현실은 월수입 제로 방구석 찐따! (찰싹!) ...워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어쨌든, 통풍 약도 다 먹어가겠다, 병원 갈 타임이 돌아온 거야.
이 시국에 병원? 코로나 19 득실할지도 모를 위험지역에? 게다가 하필, 부산에서 당당히 감염자 8명 배출한 곳이란 말야. ..아니, 뭐 그렇다고. 크흠.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인 법. 평소와는 다른 한적한 병원문턱을 기대할 수도 있잖아? 대기줄 0! 그럼!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 다 받자! A형간염 예방접종도 맞자! 칼을 빼들었어.
내가 B형간염보균자인 것도 아시려나? ...그래, 통풍에 B형간염에, 어우야. 다행히 탈모는 아니니 걱정은 마시고.(찰싹!) 아무튼, B형간염보균자는 무료로 A형간염 예방접종을 할 수 있어. 이게 다 여러분 세금 덕택이야. 정말 고맙습니다! ...응? 낭비? 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보균자가 A형간염 걸리면 뒤질 수도 있어. 목숨이 걸렸다고!
워워. 사실 나도 뉴스로만 곁눈질 한 거지, 자세히는 몰랐어. 갈 때 준비물이라도 필요한가 싶어 보건소에 전화 해봤어. 띠리링. 저 보균잔데 A형간염 공짜로 맞을 수 있나요? ..보균자라고 다 되는 건 아니고요,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정한 사람만 가능해요. 혹시 문자나 통지서 받으셨나요? 어...아뇨!
뒤통수가 얼얼했어. 뉴스에는 보균자면 다 맞을 수 있는 것처럼 써 놨단 말야. 아아, 가짜뉴스에 이렇게 당하네! ..근데 어차피 대상자였어도 보건소에서 못 받는 건 마찬가지였어. 이 시국에 보건소 전 업무가 코로나 19에 맞춰져 있거든. 다른 업무 전면 중단! 후우, 코로나, 너란 녀석.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올스톱은 너무한 거 아냐? 크흠.
그렇게 A형간염 예방접종은 까맣게 잊을 무렵, 갑자기 문자 한통이 오네? 띠링, 너님은 대상자입니다. 6월 31일 전까지 지정병원 가서 접종 하세요. 끼요옷! 뭐지? 정부에서 감시라도 하나? 앙? ...보건소 직원분이 체크해 줘서 그렇다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대한민국 공무원이 친절, 봉사정신 가득하다 해도, 민원인이 신청도 안한 사안까지 자기가 알아보고 신청해 줬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는 브라보. 부산 중구 보건소 이름 모를 여성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젠 공짜로 받을 수 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병원에 연락해봤지. ..따르릉, 준비물 필요한가요? ..올 때 보건소에서 증명서 떼 오셔야 합니다. 알겠죠? ..예쓰 맴! ..딸깍. ..말은 알겠다고 했지만, 모르겠어! 증명서? 대체 뭔 증명서? 후우. 그래서 또 전화했어. 어디에?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도우미, 042-719-8397번에. 맙소사. 이 시국에 A형간염 예방접종 문의라니... 아무렴 어때! 코로나만 병이냐, 간염도 병이다!
뚜루루루. 샬라샬라, 뭔 서류를 갖고 오라는데요, 어디서 떼나요? ..서류 필요 없어요. 문자 받으셨죠? 그냥 가세요. 전산망으로 다 등록되어 있어요. ..예스 미쓰! 크흑. 역시 인터넷 빵빵 뚫린 나라답게 서류 따윈 필요 없었어. 그렇게 해탈과 번뇌에서 벗어나 해피타임 보내고 있는데 이번엔 병원에서 전화가 오네? ..저희가 안내를 잘못 해드렸어요. 그냥 오시면 됩니다. 혹시 이 일로 보건소에 연락하셨어요? ...아뇨, 보건소는 아니고 질본에 문의했는데요. 끼요옷!
정말 이상하지 않아? 소름이 돋을 지경이야. 모니터 뒤에 도청장치 붙여놨나 살펴봤다고!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병원 원무과 직원분이 잘못 안내했다는 걸 알고, 수정해서, 다시 연락해줬다?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삼성, LG 서비스센터에서도 못 받아봤어. 아항?
아니면 지금 안 그래도 바쁜 질병관리본부에서 이 하찮은(찰싹!), 코로나도 아닌 사안 때문에 내가 가는 병원에 연락을 했다고? ...맙소사. 정말 그런 거라면 판타스틱! 공무원 일 한다! 박수 한번 주세요! 지금까지 철밥통이라 깠던 거 취소!
그런데 말입니다...이거 좋아해야 될 일 맞나? 난 고작 전화 3통 걸었을 뿐인데, 보건소랑 병원이랑, 질병관리본부는 내 정보를 모조리 파악하고, 업데이트하고, 공유하고 있어. 부산 사는 아무개 씨가 예약한 병원이 어딘지 까지 알아내는 정보력! ...웟더...냄새가 난다. 빅브라더의 냄새가! 소름 돋는 연계 플레이!
...응?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그치? 아무리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이라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 하하, 그래... 는 너님은 어떻게 우연이라 장담해? 앙? 혹시..? 보건복지부가 보낸 자객이냐! (찰싹!) ..죄송합니다. 이놈의 과대망상.
아무튼. 날 잡아서 병원가게 생겼어. 아침부터 시작되는 빈틈없는 스케쥴! 통풍약 받고, 공짜 A형간염 예방접종 맞고, 의사쌤이 시키면 간 초음파 받고. 이왕 간 김에 미루고 미뤘던 공짜 일반건강검진도 받고, 1년에 한번 보험 적용되는 스케일링까지 완벽 풀코스로! 이렇게 하면 대략 10만 원 정도 깨지는데...후우...우울해졌어.
그래도 이게 어디야.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위용! 무료 예방접종, 건강검진 서비스! ..라고 천조국 의료보험과 비교하며 자위 합니다.(찰싹!) 그러나 만족할 순 없지! 그럼! 통풍, 간염, 암, 백혈병, 알츠하이머, 조울, 외상, 고혈압, 기타 등등 온갖 질병 때문에 우리 행복이 위협받지 않을 때까지 더 힘내자고. ...응? 너무 좌파적 시선이야? 하하하, 지갑이 얇아지고 삭신이 쑤셔봐야 아, 건강보험이 답이구나, 느끼지! 너님에게 빈곤과 질병이 가득하여라.(찰싹!)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건강과 행복만 가득 하여라! 붕가붕가!
아무튼.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요! ...정부는 알고 있다. 너님의 병, 자주 가는 병원까지! 히포크라테스 센세 아나스타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도우미 : https://nip.cdc.go.kr/irgd/index_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