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을 부르는 인성
2시간 남은 일요일 저녁, 쇼를 보러 와 주신 모든 분들에게 썅큐! 건강하고 로또 2등 될 지어다! 오케이. ...응? 1등은 나 혼자 돼야지. 크흠.
남들은 다 주말을 반기고 있을 때, 홀로 편두통 겪으며 지친 몸을 이끄는 이가 있으니, 누구? ...뭐? 2교대 공장 노동자는 아냐! 아잇, 이 분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 바로 눈앞에 있는 존재! 백수! 취준이라는 명목 하에 주말마다 외출하는 일이 잦아. 토익, 공무원, 공채 죄다 토, 일요일에 몰려 있으니 어쩔 수가 없어.
오늘도 부산 어느 곳에서 시험치고 왔는데, 와우! 새로운 경험이었어. 내 생애 이렇게 막가파식 수험생은 처음 봤걸랑. 등장부터가 심상치 않았지. 이 시국에 기침을 계속 해 대는데 하필 내 바로 옆자리였단 말야. 아무리 한 반에 20명 듬성듬성 앉았다 하더라도 이건 좀!
뭐, 그럴 수 있어. 목이 가려워서 기침 나올 수 있지. 이해해. 그런데 마스크 내리는 건 무슨 심보야! 처음엔 벗은 줄도 몰랐어. 무엇이 맞을 까요 아테나님께 물어봅시다 경건한 의식 치르기에 바빴으니까. 한참 문제 찍고 있는데 옆에서 나긋한 감독관 대화가 들리더군. ..마스크 제대로 써 주세요. ..답답해서 그런데 내리고 있을게요, ..써주셔야 합니다. ..시험 치는데 방해 되잖아요! 말 걸지 마세요! ..웟더 맙소사.
이런 싸가지 가출한 놈을 봤나! 당장 퇴실 시키세요! ..속으로만 생각했어. 크흠. ..방구석 여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라고! ..아무튼. 그 후 어떻게 됐을 거 같아? ...놀랍게도 2시간 내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진행됐다? 나갈 때도 코 아래 걸치고 있더라.. 이거 직무유기 아닙니까!
몰라, 참고 넘어간 감독관 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냐. 대략 50대 누님이셨걸랑. 이제 한참 취업하느라 고생하는 어린놈의 쉐키가 답답하다는데 어쩌겠어. 더욱이 이 자식, 낌새가 장난이 아니었단 말야. 쫓아내면 난동이라도 부릴 기세. 그럼 반 전체가 혼돈 파괴 망각에 빠지겠지, 바로 옆 자리 난, 칼부림 당했을 수도 있었지!
다행히 이런 환경에서도 내 집중력은 줄지 않았어. 오히려 최대로 하이한 기분 되더라고. 오우 찍신님 감사합니다! 경쟁자 1명이 줄었군요. 저 따위 행실자가 필기를 통과할 리가 없지. 그럼! 하하하! 이로써 내 합격률은 0.0001% 올랐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그 인간이 합격한다면? ..이게 시험이냐! 안 돼. 그라믄 안 돼! 다수의 안녕과 건강을 내팽개친 사람이 합격한다고요? 워호. 귀사의 무궁한 몰락을 기원합니다!
이래서 인성검사를 보구나. 역시 시험 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사실 오늘 이전까지만 해도 인성검사 회의론자였어. 300문항 가까이 되는 그 괴랄한 시험으로 어떻게 사람 됨됨이를 본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거든. 여기 취준생들 인정? ...인정!
심지어 일부 회사에선 등수까지 매긴다니까. 인성에도 점수가 있다? 물론 이타적이고, 책임감 있고, 고결한 사람이 있지. 그러나 이걸 자로 잰 듯이 수치화 시킬 수 있다는 데엔, 끄응.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게 무슨 드래곤볼 전투기 측정치냐! 스카우터 쓰면 다 나오게? 호오, 당신의 인성력은 1억이군요! 예수에 근접하겠어! ,.이런 수박바!
내가 인적성에서 떨어져 봐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냐. ..실은 1번 있어. 아니, 2번 이었던 거 같아. 끼요옷! 흑흑.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거 보다 더 기분 더러워. 공부도 못하는 게 인성도 딸려? 난 인간쓰레기인가? 공자님 보기가 부끄럽다. 자존감 스크래치 팍팍! 후우... 응? 미친 놈 제대로 걸렀다고? 야! 내가 여기서나 똘아이지, 밖에선 정상인 코스프레 잘 한다고! 적어도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아! ...상처받았어. (찰싹!)
여하튼. 그럼 이제 인성검사 찬성론자냐? 그럼! 해야지. 단! 제대로! 요령만 알면 누구나 패스하는 그런 검사가 아닌, 대충 함정카드 문항만 솔직하게 답하면 신뢰도 뻥튀기 되는 시험지가 아닌! 진짜 인성검사! 전문가가 1:1로 2시간 이상 상담하는 진정한 검사를!
...왜? 꿈같은 소리야? ..비용? ...알았어. 우리네 저쪽 아래 말단 직원이야 막 뽑으라지. 값 싼 대량 시험지로 쫙쫙 하라고 해. 그러나! 소위 고오급 공무원, 임원들께선 이 정도 노력 필요하지 않을까? 아항? 국민을 섬긴다, 사회를 생각한다, 직원과 노동자를 최우선한다는 분들 중에 일부는, 일부라고 했어, 인격파탄자가 끊임없이 나오니 시험이 곡할 노릇이지.
그 분들도 다 인성검사 받았을 거잖아? 임관 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 하는 거 마냥 좋은 말만 했을 거잖아? 점수만 따지면 아주 최상위 찍었을 걸? 당신은 특등 인성자입니다! ..그렇게 합격해서 결과가 뭐야. 국민을 개돼지라 하질 않나, 죄는 돈으로 치를 수 있다질 않나. 별장에서 뿅뿅 파티를 열고, 왕위 계승하느라 주가조작까지. 브라보. ...아차! 부회장님은 인성검사 따위 안 받겠구나! 왕위계승 발언은 취소!
평온한 일요일을 괜히 울컥하게 한 건 아니지? ...그래, 그 인간은 너무했어. 필기 붙더라도 면접에서 오늘 감독관 만나라. 캬하하. ..**씨, 이 시국에 마스크는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제대로 써야 합니다! ..그걸 아는 인간이 코걸이를 해? 양복 빼 입고 왔더니 생각마저 탈곡되셨어요? 너, 탈락!
키히히, 역시 남 잘못되는 거는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니까! 어? ... 인성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