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초량천
퍼부었어! 미친 듯이! 집이 흔들릴 정도로! 여기는 부산 동구 초량동! 아올!
내 생애 통 털어서 역대급이야. 어후, 오직 비 내리는 소리로 가득한 밤이었지. 그래도 괜찮아! 나야 세상 가장 안전한 방구석 침대 안에 있으니까! ..은 개뿔! 하수구가 물을 뿜네? 분노의 역류가 일어나네? 앙! 여기 달동네라고! 거기다 4층! 끼요옷!
베란다 자연 분수 펼쳐지는데 멘탈이 나가버렸어. 처음엔 뚫어뻥으로 막아보려 했다? 응, 그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행동이었고요. 주체할 수 없는 급똥마냥 흙탕물이 계속 올라와. 세탁기가 잠기고, 실외기가 잠기고, 방안은 물바다가 되고, 끼요옷!
그제야 창문 열어 젖히고 세숫대야로 퍼기 시작했지. 워호, 아래층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어. 그 잠깐 사이에도 모기가 들어오더라. 맙소사. 옆에서 엥알엥알 되는데 아주 환장의 콜라보.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암흑천지가 된 거야. 전기가 나갔어. 호오, 이제 정전까지! 하고 봤는데 딴 집은 초롱불 멀쩡히 들어와 있는 있네? 이건 대체 뭔 상황?
..어후, 끄흑. 방안 한 구석 멀티탭을 보고 나서야 알아차렸지. ...그래! 이런 안일한 자식! 물에 닿으면 가장 위험한 물건을 방치하고 있었어! 1순위로 전기코드 빼야 하는데! ...워후, 다행히 차단기 갓센세께서 내려가 주셔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피카츄 통구이 될 뻔 했지 뭐야.
다만 목숨은 구하긴 했는데, 한창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던 대본이며 자료 다 날아갔어. 켈켈켈. 어제 지각한 이유가 이 때문. 여기서 2차 멘탈 바사삭 겪은 후에도 고난은 계속 됐으니, 화날 대로 화난 어머니 옆에서 청소! 그런 거 있잖아. 기분 최저인 상사와 옆에 딱 붙어서 일해야 하는 신입 심정. 진정한 재난이었지.
다행히 하수구는 곧 제 기능을 되찾았어. 추측하건데 산에서 떠밀려온 흙이나 나뭇가지가 구멍을 막았나 봐.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쳤고. 이후엔 끝도 없는 걸레질에 보일러며 에어컨 풀가동해서 말리는 일 뿐. 밤 10시에 말야!
근데... 그... 목숨을 잃은 분들에 비하면... 후우. 기분이 묘해. 집으로부터 도보 10분 거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니.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장소에서... 이건 천재지변일까, 아니면 인재일까? ..모르겠어. .. 미리 경고하고, 통제했다면 막았지. ..인재다! ..말하고 싶은데, 끄응. ..공무원 욕하기엔 너무 급작스러웠던 점도 있고... 어렵다.
...아잇! 그래도 잘못했어! 욕먹어도 싸! 사고가 벌어진 초량 지하차도. 여긴 누가 봐도 침수되기 딱 좋은 환경이야. 기차 선로 아래로 깔린 지하도인데, 여기 물 흡입구가 거진 6차선 급이거든. 지하도 내부는 2차선 차로에 옆에 작은 인도가 전부지만. 더욱이 이곳은 매립지! 부산항 1부두를 코앞에 두고 있는, 해수면과 쌍벽이루고 있는 곳이지. ..막았어야 돼. 23일 오후 8시 호우경보 났을 때부터.
이런 사태 터지고 나니 그 사람이 더욱 미워. 거제도로 떠난 그때 그 시장~ 오~ 거돈. 에휴. 이게 뭐니! 대체! 어디 시장 욕하고 싶어도 공석이라 할 수가 없네! 앞으로 민주당 부산시장은 없을 거야. 적어도 2029년 전에는. ..그럼 그 아래 동구청장은 어떨까? 내가 잘 한다 물고 빨았던 우리 최형욱 구청장. 앙? ..쉴드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잇! 잘못하셨어!
이제 초량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일단 사고 중심지 지하도. 여길 폐쇄할 것 같진 않아. 요기가 생각보다 교통 요충지걸랑. 시내에서 도시고속도로로 가는 길목, 북항재개발 지역과 연결하는 역할까지 해. 막아버리기엔 너무 손해가 크지. 그럼 배수로를 만드나? 그러기엔 위치가 너무 낮아서 이번처럼 만조 되면 말짱 도루묵. ..방법이 없다. 사람 갈아 넣을 수밖에! 전담요원 붙여서 지속적 모니터링 하세욧! CCTV 왕창 달리겠구먼 그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초량천. 청계천처럼 하천복원 사업을 하고 있어. 여긴 이전에도 침수 때문에 문제가 됐지. 하천 주변 도보를 20cm 올리는 바람에 주변 상가로 물이 다 들어갔거든. 뒤늦게 부산시가 재시공 들어갔는데, 참, 이번 사태로 어떻게 될는지 아리송.
이미 완공 코앞이라 뒤엎을 거 같진 않아. 이거라도 있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는 평도 있고. 아항? ...위치? 부산역 바로 맞은편이야. 초량시장, 불백 있는 거리. 흐음. 글쎄. 초량 주민으로서 평하자면, 어... 이건 양날의 검이야. 안 그래도 산 많은 초량에 꼭 필요한 배수로! 구봉산과 수정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 받아내려면 천 하나는 필요하지.
문제는 바다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 밀물 한 가득 들어오면 물이 빠질까? 이번에도 그래. 부산역 바로 옆이건만 지하상가 완전 물바다 됐잖아? 애매하다 애매해. ...응? 아니! 나 문과야! 어떻게 알겠어. 이 문제는 부산시 담당자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세요!
아무튼. 어제 밤만 해도 계단 폭포 이뤘던 부산역이, 오늘 아침엔 말끔한 상태로 바뀌었지. 밤새 물 푸고, 청소한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어. ..그리고 구조 작업에 고생하신 119 구조대. 8명에 달하는 인명을 구출하셨어. 박수 한 번 주세요!
....그럼에도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세 분. 유가족.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부산 지하차도 침수 사망사고, 지자체 미흡한 초동 조치 논란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72411431398832&utm_source=naver&utm_medium=mynews
집중호우 부산, 인명피해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5026.html
구조 순간 엉겁결에 놓친 딸의 손 : https://news.joins.com/article/23832746
부산 역대급 폭우 포토뉴스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72322061609105
보도보다 낮아진 상가, 초량천 재시공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61619334036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