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흑염균
A형간염 예방 접종 맞은 사람? ...없어? ..그래. 다행이네. 핫, 난 무려 국가에서 접종하라 문자까지 보내준다? 왜? ..B형간염 보균자니까! 걸리면 생사를 해맬 수 있으니까! ..마침 오늘 하늘도 흐린데 딱 병원가기 좋은 날, 친히 내방했지.
입구부터 발열체크에, 문진표 작성에, 접수에, 수납에, 기다림에, 그렇게 겨우 의사쌤 만날 수 있었어. 1시간 30분 대기한 끝에 받은 처방은 단 1분! 1층 주사실에서 주사 맞고 가면 됩니다. 끝! ..괜히 허무하더라? 그래서 비장의 카드 들었지. ..센세! 이참에 간 초음파랑 피검사도 하겠습니다! 끼요옷!
..그런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바로 14만원 사라지는 마법! 끄응. 그나마 건강보험, 무료접종 혜택 있었기에 이 가격 나온 거야. 안 그랬으면 34만 9천원 내야했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병원비를 엄마카드로 긁었걸랑. ...아니! 나도 내 돈 주고 싶지! 백수인 걸 어떡해! (찰싹!) ..자랑은 아니고, 크흠. 어쨌든, 집에 들어가자마자 맷돌에 갈리는 신세 됐어. 엄마 왈, 집구석에만 있는 놈이 무슨 검사야! 건강 그렇게 생각하면 새벽 뒷산에 가서 운동을 하던가!
불효자가 무슨 반박을 하겠어. 눼이눼이, 제가 잘못 했습니다 빌 수밖에. 헌데 이상하지, 회색 구름 바라보는데 마음이 꿍하더라? ..섭섭했어! 다른 것도 아니고 건강 때문에 돈 쓴 건데! 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간 상태 체크한 게 어때서! 그럼 낳으시고 키우실 때부터 B형간염 넘겨주지 말던가! (찰싹!) 에잇! 이렇게 된 거 검사에서 암 나와라! 생존률 100% 초 초기암으로! (찰싹!)..커헉. ..선 넘었어? ...그렇구나. 미안합니다.
..에이, 속으로만 잠깐 생각한 거야. 서운한 마음에. ..사실 간암은 초기에 발견되더라도 5년 생존율이 70%가 안 돼. 그러니 방금 전에 한 말은 있을 수 없는 얘기야. ..아참, 난 엄마 뱃속부터 B형간염이란 놈과 같이 자랐어. 모자감염 직통으로 넘어왔지. 뭐, 이거 갖고 엄마 원망한 적은 없어. 진짜야! ...잠깐, 엄마가 그렇게 화를 낸 까닭은 미안해서일까? 아항? 본인 때문에 병원 가는 자식 보기 싫어서? ...그럴 필요 없는데.
아무튼 B형간염! 정말 묘한 녀석이야. 남들은 염증을 일으킨다, 암 걸린 확률을 높인다 경고하는데, 정작 보균자인 나는 전혀 느끼질 못해. 증상이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오히려 이 녀석이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놈이야 말로 나랑 평생 함께한 사이잖아. 마치 한 지붕 두 살림처럼.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지 치료약조차 없어. 저쪽에서 공격을 해야 지지고 볶고 할 텐데, 그러질 않으니 그냥 지켜보는 거지.
허나 이 평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알 수가 없어. 평생 백년해로 하면 좋으련만, 그럴 보장이 없거든. 지금이라도 전쟁통 안 되라는 법 없지. 그러나 속에서 인체대전이 벌어진다 한들 난 알 수가 없어. 왜? 간이니까. 하필 침묵의 장기라는 간이니까! ..그러니 뭐다? 예방하려면 주기적으로 피검사며 초음파 검사며 CT며 MRI를 할 수밖에 없다!
의사쌤들은 최소 연 2회 검사 받으래. 정말 이 권고 따르고 싶어. 아니, 2번이 뭐야, 달마다 하고 싶어. 그러나 그러기엔 어머니의 분노가 허락하지 않아. 1년에 한번 받는 것도 오늘 같은 각오해야 하는데 어쩌겠어. ..통장잔고도 문제지. 보험 다 누려야 14만원! 메이저 치킨이 7마리! 그나마 저렴한 초음파라서 이렇지 MRI는 한번 할 때마다 GTX3080 값이 날아가! 아잇! 이럴 거면 병원비나 주고 권고해 주던가요! 이런데 어떻게 연 2번이나 받습니까! 끄흑!
..후우. 이 모든 넋두리를 엄마한테 하고 싶었어. 그러질 못하니 여러분에게 대신 푸는 거지. 캬하하. 미안! ..여하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병원비 걱정 없는 삶 누리길!
나는 내 안에 B형님과 오붓한 시간 갖고 있을게!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