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안아주는 공간은 어디
요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난 병원에 갔다 왔어. 전에 말했었나? B형간염 보균자라 1년에 한 번은 간 초음파 받아야 하걸랑.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병원 가는 김에 겸사겸사 동네 한 바퀴 했어. 오늘은 그 감상 풀어보는 시간! 박수 한번 주세요~
일단 어느 동네인지부터 밝혀야겠지? 부산 산복도로, 초량동, 보수동, 대청동, 영주동, 동광동. 어.. 더 쉽게 풀자면, 부산역 내리자마자 보이는 산동네, 남포동에서 정북방향으로 보이는 달동네가 바로 요 일대지.
사실 세련된 곳은 아냐. 지은 지 30년 넘은 집에, 구불구불 차도에, 근손실 허락하지 않는 높다란 계단에, 좁은 골목길엔 가끔 고양이가 휘릭 지나가고! 캬하하. 근데, 난 이래서 여기가 좋아. 태어나고 자란 곳, 보잘 것 없는 몸뚱이 받아주는 곳..
...응? 뜬구름 소리야? 워호. 그렇다면 속세에 찌든 여러분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예시 하나 들겠어. 바로 집값! 이 살기 좋은 동네엔 진짜 전세가 남아있걸랑. 오늘 영주동에서 발견한 방 2칸짜리 전망 좋은 집이 얼마일까? ...무려 전세 500! 월세로는 15! 하핫! 눈빛이 달라지죠!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저만 알고 있을 겁니다! (찰싹!)
물론 교통이야 불편하지. 나이 많은 어르신이 살기엔 경사도 가파르고. 그러나! 방구석 백수들에겐 이보다 최적의 장소가 없단 말씀! 전국에 100만 한량들, 부산 산동네는 품어줄 수 있어. 인정? ..인정!
그런데 말입니다.. 조용하기만 했던 이곳에 묘한 전단지가 붙기 시작했다? 내용하야, 매매 전세 삽니다. 최고가 보장. ..뭐지? 강남 큰손들이 여기까지 진출하려는 거야? 아니면 재개발? ..놀래서 시청 도시계획 살펴봤어. 결과는요! ..다행히? 다행히. 재개발이 아닌 소위 르네상스 사업을 한 대. 왜, 페인트 새로 칠하고, 벽에 그림 그리고, 그런 거 있지? 마치 부산 감천문화마을처럼, 아항?
그럼 전단지가 붙는 이유가 뭘까? ..여기 부동산 전문가 없어? ...흐음. 내 생각엔 카페나 식당 용도로 사지 않을까 싶어. 그도 그럴 것이 달동네라 경치는 근사하거든. 실제로 분위기 있는 데가 많이 들어섰어. 이를테면 초량 1941이니, 영초산방이니, 산복도로 370이니, 아디스아바바니. 이름만 들어도 커플들 주머니 털어먹는데 최적화 된(찰싹!).. 크흠, 참고로 초량 1941, 예전엔 창틀 공장이었어.
아무튼, 나야 아파트단지 들어서지 않는 것만 해도 만족해. 재개발만 했다하면 똑같은 아파트에, 주상복합에! 지긋지긋하다고! (찰싹!) ..아니! 내가 틀린 말 했나! 동네 특성이고 분위기고 전부 뭉개버리지. 일례로 범일동! 부산진시장 근처로 형성된 좁은 골목길, 서민 냄새 물씬 풍기는 식당, 기찻길 옆으로 쌓인 돌담, 그리고 형님들이 호객행위 하는 정체모를 술집까지! 범일동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이 있었단 말야. ..이젠 볼 수 없어. 오직 아파트 뿐.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있지.
..끄응. 내가 철이 없는 걸까? 꿈에 잡혀있는 사람? 겨우 감상에 젖어 지역 발전 막는 인간? ..길을 넓히고, 건물은 새로 짓고, 편의 시설 빵빵하게 들여야 할 판에 이딴 소리 하고 있으니... 아잇!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재개발을 하더라도 “성의”를 갖고 할 수 있잖아. 그 동네의 문화, 역사 간직하는 계획.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공간, 애착이 가는 장소!
이렇게 하면 고질적인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어. 자기 동네를 사랑하는데 굳이 강남이나 해운대 센텀시티로 이사 갈 필요 없잖아? 앙? 나보고, 엘시티 30억 아파트랑 영주동 500 전셋집 중 어디 살래 하면 난 당연 영주동 택해. ...진짜야! 내가 엘시티에 왜 살아! 아는 것도 없고, 추억도 없고. 숨 막히는 프레스티지~와 외쿡차 향연에 발 담글 필요 있나!
...응? 매매 차액을 생각하라고? 에이, 난 집마저 돈벌이로 쓸 만큼 철저하지 못 해. 집은 편안하고 쉴 수 있어야지. 그럼!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 하고 만다. 지금 테슬라, 엔비디아, LG화학! 몰빵 할 종목이 얼마나 많은데 엘시티가 웬말이뇨! (찰싹!)..커헉. ..단칸방에서 30억 주식매매라, 캬아.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
뭐, 이건 어디까지 내 주장이니까 판단은 너님들에게 맡기겠어. 에헴, 추석 앞두고 반목과 분탕질만 쳤나? ...미안합니다. 알았어. 남은 추석연휴엔 줄곧 청정한 섹드립과 개소리로 찾아올 것을 약속드리면서!
즐추!
한국인이 유독 집값에 집착하는 이유, 유현준 교수 : https://www.youtube.com/watch?v=kXQ9YeO9V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