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혐오증
호우. 어제 밤은 정말 아름다웠어.. 새벽 2시, 냉장고 문을 여는데, 아래에서 타닥타닥 울리는 소리. ..예아. 바퀴벌레! 얘들은 생존에 최적으로 진화했다면서 어째 발소리는 이 모양이야? 나 여기 어둠 속에 있다, 틱틱틱! ..이건 뭐랄까, 그래! 치와와가 발톱 세우고 장판 위를 갈 때, 딱 그 소리!
그나마 이번엔 얌전한 녀석이었어. 고무장갑, 집게, 휴지 장착할 때까지 기다려 줬거든. 이제 압착만 하면 끝나는데, 문제는 여기서 터졌지. 호로록! 갑자기 2리터 생수병 박스 아래로 순간 이동하더니, 뵈질 않아! 웟더.
어떡해. 한통 한통 치워가며 찾을 수밖에. 마치 1002호실에 숨어있는 존윅 잡으러 들어간 악당 심정이었어. 언제 튀어나와서, 내 엄지발가락에 연필을 박아 넣고, 생화학 테러를 할지 모를 존윅! 근데 이상하지. 6분을 넘게 떨어가며 통을 치웠건만, 없어. 안 보여. 호우!
이것이 전설로 듣던 “그” 상황인가! 분명 봤는데 사라진, 결코 잠들 수 없는 상황! ..잡았게 못 잡았게? ..잡았어! 달밤에 20분간 탐색전 벌인 끝에 찾았다고! 어디서? 생수통 아래가 아닌, 전방 42도 상향선 창틀 사이에서! 엄지손가락만한 더듬이를 부라리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놓쳤을 때 공포감 한번 만끽하고 나니 과감해 지더라고. 망설임 없이 집게로 머리와 몸통 사이를 짓이겨 버렸어. 캬하하! 하하! 하... 절대 이렇게 하지 마! 식겁했어! 이 생명력 만땅 생명체는 이 상황에서도 기어가니까! 머리에 남은 다리 2개로! 파닥파닥!
어쨌든. 통통한 지방층을 휴지로 감싼 다음 변기 소용돌이 속에 흘렸지. 혹시 모르니 생수통은 씻고. 참. 꼭두새벽에 반쯤 멍한 상태로 화장실에서 청소하고 있노라니, 공상하기 딱 좋았어. 그때 떠오른 화두, 난 바퀴벌레를 죽여야 했을까? 거미, 풍뎅이, 딱정벌레, 잠자리는 다 살려주면서 왜 바퀴벌레는? ..흐음.
해충이다, 더럽다, 박멸해야 한다, 세스코! ..그러나 직접 피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단 말이지. 걔들이 모기처럼 피 빠는 것도 아니고, 파리처럼 대 놓고 음식에 알 까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간 다 자는 밤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음식 부스러기 좀 먹겠다는 건데, 앙?
심지어 생각보다 깨끗하대. ...진짜야! 인간들이랑 살다보니 더러운 환경에 노출된 거지, 원래는 몸단장에 목숨 걸 만큼 깔끔 떤대.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미래 식량으로 취급하겠어. 설국열차 바퀴 양갱은 공상 과학이 아니란 말씀.
그래도 징그럽다면 말리지 않을게. 이 외모지상주의자들.(찰싹!) ..너님이 그렇게 쓰다듬고 빨던 고양이 위 속에도 꽤 들어갔을걸? 최소 100마리 예상합니다. 아그작 아그작. 키틴질 가득 멈은 농후한 혓바닥! 거기다 키스하고, 손가락 넣고, 어우야.(찰싹!) ...농담.
아무튼. 난 더 이상 바퀴벌레를 죽이지 않으려고. 만들어진 공포에 겁먹지도, 혐오하지도 않을 거야. 다시 만나게 되면, 청소 게을리 했네, 자책하지 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께 대접한 물. 깨끗한 거야. 물론 바퀴벌레가 한 바퀴 훑긴 했지만, 빡빡 씻었지. 찡긋!(철썩!)
세상에 나쁜 바퀴는 없다! 인간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