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전공서적, 킬로 당 83원으로 대체되었다
가끔 그런 적 없어? 격하게 정리하고 싶다. 집을 깨끗이 비우고 싶다. 안 쓰는 물건이랑 물건은 죄다 처분하고 싶다. 캬하하. 오늘 내가 딱 그 상태에 빠졌어.
내 방에 40%는 덕후템이고, 50%는 책이걸랑. ..진짜야! 이래봬도 서점 많이 들락날락 했단 말씀! 책은 피규어랑 비슷해. 한번 모으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맘에 드는 거라도 발견하면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하악하악, 이 문장은 내꺼라능! 소장할 꺼라능! (찰싹)
읽지도 않으면서 그저 폼 나게 배치한 책 많지. 그 대표엔 전공서적! 학점은 C+라도 책은 꼬박꼬박 샀어. 이놈들만큼 자랑하기 좋은 수단 없잖아. 캬하하. 두껍지, 더럽게 두껍지, 기본 1000페이지지! 두께만큼 가격 또한 모친 출타지.(찰싹!)
오해할라. 난 다 중고로 샀어. 전에 말했었나? 내가 태생이 보수동이야.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걸어서 30초 거리에 살았지. 그러다 보니 남들은 선배한테 물려받거나 알라딘 중고서점을 뒤질 때, 난 결국 보수동을 찾게 되더라고. 차비 들고, 값이 그다지 싼 것도 아니고, 책 상태가 좋은 것도 아닌데. 참. 이래서 어릴 때 추억이 무섭구나.
아무튼. 그렇게 꾸역꾸역 모았던 각종 학, 론이었건만, 졸업 후엔 펼쳐 본 기억이 없어. 여러분은 어때? ...예아. 그치? 정말 계륵! 갖고 있자니 공간만 차지하고, 버리자니 뭔가 아쉬워. 추억을 내팽개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책인데, 지식의 보고인데,
하지만! 죽을 때 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리 해버리자! 팔면 5만원은 받겠지! 그래서 찾아봤어. 알라딘 중고서적 매입예상가! ..어디보자, 한국정부론이, 응? 최상이 4700원? 신품 2만 8천 원짜리 책이 4700원? 아니! 이건 좀.. 다음, 헌법학 4판. 응? 매입불가? 오래 돼서 매입불가! 야! ..잠깐, 이건 또 뭐야? 이름이나 줄이 그인 책은 매입하지 않습니다? 예? 다시 한 번 말해주세요? 선생님? 센세!
낄낄낄! 크흑흑.. 32권 중에 이런 저런 이유로 매입 불가가 31권! 팔 수 있는 책, 단 1권! 정말 요도와 항문이 막히는 기분이네! (찰싹) ..세계외교사만 살아남았어. 933쪽 양장본 서적이, 무게만 1.7KG에 달하는 거대한 놈이, 정가 3만 5천원을 자랑하던 녀석이, 중고 낙찰 예상가는 5300원. ..에라이! 안 팔아! 내가 왜 팔아! 차라리 똥 닦는 용도로 쓸 거야!(찰싹!)
대학 새내기 여러분, 잘 봤지. 전공서적은 뭐다? 인생의 낭비다!(찰싹!) 교수님 주머니만 채울 뿐이다!(찰싹!)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버텨. 책이야 선배, 친구,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돼. 진정한 지식은 너님 머릿속에 남는 것!
..끄응. 정 사고 싶으면 고전을 사. 이미 저자가 저 세상 사람이라 신판 안 나오는 거 있지? 10년 지나도 변함이 없는 책들, 아항? 왜, 자본론, 국부론, 군주론, 이런 것들 있잖아? ..그렇지 않고 개정판이다, 신판이다, 제6판이다 하는 거는 걸러! 1년 지나면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려! 풀다 버리는 문제지랑 다를 바가 없어. 무늬만 그럴싸한 수험서적!(찰싹!)
어쨌든. 씁쓸해. 책 정리는 물 건너 간 것 같아.., 잠깐! 아니지! 내겐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잖아! 저기 교보니 알라딘이니 YES24처럼 깐깐하지 않은, 이래저래 책이라면 받아주는 안식처! 오랜만에 헌책방 향연에 흠뻑 빠져 보실까!
..는 보수동에서도 매입하지 않고요! 하아. 안 본 사이 책방골목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 줄줄이 폐업! 임대료 못 내서 떠나는 상인들. 전공서적 거래처로 가장 유명했던 대우서점 역시 문을 닫았어. ..어느새 헌책조차 받을 여력이 없어진 장소가 돼버린 거야.
지자체에서 10년간 30억을 투입하고, 공중파에서 유시민 작가가 놀러가고,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부산 편에서 당당히 분량 차지하기까지 했지만, 점점 책향기가 옅어져. 최근엔 입구에 지상 18층 오피스텔이 들어선대. 이런..
모르겠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걸까? ..중고책 마저 대형서점에서 주고받는, 종이보다 스크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보수동은.. 크흠. ..아잇! 상인분들 더 분발하세요! 더 싸게 팔고, 더 친절하고, 사진도 맘껏 찍게 하고! ..이런 되도 않는 충고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안타깝다 야..
여하튼! 방구석 한 가득 전공서적 가진 이들이여! 팔 데 없어! 폐지 값이야! 킬로 당 83원! 끼요옷!
괴담 카테고리에 올리지 마시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