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님
그.. 오늘 백기완 선생님 영결식이었지. 영원히 떠나보내는 시간이라, 참 아름다우면서 아릿한 낱말이야.. 사실 난 선생님을 잘 몰라. 추억을 공유하지 않았기에. 아니, 변명이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었어. 2016년 촛불집회 때 빠짐없이 나오셨던 분이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물도 안 마셔가며.. 난 그때 뭐 했지? ..방구석에서 관망만 했구나..
이젠 어떡할까? 그냥 모른 사람 죽은 듯이 잊어야 할까? ...아니! 그 분이 끝임 없이 젊음 속에 손짓했듯이, 이젠 내가 그 분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야 해. 가즈아!
1932년 북한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셨어. 46년 남으로 오셨지. 고향에 갈 수 없다는 것, 세상을 다 가질 듯 철모르게 뛰어놀던 공간을 마음속으로만 떠올려야 하는 것, 이 아픔을 우리가 어찌 알겠어.
뭐, 구닥다리 통일관이다, 언제 적 민족주의냐,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는 거 알아.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눈물로 터놓는 진심을 본 이상, 이해해. 나라도, 너라도 선생님처럼 그랬을 거야. 인정?
이건 8.15 광복 전후 경험담을 들려주신 영상. 기니까 보고 싶은 사람만 나중에 봐.
일제 치하 잔혹한 짓을 어린 나이에 직접 보고 느끼셨으니까, 그 울분. 참담함. 후우.. 김구 선생님과 인연이 두터웠어. 백기완 선생 가족이 김구 선생님을 많이 도와주었고, 이에 김구 선생님 또한 백 선생님을 많이 아꼈대.
그래서일까, 잔악한 쪽바리(찰싹!)..일본 군국주의 종간나 애미나이들, 그에 부응해 반민족행위 한 싸갈쓰 놈들에게 단호하셨어.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백범 김구 연구소 소장을 맡기도 하며,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까지 열변을 토하셨지.
다음 영상은 1974년 유신정권에 저항한 모습. 1분 30초에 백기완 선생님과 장준하 선생님이 나오셔.
서슬 퍼런 박정희 시대에 민주주의를 외치다니, 이 용기! 나 같은 겁쟁이는 꿈도 못 꿀 일이야. 그, 박정희 빠들도 인정하자! 경제 일으킨 건 좋아! 잘 했어. 뭐, 나야 이것도 탐탁지 않지만, 넘어갈게. 그러나 유신이며 독재며 남산의 부장들 찍은 건 잘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권력에 눈 돌아간 박통이 내린 긴급조치 1호,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민간인도 군사재판 받는다! ..이 어처구니없는 기만에 처음으로 구속된 분이 바로 백기완, 장준하 선생님.
민주화 이후에도 여러 사회운동에 활발히 참여하셨어. 2009년 용산 재개발 “학살”, 2014년 세월호, 2016년 촛불혁명, 그 외 수많은 노동자 희생을 다독이고 목소리를 내 주셨지.
용산 학살 영결식.. 이명박은, 참..
사람이 주인 된 세상을 만드는 것! 크흑!
내가 준비한 건 여기까지야. 죄송스러워. 자격도 없는 놈이 선생님 일생을 운운한 것 같아서.. 아무렴 어때! 선생님은 좋아하셨을 거야. 썩어빠진 정신머리 바로 잡아라! 호통 치실지언정, 날 아껴주셨을 거야.. 언제나 그러셨으니까. 두려움에 떨리는 발을 단단히 잡아주시던 분이셨으니까.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