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소녀의 눈물은 한 컷으로 담지 못 한다
이야, 장마전선 위에 걸쳤다고 이렇게 쾌적해 질 줄이야! 여기는 부산, 저녁부터 비가 내리더니 공기가 가을향기를 띈다! 드디어! 호우!(...)
자, 진정하고. 오늘 주제는 어제 예고한 대로야. 찍새와 사진기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뭔 소리야?) 아니 왜, 최근 아프간 탈출민 사진으로 언론이 시끌 했잖아? 극적으로 카불공항 탈출해서, 각종 코로나 검사 받은 후, 마침내 진천 기숙사에 도착한 이들을, 600mm 망원으로 촬칵! ..참, 카메라 만지는 사람으로서 심정이 착잡해..
일단, 난 작년 부로 사람 찍길 포기했어. 일부 특수한 사례, 이를테면 서로 합의했거나, 전문 모델이거나, 행사 무대 위 모습 정도를 제외하곤 절대 찍지 않았지. 누구에게 불편 주면서까지 카메라 들고 싶지 않거든. ..뭐, 속으론, 나도 사람 찍고 싶다, 거리의 노숙인, 자갈치 시장에 강인한 상인들, 문득 지나친 선남선녀, 때가 묻어도 아름다운 아이들을 담고 싶다, 외치지만, 그러나 안 돼! 사진보다 사람이 먼저다!
대신 힘없는 동물을 마구 찍었어. 초상권 침해해봤자 불쾌할 일 없는 고양이가 대표적이지. 그런데 이마저도 양심에 찔리네? 곤히 잠든 녀석들 앞에서 기계식 셔터로 철컹! 단잠 깨든 말든 마구 셔터 눌러댔으니, 으휴, 반성합니다. (...) 지금은 조용한 똑딱이로 몰래 촬영하니 안심하시라. 참고로 내 도촬은 실패한 적이 없어. (짝!) 워워! 오해 멈춰! 사람 도촬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아마추어 장비병 환자조차 촬영 상도덕을 고민하는데, 하물며 전문 사진 기자님들이야 얼마나 현자타임을 가지겠어. 취재 나갈 때마다, 내 행동은 옳은가? 난 진실을 컷에 담는가? 고민했을 거야.. 이번 아프간 특별기여자를 찍은 기자님 또한 예외가 아닐 거라 믿어. (그건 아니다!) 아니! 분명 그래야만 해. 명색이 기자라면.. (...)
물론 그저 관심 받고 싶어서, 거하게 어그로 끌어 보너스 받으려고 이 짓을 벌인 것 같지만! 특별기여자들 기분이나 안전 따위 아몰랑 하며 찍어댄 것 같지만! ..혹시 모르잖아.. 정말 안타까워서, 아프간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망원렌즈를 들이댄 것일 수도 있잖아? (너 아까부터 왜 계속 기레기 두둔해?)
그, 아잇, 거참! 잘못했지! 변명의 여지가 없지! 그런데, 그런데, 시원히 까질 못하겠어.. 만약 내가 기자라면, 똑같은 짓거리를 펼칠 것 같거든.. (...?) ..아련한 창가에 슬픈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뜨끔한 마음에 망원렌즈를 든다. 슬픈 아지랑이는 아프간 소녀가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셔터를 누른다. ..이 장면을 국민과 나눠야 한다. 아프간 기여자들에 대한 편견, 난민에 대한 혐오, 이슬람 차별! 이 한 컷으로 바꿀 수 있다! 마치 전설의 우병우 팔짱샷 처럼!
이런! 이따위 주제넘은! 공리주의 탈을 쓴 개인 무시 사상에 젖어들 것 같단 말야! ..우병우랑 아프간 소녀는 전혀 사정이 다른데, 우 씨는 언론이 감시해야 할 놈이었고, 아프간 소녀는 보호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평소 없던 사명감에 눈이 멀어, 난 그만 선을 넘어버리겠지.. 끄응. 미안하다. 감정에 휘말려 횡설수설했어.. 그래도 내 맘, 대충은 알겠지? (아니.) 이런 차가우면서 말귀 못 알아듣는 놈들. (짝!)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느꼈어. 기자도 예외 없다! 사람을 찍은 이상 양해를 구해야 한다! 어디 정치인 면상 함부로 쓰듯 민간인 사진을 써! ..그리고 전후맥락을 확인해야 한다! 사진만 달랑 찍을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했어야지! 아프간 소녀가 울은 진짜 이유를 아직 아무도 몰라. 고향을 그리워해서다? 친지와 친구가 생각나서다? 그런데 사실 전혀 다른 이유면 어쩌게요. 엄마랑 싸웠거나, 코리안의 불닭볶음면에 눈물 뺐거나, 앙? (...)
그런 의미에서 불닭 먹방 보겠습니다. 빠이어!
아님 진심 상담받아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