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전태일
즐거운 토요일, 그런데! 뭐? 민주노총에서 집회를 열어? 전국노동자대회? 어!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경제가 어렵고, 역병이 창궐하고, 이러한 현실 속에~ (...) ..크응, 난 또 “그들”만의 임금인상이니, 노동권 보장이니, 주장하려고 동대문에 모인 줄 알았어.. 아니었다! 민주노총이 집결한 이유, 바로 전태일. (..) 그래, 오늘이 전태일 서거 51주기 기념일이더군.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 내 로동 스탠스부터 확실히 밝히고 갈게. 그러니까, 그, 이거 참.. 막상 표현하려니 애매하다야. (..?) 난 노동운동을 지지하면서도 좋아하진 않아. (뭔 개소리야!) 내 이상은, 인간에 대한 연민은, 노동권 향상을 부르짖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 ..헌데 현실에서 노동운동은 뭐랄까, 마치 중국 공산당 같다니까. 모두가 잘 사는 사회, 공동부유를 주장한건만 실상은 상위 10% 공산당을 위한 사회.. ..내 맘, 이해했지? (...)
돌이켜 보니 교과서부터 이 양면적 상황을 부추겼어. 한 쪽에선 노동권이 중요합니다, 다른 한 쪽에선 파업, 태업, 난장이가 쏘아올린 크레인 항거와 같은 폭력사태는 나쁩니다. ..뿐인가? 언론조차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니까. 이를테면 오늘 한겨레는, 동대문 가득 메운 노동자 2만명, 내가 전태일이다! ..반면 조선일보는, 민노총 동대문역 인근 대규모 불법 집회! 코호호.
몰라, 내 인생경험이 더 쌓이면 확고한 견해가 확립될지. 근데 그런 날이 과연 우리에게 도래할까? (..?) 우리가 일을 해 봤어야지! 무슨 취직부터 돼야 고용보장이든, 고용유연화든, 한 쪽 편 들 거 아냐! 끄응.. (넌 알바도 안 해봤냐?) 알바? 알바야 꽤 했어. 롯데리아 페티 굽기, 전단지 뿌리기, 공사장, 상하차! 꼬꼬마들 과외, 사이트 번역, TV 모니터링, 등등, 오우야, 나 생각보다 열심히 살았구나? (...) 하지만 글쎄. 난 알바하면서 단 한 번도 노동자라고 자각한 적 없어.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 (...)
노동자라 하면 최소 4대 보험을 받으며, 뜨거운 용광로 돌아가는 공장이 아니고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 돼버렸어.(그건 아니지) 적어도 내 머리 속엔 그래. 그래서 오늘 민주노총 모임이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려. 저들이 뭐라 떠들든 내 인생이랑은 아무 상관없다! ..엇! 잠깐만! 근데 주 52시간이니, 최저임금이니, 다 민주노총 하기 나름 아니냐? 노사정 합의다 뭐다 할 때면 노동자 대표로 참석하잖아? 앙? (...) 뭐야! 내 인생이 그들한테 달렸네!
아잇! 몰라! 단체, 집단, 시각차 주저리는 그만! 오늘 내가 진짜 너님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어! 전태일! ..일단 전태일 모르는 사람, 손? (...) 다 아시는구나. 대단하다. 난 올해 초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전태일을 몰라?) 물론 시험 칠 정도로는 알았지. 전태일, 노동, 분신, 딱 이 3가지 열쇠말만 외웠어. ..그래.
내가 전태일을 올곧이 마주한 건 그의 일기장을 접하고 난 뒤였어. 올해 4월이었지. 50년 만에 전태일 일기장이 세상에 나왔거든. ..바래진 종이에 쓰인 그의 마음은 정말, 내 가슴을 시리게 하더라.. 절망은 없다, 절망은 없다, 절망은 없다, 절망은 없다.. 무섭도록 놀라웠어. 2021년 현재 우리가 간신히 부여잡는 모습을, 50년 전에 이미 되뇌었던 사내가 살아갔을 줄이야.
..하루를 넘기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토록 타락 할 줄은 정말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 해 본 일이 없다.. 하아.. 이 문장을 보고 폐부가 찔리는 기분이었다. 아쉬움! 그것은 더 빛나려는 희망! 난 언제 마지막으로 아쉬움에 잠들었는가! 당신은! ..난 기억이 안 나. ....
그에게 동감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문장은 또 있어. ..내 현실에 사랑이 다 무엇이랴.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랴.. 맙소사. 이거 50년 전 일기장 맞냐? 사랑, 결혼, 출산, 인생 다 포기한 현세를 하늘에서 지켜보며 기록한 글 같잖아! (...) ..무섭다. 50년 동안 변한 게 없어서. 돈 없으면 소중한 사람마저 포기해야 하는 현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끝내 전태일은 분신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한 거였어.. 당시 그의 나이 22살.. 후우.. 난 전태일을 노동운동가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아. 그는 우리였어.. 하고 싶은 거 많고, 가난한 현실을 마주하고, 남들처럼 사회에 수그리고, 괴로워하고.. 차이점이라면 그는 세상을 울렸단 거겠지.. 너무 안타까운 방법으로.. 아잇!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분신은 안 됐어! 타들어가는 고통은.. 참.. 후우..
지금 이 순간, 마음먹었다! 나도 전태일처럼 세상에 저항하겠어! 그렇다고 머리에 띠 두르며 민노총 가입한다는 얘긴 아냐. 내 주변, 내 일상, 그 사소한 울타리에서 행복을 지키고 싶어. ..사회운동? 그럴 용기도, 깜냥도 안 돼. 하지만 투표 정도야 나도 쉽게 할 수 있지. 대선, 총선, 지방선거, 누가 누가 내 노동권을 확립해 줄 것이냐! 삶을 보장할 것이냐!
그리고 이런 생각을 넌지시 여러분과 나누는 거지. 캬하하! 전태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