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앞에서 신을 마주하다
차가운 바람이 싸늘하게! 그래! 이제야 겨울답네! (...) 크흠, 전 추운 겨울이 좋습니다. 아무렴요. 365일 내내 영상 14도 미만이면 좋겠어. 그 사이에 냉해와, 계절성 전염병과, 동사 따위가 펼쳐진다 한들, 상관있나! (짝!) ..상관 많습니다.. 우리강산 푸르게. (...)
오늘같이 발바닥이 시원섭섭할 때면 거리에 한 생명이 걱정된단 말이지.. (..?) 그,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가 있거든. 언제나 한 자리에 있는 걸로 봐서 거기에 완전 터를 잡은 것 같아. 혹은 다른 곳에 갈 힘조차 없거나.
딱 봐도 상태가 처량하지? (...) 눈병, 피부병, 노화를 한꺼번에 맞은 몰골.. 그래도 녀석은 용케 버티더라. 중성화 표시 없는, 빳빳한 귀를 가진 주제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다니까. 먹을 거 좀 달라고.. 크흠..
그래서 난 일용할 양식을 이 녀석에게 제공했을까요? (...) 후우, 천만에! 내 지론 알잖아. 자연에 간섭하지 않는다! 먹이 한 톨은커녕 손길조차 건네지 않는다! 눈에 뵈는 길고양이란 들고양이는 모조리 고자로 만들어야 한다! 왜? 그것이 야생동물을 지키고, 생태계를 보존하며, 인간이 보기에 좋으니까! 꼬우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든가! (...)
..잠깐, 방금 전에 내뱉은 행동.. 어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랑 정말 비슷하지 않았냐? (입 조심해라) 눼이 눼이. (짝!) ..아니, 그렇잖아. 우리가 아프고, 병들고, 죽고, 죽이고, 전쟁 나고, 코로나에, 성병에, 기아에, 자원고갈에, 기후위기에 처해있음에도 신은 아무 말이 없으시지. 진정한 방관모드.
한 땐 그런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났어. 신은 우릴 사랑한다며? 그런데 왜 행동은 그따위로 하신대? (짝!) 비단 가톨릭, 기독교뿐만 아니라 알라, 부처님, 공자님, 투탕카멘, 바빌론 산양, 파라오, 별별 신이란 신들은 다 이랬잖아? ..난 너흴 사랑한다. 그러나 때때로 죽여주마. 때론 고통에 몸부림치게 해 주마. ..명심 하거라. 그래도 난 너흴 사랑한다. 홀리 루리 부랄. (짝!)
핫! 근데 이젠 신님 입장이 이해 돼. ..세상 살아보니, 누구에게 축복이 다른 누구에겐 절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너무 많더라. ..고양이만 해도 그렇지? 저 죽어가는 녀석을 내가 알뜰살뜰 돕는다 쳐. 이후 생기를 머금은 놈은 일대 다람쥐와 야생조류를 학살하고 다닐 거야.
이걸 인간에게 대입하면, 오우야.. 흙수저라 불평만 해대던 내 자신이 부끄럽도록 숙연해진다.,.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고통 받는가! 케이지에서 알만 낳다 죽는 닭, 햇빛 하나 못 보고 비명횡사 하는 돼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아프리카 광산에서, 인도 쓰레기 마을에서, 중국 공장에서, 속속들이 착취한 그들의 희망을, 끝내 부모님 등골 빼먹은 돈으로 섭취하는 나. ..아잇...
에라이! 그러게 후진국에 태어나랬나! 꼬우면 다음 생에 헬반도에서 태어나든가! (짝!) ..모르겠다. 죄책감이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선뜻 마음 고쳐먹기는 힘들어. 난 이 윤택한 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고! 끄응.. 부디 신이시여! 끝까지 방관하소서! 저들이 아무리 불쌍하게 보일지라도, 이 몸이 아무리 얄밉게 비칠지라도, 두 손 놓고 그저 운빨개망에 맡기십시오!
아무튼.. 뭔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지? (..고양이) ..고양이 때문에 우주적 이치를 깨달을 줄이야.. 신께선 왜 편애하지 않는지, 왜 이 세계가 이 따위인지, 코호호.. 그래도 실망이다. (...?) 전지전능하다는 분이 어떻게 지구 하나 관리하기 벅차신 대요. 마치 고양이 한 마리에 어쩔 줄 모르는 나처럼.. (...)
(야! 그러지 말고 네가 키우면 안 되냐?) 나보고 지금 저 놈을 키우라고? ...엇! 그러네! 내가 저 녀석을 집고양이로 변모시키면, 야생동물도 지키고, 냥이도 살리고, 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일타삼피잖아! .....안 돼! 그럴 수 없어! (...) 자기 앞 가림도 못 하는 녀석이 무슨 반려묘야.. 게다가 나 돈 없다고! 사료 값, 병원비, 중성화 수술료, 감동 못 한다! (카메라 장비는 잘 만 지르면서) 그! 그건! ..내 꿈을 위한 최소필수조건입니다. 양보할 수 없는! 어! (어휴) ...끄응.. 닥쳐! 다 닥쳐! (...)
...후우.. 응? 잠깐, 설마 그분께서도 결국 돈이 없어서 우릴 모른 체하시는 거야? 매주 헌금을 그렇게 받으시고도, 어! (짝!) 모두 행복하게 만들 압도적 금액이 부족해서!
다시 신이 미워졌어. 홀리 미들 핑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