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열차 안에서 보내는 편지
요오. 어제 오늘 “위문편지”로 게시판이 뜨끈하더라? (...) 대한민국 어느 여고에서 군인 오빠에게 위문편지 쓰기 행사를 열었으니, 그 중 한 편지에 “저도 이제 고3이라 뒤지겠는데 이딴 행사 참여하고 있으니까, 님은 열심히 군 생활 하세요. 그니까 파이팅~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미소 마크 땅땅!” ..라고 보냈대. 호오..
여기서 질문.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 본인이 군역을 지고 있을 시절, 이와 같은 편지를 받았다면, 앙? (...) 난, 글만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어. 나보다 2살 정도 어린 녀석이 인생 지적질 하는 면이 살짝 거슬리긴 하지만, 에이, 여고생이잖아. 철부지 응석머리로 넘어갈 수 있지. ..그런데 말입니다. 편지 현장 “사진”을 보고 싹 마음이 바뀌었다! (..?)
어디 누더기 공책 찢어놓은 바탕에, 글씨체는 휘갈긴 티가 절로 흐르고, 딴엔 자기도 부끄러움은 아는지, 아니면 오리발 내밀 처사인지, 본인 신상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어. ..이래서 요즘 것들은, 에잉! 니들이 한 품은 군인 심정을 알아? 어이! (...)
그러자 해당 여학생인지, 아니면 여자 문제만 걸리면 출동하는 페미 누나들인지 모르지만(짝!) ..반격에 나섰어. 이 모든 게 위문편지를 강제로 쓰게 한 학교 잘못이오, 방관한 교육청의 과오다! 편지는 이 “강제성”에 반발하기 작성한 것이다. ..정말? ...아니, 그럼 수취인이 청와대나 교육부장관으로 갈 것이지, 왜 애꿎은 전우님에게 보낸 건데! (...)
아무튼 위문편지. 난 정말 놀랐어. 2022년 현재까지도 위문편지가 존재한다고? 동년배인 나조차도 모르는, 전설적 고대문물이 아직까지 전승된다고? ..참, 억울했다. (..?) 난 군 생활 중 위문편지 단 한통도 못 받았거든. 무려 1년 9개월이나 후방에서 굴렀는데, 어! 여고생의 편지? 내가 군인일 적 여성으로부터 받은 글자라곤 옆 중대 소대장님이 심부름 시킨다고 찔러주신 메모지 밖에 없었어! 이게 나라냐! (...)
..설마 우리 부대만 그런 거야? 저기 전방은 편지 다 받아? 11군번, 누구 아는 사람 설명 좀 해 주라.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여기 다 미필이냐! 이재명, 윤석열, 이준석처럼! (짝!) ..갑자기 정치 급발진 죄송합니다. (...)
후우, 이번 일로로 위문편지 전통이 끝장날까 걱정이야. 관련해서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던데, 글쎄, 난 편지를 주고받는 미풍양속이 계속되면 좋겠어. 여고생과 군인, 아니,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교류, 위로, 마음 전달이 얼마나 아름답냐? (그래도 강제로 시키는 건 아니지) ..그것은 인정!
하지만! 내 경우엔 “강제적 봉사활동” 때문에 나름 인생의 좋은 경험 많이 쌓을 수 있었걸랑.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 (...) 취업, 취직을 위해 적립했던 봉사시간, 그러나 그 와중에 보람을 느낀 순간, 앙? (...) 난 아직도 잊지 못 해. 병원을 청소하고, 아픈 아이가 내 품에 안기고... 아이 체온은 따사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또, 타자라곤 게임에서 지시, 명령, 욕이나 쓰기 위해 쳐대던 내가, 점자책을 옮기는데 사용했어.. (...) 기적이다..
그렇기에 난 급식들에게 봉사활동을 반강제하고 싶어. (...) 너무했나? 그럼 내 자식에게 만큼은 억지로 떠먹일 거다! 봉사시간 같은 계산적 보상은 주지 않을 거야.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 순간을 온전하게 스스로의 것으로 남게 하고 싶으니까. (뭔 소리야?) 그러니까, 그, 시작은 강제였으나 끝은 자발적이로다! 이렇게! 내 맘, 뭔 뜻인지 알지? (아니) ...미안합니다. 여자 친구조차 없는 놈이 무슨 육아계획을 늘어놓겠습니까. (...)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만약 선생님이 군인들의 사정을 구구절절 상세하게 학생들에게 설명해 줬더라면, 이번 불상사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 ..아무리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이라 한들, 군대의 실체를 알면 얼마나 꿰뚫겠어? 군인 아저씨 설움이라 해봤자 유튜브나 지나가는 밈에서 얻은 정보가 다 일거 아냐?
그러니! 위문편지는 고도로 훈련받은 여고생이 써야 한다 이 말이야! 군인 오빠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리고, 심연의 슬픔을 마주한 여고생만이, 어이! (..) 그렇게 공감에 이른 여고생이 써 내린 편지에선 번민과 사랑이 가득하겠지! 진짜 위로가 되겠지! 외로울 때마다, 어! 볼펜심 향기로 가버렷~(쩍!) ..그(짝!) ..죄송합니다. (...)
그나저나, 위문편지는 여고생만 쓰는 거야? 남고생은 안 써? 정작 진실함이 담길 요소는 남고생 쪽이 더 크잖아? (...)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곧 다가올 신검대, 여지없이 현역 판정, 쓰라린 가슴, 불안한 캠퍼스 라이프, 곧 달력의 시간은 화살같이 흐르고, 뚜뚜! 논산행 급행버스 도착했습니다. 낄낄낄! 그때만큼은 세상 누구나 소크라테스, 윤동주로 변모해요. 캬하하! (...) ...우욱, 웃자고 꺼냈는데 내가 다 역겹다. 우웩! 농담이라기엔 너무 처절해! 아픈 추억! 흑흑..
응? ..이거다! 입대 하루 남은 장병들에게서 위문편지를 받자! 훈련소 입장 시 편지 제출 필수! 제대로 안 쓴 놈, 엎드려! ...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