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유산 찢어내기
전 세계 선수들이 베이징에서 힘찬 근육수축을 하는 동안, 난 오늘도 방 정리에 나섰어. 후아.. 아직 죽을 날도 먼 놈이 왜 이렇게 물건 처분하는데 몰두하게 됐을까. (...) ..이 모든 게 내 집 없는 설움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방을 빼야 할 수 있다는 공포!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비워둬야 한다는 강박! (...)
오늘 주요 처분 대상은 바로, 상장 및 인증서. (그걸 왜 버려!) 끄응.. 나도 고민 많이 했어. 그나마 남은 자랑거리를 나라고 왜 버리고 싶겠어. 그런데, 그, ..펼쳐 본 기억이 없더라. 나랑 평생 함께 한 종이들인데, 언제나 책장 한편에 놓여있었는데, ..그저 먼지만 가득.. (...) 그래서 제 손으로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쩔TV! (짝!)
우선 각종 수상내역부터 삭제식 들어갔다. 학업우수상이니, 글짓기 대상이니, 영어말하기 대회 금상이니, 앙? (거짓말) 진짜야! 나 급식 때는 공부 좀 했어! 학기마다 상장을 놓치지 않았다! (...) 크흠. 다 지나간 일이지.. 나조차 덮어버린 영광.. 아잇! 오늘 분위기 자꾸 심해로 가네! 무드 전환 비트 틀어 주세요! (...)
별게 다 있더라. 중2때는 사생대회 장려상이 있질 않나, 하! 미술이랑 담 쌓은 내가 사생대회에서 수상을 했다고? 내 뇌를 믿을 수 없군! (...) 초등학교 때는 모범일기상이란 걸 받았더라고. 이야,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내 매일 매일을 선생님께 검사받은 거잖아? 그것도 강제로, 호우! (...) 다음, 유치원 때 받은 선재동자상, 이건 또 뭐야. ..아! 나 불교계 유치원 나왔었지. 이제야 기억났습니다. (...)
더 해괴한? 이상한? 것들도 있었어. ...여기, 학교 어머니회 장학금!
어.. 그래, 내 가정환경이 어려웠지. 고등학교 들어가서 정작 난 급식을 먹지 못 했어. 점심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도서실로 내려와 낮잠을 잤다. (...) 워워, 안쓰럽게 보지 마. 난 아무렇지 않았어. 오히려 즐겼다니까. 공짜 다이어트!
아무튼. 어머니회라니, 분명 내게 뭔가 지원을 해 주셨을 텐데, 아뿔싸, 하나도 기억이 안나! 어머니회 존재 자체를 오늘에야 다시 봤어! (...) 웃긴 건 뭔지 알아? 어머니회보다 더 망각 저편에 놓인 단체가 있었다는 거지. 바로, 새마을금고. (뭔 소리야?)
여러분이 안 믿을 것 같아서, 내 친히 스캔까지 떠왔다. 봐라. (...) ..어처구니가 없어. 난 평생 새마을금고 계좌조차 안 만들어 본 사람이야. 그런데 뭐? 새마을금고를 통한 저축? 저축금 증대? 어! 이런 주작과 날조가 어디 있는가! (네가 받은 거잖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추론하건데, 담임쌤이 대충 제비뽑기로 뿌린 상이 아닐까 싶어. (...) ..형편이 어려워서 장학금 필요한 애들... 나같은.. (...) 아잇! 또 분위기 해저 2만 리잖아! 이래서 과거는 과거로 묻어둬야 해!
이처럼 받은 기억조차 안 나는 종이들 사이, 딱 하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받은 글짓기 금상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해. 왜냐! ..나 스스로 노력했으니까. 나 스스로 자랑스러웠으니까. 나 스스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으니까. ..진정한 상이었기에 “스캔”으로 뜬 다음 찢었다.. (...) 아잇! 분위기 업!
화제를 전환한다! ..종이를 찢고 짓이겨 나가는 중에 가슴이 철렁한 문서와 마주했어. 뭘까? 맞춰 봐. (안 궁금해) 크흠, 정답은 ITQ 자격증 인증서! 버젓이 상단부에 주민등록번호가 완전체로 찍혀있더라니까! 모르고 그냥 버렸으면 어쩔 뻔 했어! (...) 여기, 2013년도에 ITQ 자격증 딴 애청자님들, 당장 발급서 확인해 보시라. ..버릴 땐 파쇄!
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내로 졸업앨범까지 싹 다 인간파쇄기 행 시킬 예정이었으나, 후우.. 사진이란 건 글자와는 다른 영역이더라고. ..선생님, 친구들 얼굴을 북북 잡아 때려니 기분이 묘해서 그만뒀어.. 내일 아침 태양 기운 받고 다시 도전해 봐야지.. 끄응...
미안하다. 오늘은 온통 투정만 내뱉었네.. 나 스스로 멜랑콜리함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노력할게. 일어나지도 않은 이사에 왜 이렇게 쫄았담.. ..내일은 기필코 희망만 가득한 주제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리지 못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끔찍하게 슬픈 얘기가 나올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우끼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