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분류 작업자를 위한 파업은 없다
당신의 택배는 안녕하신가요? (..?) 왜, CJ 대한통운 파업 중이잖아. 파업 지역은 물건이 안 오네, 접수를 안 받네,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는다지만, 글쎄다.
파업에 들어간 지 꽤 됐지? 작년 말부터 노사 관계가 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앙? (...) 후우, 솔직히 말하면, 난 이번 힘겨루기에 관심이 없었어. 그저, ..아, 파업하나 보다. 택배 안 오면 어쩌지. 응? 근데 우리 동네는 정상영업이네? 파업 하는 데도 있고, 안 하는 곳도 있고, 뒤죽박죽이야? 어쨌든 다행이다. ..딱 이 수준에 머물렀지.
그러다 오늘 택배 파업과 관련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으니, 중앙일보 이지영 기자님 왈, CJ대한통운 본사 불법점거 노조, 음주와 흡연에 윷놀이까지 하더라! (...) 호오... 여기서 질문. 사람이 술 마시면 안 되는 거야? 차가운 점거장에서 맥주 한잔 기울이는 게 어때서? (...) 또, 흡연도 안 되는 거야? 내 아무리 니코틴 냄새를 혐오한다지만, 그렇다고 흡연자 자체를 죽일 놈으로 보는 건 너무하잖아? (...) 물론 길빵충 만나면 살인충동 느끼긴 하지만, 에헴. (짝!) ..가장 가관은 윷놀이. 우리 내 전통놀이를 한다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문제야? (...)
(코로나잖아) 그래, 코로나. 기사 곳곳에 방역수칙을 언급하더라. 파업을 빌미로 떼로 모이고, 떼로 식사하고, 떼로 술 마시고, 떼로 흡연하고, 떼로 윷놀이 벌이는 불법 파업자 겸 방역 위반자들! 못된 사람들이네! (...)
그런데 말입니다.. 이 기사가 중앙일보뿐만 아니라 서울경제에도 똑같은 내용으로 실렸거든? 자고로 “경제”들어간 신문은 어떻게 봐야 한다? (..) 1%의 진실과 99%의 선동으로 해석해야 한다! (에이) 알았어. 50%의 진실과 50%의 선동, 오케이! (...)
의심의 눈초리를 바짝 세우고 다시 기사를 읽어봤어. 아니나 다를까 제목부터가 카더라 따옴표로 시작해. “음주, 흡연, 윷놀이까지 하더라”, 더라!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한 부분 1도 없이, 죄다 대한통운 가라사대, 사진조차 전부 CJ대한통운 제공. 완벽히 회사 입장만을 대변한 기사! ...이지영 기자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아니, 처음부터 양쪽 입장 반반 치킨 마냥 확실하게 전달해 주면 얼마나 좋아. 명색이 메이저 언론이라는 중앙일보에서조차 편파기사를 내보내니, 안타깝다 안타까워, 어이! (...) 할 수 없이 노동자 입장은 내가 직접 찾아야 했어. 그렇게 검색 망에 들어온 기사가 바로 오마이뉴스 발. “택배 파업 왜 하는지 다 설명해 드립니다!“
그래서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파업하는 이유는요, 첫째, CJ는 여전히 주6일 업무를 요구한다. 둘째, 과다업무의 주원인으로 뽑혔던 물건 분류작업에 여전히 인력투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셋째, 사측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며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호오.. 파업 할 만 하네! (...)
사실, 잘 모르겠어. 택배 이용객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기업 입장에 끌릴 수밖에 없거든. (..?) 맞잖아. 택배기사님들 처우야 우리랑 뭔 상관이람. 그저 당일 배송에, 싼 가격에,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마저 꼬박꼬박 물건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러다 기사님들 과로에, 생을 다하는 소식이 들린다 한들, 응, 남 일이죠! (짝!) ..죄송합니다. 머리 박겠습니다. (..,)
누군가의 희생으로 번성하는 삶은 그만두고 싶어. 이왕이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야지, 그럼! 헌데 질문, 택배 기사님 처우가 상승하고, 주 5일 근무가 정착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분류작업에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쳐. 그럼 문제가 해결된 건가? 아니잖아! 분류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 처우는 또 어떻게 할 거야! (...)
진짜 고단한 일은 상하차, 물건 분류! 허리 작살나며, 족저근막염 걸려가며, 휴식 없이 일하지만, 정작 그에 합당한 보수는 받지 못하는 분들... 이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지? ...끄응. 아잇! 아악! (...) 미안하다. 내 인지의 한계를 넘어선 실타래였어.. (...)
..택배기사님들 응원해. 생명을 잃을 정도의 가혹한 노동은 없어져야 하지. 다만, 무거운 짐을 분류업 하시는 분들에게 떠넘기는 인상을 받아 걱정이야. 마치, 하청에 하청을 보는 듯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왕 파업하시는 거 모두가 행복한 택배업을 만드는데 일조하셨으면 좋겠어.. (...) 내 맘, 뭔 뜻인지 알지? (...)
아무튼. 중앙일보 이지영 기자님. 저랑 상하차 분류 알바 뛰고 나서, 다시 기사 써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