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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의 역사는 결국 폐지로
민나, 오겡끼데스까! 나는 안녕 못 하다! (...) 후우, 마음이, 심장 좌심실 한 편이, 쓰라리다. (또 왜?) 내가 요즘 정리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거든. 왜냐! ..주인아저씨가 집을 내놨나봐. 본인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시겠대. 끄응.. 물론, 우리 집이야 전세 계약 2년 확실히 맺었으니, 그 기간 동안은 주인이 바뀐다 한들 문제없다지만, 아잇, 사람 심리가 그게 아니더라. 집 보러 외간인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불안해 죽겠어. (...) 미안하다. 의식의 흐름대로 하소연 해버렸네. 후아! 괜찮아! (...)
아무튼. 추억을 정리하는 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냐. 미니멀리즘? 무소유? 그것도 자발적일 때나 개운한 거지, 외부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손절에 들어간 이상, 어후, 자괴감이 몰려올 정도라고. (...) 특히 오늘은 더 심했어. 여러 추억 중에 유독 가슴에 남는 물건을 정리했거든. 바로, 내가 가진 최후의 종이책.
삼성출판사, “대세계의 역사”라는 총 12권 전집인데, 난 그 중 11권과 12권만 가지고 있었어. 무려 1973년도에 발행된 고서, 캬하! 겉은 두터운 양장본에, 속에는 컬러 사진까지 구비한 책이었지. 말 그대로 있어 보이는 책.
이 멋들어진 서적을 정리하기 위해 최초로 찾아간 곳은 보수동 책방골목이었어. 사실, 이 책을 산 곳 또한 보수동이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괜찮네! ..는 매각에 실패했고요. (...) 다섯 분의 서점주인께 여쭤봤지만, 한결같은 대답이셨어. ..그 책은 폐지밖에 안 된다. 12권 온전한 전집이라면 모를까, 낱개들이 책은 가치가 전혀 없다.. 그렇군요.. (...)
괜히 섭섭하기까지 한 거 있지. 마치 내 자식들이 평가절하 당하는 기분이었어.. 헌책방조차 받아주지 않는 책이라.. 하지만!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 골동품 거리! 부산 문현동 골동품 거리라면 이 녀석들을 거둬줄지 몰라!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앉고 골동품 거리를 찾았다. 평생을 부산에서 살았건만, 이곳에 당도한 건 난생 처음이었어. 이야, 신기한 물건 많더라. 오래된 가전제품, 고서적, LP음반, 그리고 카메라! 내가 또 카메라 장비에 환장한 놈이잖아. 샅샅이 살펴봤지. 다행히도 내 지름신에 불 지른 물건은 보이지 않았어. 다들 상태가 많이 안 좋더라고. 아악! (...)
워워. 주제로 돌아와서. 그래서 나와 일생을 함께 한 책들은 어떻게 됐냐? ..후우.. (..?) 골동품 거리에서조차 거부해버렸어.. (...) 그나마 책 좋아하시는 사장님 한 분이 잠깐이나마 관심 보이긴 했는데, 발행연도를 보시더니 고개를 젓더라. ..73년 발행된 책은 골동품 거리에 오기에 아직 멀었다.. 헤에! 아니! 73년이면 언제야, 지금으로부터 근 5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책인데요! (...) ..코호호..
뭐, 어쩌겠어.. 막막하더라..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가! 50년 가까이 이어온 기록체가! ..그저 종이일 뿐인데, 차마 내 손으로 끝장내려니 가슴이 떨리더라고.. 사랑, 연예, 결혼, 출산에 실패한 나머지, 세상에서 멸종될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그런 걸까? 너님들 모습, 앙? (짝!)
무거운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서면 지하철역까지 왔더라.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예스24, 중고서점.. 체념한 채 들어갔어. ..여기, 헌책 폐기도 하나요?.. ..내가 서점을 나가기도 전에 , 찌익~ 찌익~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등을 휘갈겼어. ..그래, 73년생 대세계의 역사는 이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 ..에잇! 그냥 내 손으로 끝낼 걸.. 참...
여하튼. 강제적 무소유에 시달리는 이들이여, 힘냅시다! 안녕 나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