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의 눈물
제헌절 일요일, 모두 평화롭게 보내고 계십니까? 전 내면의 두려움과 싸우느라 평화롭지 못 합니다. (또 왜!) ..오늘 집주인 아저씨랑 사소한 갈등이 있었거든. 정확히는 갈등이라기보다, 나만의 억울함이랄까!
한참 지붕 슬레이트가 달가워졌을 오후 4시 무렵이었지. 난 참지 못하고 샤워기에 몸을 맡겼어. 뜨거워진 대뇌피질을 조금이라도 식힐 요량으로, 앙! (..) ..머리 비듬을 쓸어내고, 과열된 사타구니 안을 털어내고, 몇 가닥의 터래끼마저 손질을 마쳤을 무렵, 물이 안 나오는 거다!
이 황망함! 당혹스러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거야. ..난 처음에 단수라도 됐나 싶었어. 주섬주섬 알몸으로 현관문 근처를 기웃거렸는데, 아뿔싸, 현관문 건너편 공터에서는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나는 거 있지. (..?) 주인 아저씨가 시골에서 얻어온 솥단지를 세척하고 계셨어.
그제야 물 부족 사태의 전말이 유추됐던 거야..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를 솥 씻는데 다 쓰고 있었던 거지. 여기서 잠깐, 고작 호수 하나 분 때문에 물이 끊길 리가 없다, 의문을 품으시는 분들에게 첨언 드리자면.. 아니! 대한민국엔 여러분 상상 이상으로 수압이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집이고요! (...)
더 경악할 사실 말해줄까? 안 그래도 수압이 낮은 집인데, 주인 아저씨가 그 수압을 더욱 더 낮췄어! 수도계량기 밸브를 4분의 3 가량 잠가 놓으셨다! (왜?) 본인께서는 시냇물마냥 졸졸졸 흘러나오는 물이 좋대! 그래야 수도관 오래 쓴다며! 아니, 주인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세 들어 사는 집에 물은 제대로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어디 주인 어르신께 대들겠습니까.. 전세로 살게 해 주신 것 만해도 감지덕지죠. 그럼요...
후우.. 주인집이랑 부딪힌 경우는 이번뿐만이 아냐. 3년 전에는 마당에 있던 냉장고 때문에 묘한 기류가 흘렀었어. (냉장고?) 그래, 냉장고, 전력효율 3등급에 빛나는 오래된 대우 냉장고. 주인집에서 고추장이며 된장을 보관하던 냉장고. 희한하게 우리집 누전차단기를 내리면 작동을 멈추던 냉장고!
이사 오기 전에는 전기요금이라 해봤자 2만원이 채 안됐거든? 용량으로 따지자면 190킬로와트 내외랄까. 그런데 지금 사는 집에 이주하고 나서부터는 전기요금이 3만원 가깝게 나오는 거야. 특히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요금이 4만원에 근접했어. 왜죠! (에어컨 때문 아냐?) 우리집은 에어컨이 있지만 틀지를 않아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풀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 형광등을 모조리 LED등으로 바꾸고, 세톱박스를 전력효율 좋은 제품으로 교체하고, 컴퓨터는 일부러 성능을 줄여 보고, 이렇게 했음에도 전기료는 낮아질 기미가 없었어. ..설마 누전 때문인가? 불안한 마음에 차단기부터 점검하던 중, 헤에! 발견하고 만 거지.. 문제의 냉장고가 우리집 배선으로 연결돼 있음을! 그래, 그 놈이 문제였어! 전기료가 이상하리만큼 많이 나왔던 이유! 여름철 더더욱 배가 됐던 이유! 땡볕 마당에 방치된 주인집 냉장고 때문에! 아오! (...)
법적 분쟁에 이를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때도 최대한 공손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마치 주인 어르신은 당연 모르고 그랬을 것처럼,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처럼.. (...) ..냉장고는 다행히 치워주셨어.. 이럼 된 거지.. 그간 억울하게 더 냈던 전기요금이야 세입자가 감내할 부분 아니겠습니까? (...) ..는 개뿔! 자기들은 옥상에 태양광 패널까지 달아 쓰시면서! 어떻게 가난한 세입자 전기를 도둑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이! (...) .,.라고 속으로만 상상했습니다.
뭐, 어쩌겠어. 아름아름 끌어 앉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전국에 세 들어 사는 이들이여, 힘냅시다! 언젠가 우리도 자가 마련할 수 있겠죠! ...그쵸? (......) .....갑자기 우울해졌어. 끼요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