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해양 페스티벌 탈출기
모두 평안한 일요일 저녁 보내고 계신가? ...난 살아 돌아왔어. 부산 방구석 찐따가 웬일로 경기도 평택까지 갔다 왔거든. 1박 2일로! 목적은 바로, 제1회 평택 해양 페스티벌!
무려 해군 2함대 부지에서 열린 행사야. 육군 출신인 내가 언제 군함에 타보겠니.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윤하느님이 초대가수로 온대잖아! 오우야! 당장 가즈아! ...는 천만에. 아무리 그래도 차비만 8만원이 깨지는 여정에 동참할 정도로 난 넉넉한 인간이 아냐. 단지, 서울 사는 친구가 간곡히 같이 가자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간 거야. 따흑.
그래서, 평택 군항 구경하니 좋았냐? ...글쎄다. 부산에서 평택까지 한 번은 가볼만 하지만, 두 번은 못 가겠어. 그럼 좋았단 점과 악몽 같았던 점을 차례차례 풀어놔 보실까! 일단 좋았던 점.
내 인생 최초로 “해군”을 체험했어. 인천함, 서울함, 독도함 모두 타봤지. 군함만의 독특한 냄새, 갑갑한 내부를 흠뻑 마셨다고. 뿐인가? 해병대 K9 자주포, 드론, 1호차, 그리고 각종 헬기, 아파치 헬기 실물까지 봤다고.
그러나 내 마음을 유독 끈 것은 무생물이 아닐 지어니, 해군을 이끌어가는 사람! 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 특히 여성 장교님이 어찌나 아름다우시던지. 나 해군 제복 페티시 있나 봐. (...) 그리고 해군 장병들! 마린 사운드! 최고였다!
한편 초대가수 무대도 굉장했어. 트로트가수 설하윤 님, 버즈 민경훈 님, 그리고 고! 윤하! 모두 시원하게 내지르고 가셨어. 내가 윤하를 실물로 뵙는 건 2013년 이후로 처음이야. 시간, 인생, 크흑... 그나저나 초대가수 구성을 보건데, 행사기획자가 우리 동년배 같아. 그치? (...) 흐음, 아주 바람직해. 장병들은 뉴진스나 아이브를 더 보고 싶어 할 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라고. 결정권자는 높으신 분이라고.
아참, 서해안 노을이 끝내주더라! 자욱한 미세먼지가 미스트 효과를 걸어주는데, 캬! 7시 30분 즈음에 떨어지는 낙화가 정말 붉더라니까. 내 고장 부산에서는 진짜 보기 힘든 장면이라니까. 부산에서는 다대포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까.
자, 좋았던 점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똥줄이 바들바들 탈 만큼 가슴 아렸던 점이다. 첫째, 사진을 못 찍어! 괜히 무거운 카메라 들고 갔어! 군사 시설 내에서니 당연한가? 당연했네! 내가 생각이 짧았네! ...무대행사 시설과 특정 포토존 이외에서는 촬영을 금했어. 그야 몇몇 분들은 폰으로 찰칵 다 찍더만. 통제가 안 되더만. 하! 난 카메라 든 사람으로서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시킨 대로 잘 따랐다고! 칭찬해 줘. (...)
둘째, 우리 해군 용사들, 행사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니. 행사 끝나고 나서 치우느라 얼마나 팽이 돌리겠니. 군필자로서 가슴이 아니 아프지 아니 할 수가 아니 없다. ..,어쩌겠습니까.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사령관님이 양심이 있으면 전 장병에게 포상휴가 팍팍 뿌리시겠지요.
셋째, 나 이상주의자는 대한민국 해군 규모에 실망했다. (...) 이게 참, 서해안 최전선을 지키는 2함대인데, 좀, 그게, 아잇! 초라한 거야! 전투함이 너무 작아! 너무 적어! 내 눈이 지구 최강 미국 해군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가!
난 바래. 미사일 잔뜩 실은 이지스함 10척이 평택항에 정박하고, 그 가운데 핵잠수함이 1대 둥둥 떠다니고. 그리고 전함! 무지막지하게 큰 전함! 난 소박해서 항공모함은 바라지도 않아. (...) 크흠, 국뽕은 망상 수준의 거대함에서 나온다, 이 말이야. “행사”용 핵추진 거대 전함 강력히 건의 드립니다. 까짓것 위급 상황에서는 482.6mm 함포도 쏘게 말이죠. 참고로 야마토 주포 구경이 460mm래. 우리가 일본보다는 더 큰 함포를 갖춰야 할 거 아냐. 아무렴. 대한민국의 자존심! 남자의 자존심!
다음, 넷째, 이게 진짜 문제였어. 대책이 안서는 교통난! 행사 들어올 때야 그나마 났지. 나갈 때는 전체 인원이 우르르 나가는데, 호우! 40분 정차가 기본이더라. 뿐인가? 버스! 버스 타려고 장사진을 이뤘어! 아잇! 평택시장님! 이런 날에는 미리 버스 배차 팍팍 늘리셨어야죠! 평택항에서 평택역까지는 버스로 무려 1시간! 아이고!
내가 왜 이 문제에 이토록 과민언성을 높이느냐? 실제로 똥줄이 탔기 때문이야. 난 운명의 주사위를 굴렸거든. 평택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지하철 1호선 막차가 저녁 9시 20분이니까, 그 전에 평택역에 도착하면 아싸리 서울 구경까지 하고 오자. 플레이엑스포 가 보자! 귀향은 일요일에 하자. ...그게 아니고 좀 더 늦게 평택에 도착할 것 같다? 그럼 평택지제역에서 9시 52분 SRT 막차로 토요일 부산에 내려오자.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 내가 지금 일요일 저녁 KTX 좌석에서 찌뿌뚱 거리고 있지 않은 이유, 한가롭게 부산 바람 맞으며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이유, 후우... 서울 못 올라갔어. 일산 킨텍스 못 갔어. 플레이엑스포를 못 체험했어! 흑흑... 플엑 못 간 거는 둘째 치고, 부산마저 못 내려올 뻔 했어. 평택지제역에 9시 49분에 도착했걸랑! 항문에 땀이 차도록 뛰었다고! 아드레날린이 심장 좌우심실 전체를 감쌌다야.
...이 말은 뭐다? 제2회 평택 해양 페스티벌이 내년에 개최된다면, 시간표가 올해와 똑같이 7시 폐막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커플끼리 가십시오. 합리적으로 거사일을 잡으십시오. ...는 어림도 없는 소리! 행사는 자고로 뚜벅이 모쏠들을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니, 제2회 행사부터는 폐막 시간 좀 당겨주세요! 오후 5시 어떻습니까!
내가 이토록 과도하게 이른 폐막을 부르짖는 이유, 그게 참...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간당간당 하니까 정작 무대행사에 집중할 수가 없는 거야. 덜덜 떨려. 제발 빨리 마쳐라. 심지어 초대가수님들이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데, 윤하님이 혼을 쏟고 있는데, 속으로는 달달달. 제발 윤하님. 앵콜만은 부디 삼가주세요. 이랬다니까... (...) 왜, 팬들의 귀갓길을 위해서라면 앵콜마저 가볍게 땡처리해주실 만큼 윤하님은 배려심이 넓으시다고. 팬바라기시라고.
이상! 부산인의 평택항 체험기였어. ..플레이엑스포에 못 간 건, 참, 아쉽네! 어쩔 수 있나! ...아무튼! 내가 평택 버스 안에서 마음속으로 수천 번 재생했던 노래 들으며 오늘 쇼를 마칩니다. 다음 한 주도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로또 2등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