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사진을 모르잖아요
오늘은 “사진” 이야기!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 2015 수상작 중, 특히 내 맘을 파고든 사진을 감상하실까! 그나저나 왜 하필 WPA 2015년이냐? 그게, 한 애청자님께서 WPA 2015를 언급하셨거든. 그래서 2015를 골랐어. 에헴.
첫 번째 사진. 여행분야에서 상을 받은 David Cutts 님.
구름과 햇빛이 자웅을 다투는 날씨에, 아래는 황금벌판에, 검붉은 풍차에, 그리고 풍차의 하얀 날개마냥 창공을 가르는 백조! 이들이 한 장면에 모이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인고했을까.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준비했을까.
그런데 이 사진은 “여행”에서 수상을 했잖아? 작가가 해당 지점을 주구장창 잡고 기다린 게 아니잖아? 즉, 여행에서 만난 기적의 순간이네! 세상이 우리에게 드문드문 선사하는 미묘! 단, 그 미묘 역시 구하는 자에게만 드러나겠지만. ...우리도 터벅터벅 카메라를 들고 자주 걷다보면 언젠가 행운을 포착할 수 있겠지? 아무렴!
다음, 야생 분야, Sharif Putra Sharif Ubong 님! 말레이시아 분이야.
난 곤충 사진을 좋아해. 신기하니까. 그러나 정작 애착을 두진 않거든? 차마 내 방에 곤충 사진은 걸어두고 싶지 않거든? 저 부리부리한 눈알과, 각진 6각 다리를 관찰하고 있노라면 사타구니가 간지러워. 무섭기도 하고.
그럼 이 사진은 신기해서 내 눈을 끌었냐? 아니, 신기함 그 이상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로, 짝짓기! 그것도 이종 관전 짝짓기! 색의 조화도 절묘하구나. 노란 바구니가 노랑 방에서 교미하는 모습을 붉은 개미가 습격하다니, 오우야.
돌이키건대, 지금껏 내가 주목했던 사진 중 상당수가 성을 내포했어.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집이야 두 말 할 나위 없고, 이를테면, 거대한 기둥이라든지, 두덕한 굴곡이라든지, 흠칫한 낙타 발굽이라든지, 심장처럼 붉은 눈이라든지, 흐음... 말 나온 김에, 한동안 거리에서 야한 것만 찍어 볼까나! 크고 굵은 막대기, 따뜻한 구멍, 오돌토돌한 돌기를 찾아 헤매겠어! 뿌뿌!
이번에는 무려 “모바일 폰” 분야! Hamed NAzari 님.
이 사진은 내가 선호하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해. 일단 흑백이지, 아파트 배경이 지저분하지, 인물 중 한 명은 얼굴조차 안 보이지, 근데... 계속 빠져든다! 오직 소녀에게만 온 정신 팔려. 이 몰입감! 집중력! 아나스타샤!
난 왜 사진 속 소녀에게 매료됐을까? 흐음... 일단 소녀가 예뻐. 그리고 측은지심이 발동해. 저 그네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걱정, 하늘을 뒤엎는 아슬거림, 이러한 요소가 팽팽한 긴장을 당기고, 내 두 눈을 묶어버린 것 같아.
잠깐만. 방금 전에는 곤충 교미 사진을 보며 “성”을 들었고, 이번에는 소녀를 보며 위험, 스릴을 언급하니, 어라? 이거 완전 3S, 3B잖아! 3S 섹스 스포츠 스크린. 3B 베이비 뷰티 비스트. ...아잇, 나도 어쩔 수 없는 본능맨인가. 자조적 슬픔이 몰려온다야..
지금부터는 “프로” 작가님들이야. 처음은 Carla Kongelman 님.
뭐랄까, 사진에 역동성이 도사려. 흐릿한 손, 파편처럼 부서지는 음식물, 그 순간을 즐기는 아이의 입과 코와 눈의 포효! 선명해야 할 부분은 선명하고, 움직여야 할 부분은 움직이고, 캬하! ...나도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 살아 숨 쉬는 인물을! 난 못 찍었기에 더욱 부럽다!
대체, 셔터스피드를 얼마로 잡아야 선명함과 움직임을 동시에 담을 수 있을까? 질문 자체가 잘못됐나? 상황별로 셔속은 즉각 조절할 수 있어야 하나! 푸하... 더불어 감자가 터지는 순간을 작가님은 어떻게 잡으셨대요? 푸아하..
잠시 거장들 사이에 내 사진을 끼워 넣을게. 송구합니다! 그랜절!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좌절 중이라고!
내가 여태 찍은 인물 사진 중, 그나마 역동성이 보일락 말락 한 컷이야... 초라한 실력에 부끄럽다. 코스어 “아자”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아무튼. 럭키 샷이었어. 그냥 연사로 두두둑 누르고 있던 터에, 하필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장면이 잡힌 것뿐이야. 내 의도일랑 1도 없었어. 밑천 다 들어나네...
허나, Carla Kongelman 작가님 덕에 이제 나도 조금은 성장했으니까. 올해 지스타에서는 기필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잡고 말리라! 이번에는 내 의도와 집념을 담겠어! 럭키샷이 아니라! ..는, 잠깐만... 엇! 아악! (...?)
기억났어... 이 사진은 내가 찍은 게 아냐. 아자 님이 다 하신 사진이야! ..용솟음치는 머리카락?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벡스코 실내에서 이게 어떻게 가능했겠니? 그건 바로, 아자 님이 손수 가발 올을 공중으로 내던지셨다! 이것이 클라스! 이제야 모델의 의도를 알아채다니, 따흑... 제발 올해 지스타에서도 장발 캐릭터를 맡으셨으면, 그래서 제발 내게 2번째 기회를 주셨으면, 제발!
말이 길어졌네. 죄송합니다... 다음! Sebastian Gill Miranda 님.
이실직고 할게. 난 왜 이 사진이 WPA 2015 프로패셔널 사회운동 분야에서 1등을 차지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 프로 작가님들 작품을 감상하기에 내 수준이 처참한가? 그렇지만, 글쎄다.. 여러분은 어때? 이 사진 진면목을 발견하신 분? (...)
참... 프로 작가님들 사진을 보면 볼수록, 수수하기 그지없어. 인스타에 올리면 좋아요 0개 받을 장면이랄까. 그럼에도, 뭔가가 있으니까 수상을 하셨을 텐데, 아아... 난 여전히 모르겠어. 각성을 이루지 못 했어.
더 심오한 사진을 보자고. 건축 분야 프로 작가 1등을 차지하신 Cosmin Bumbut 님.
쓰읍, 흐음, 크흐흠... 이게... 뭐지? 나 진짜 몰라서 그래. 누구 부디 내게 가르침을 줘. 이 사진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거야? (...) ...눈알을 아무리 굴려봐도 난 작가님의 의지를 모르겠어. 뽐냄을 모르겠어... 후보정은 하셨을까? 카메라 원본 그대로인 것 같은데?
... 아! 현관문이 쇠창살이네? 이 답답함! 혹은 치안부재! 안전과 공포의 혼합! 좁은 방! 이것을 작가님은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그 외에는, 어렵다. ...아잇! 이래서 내가 프로 작가님들 사진은 접근을 못하겠다는 거야! 내가 그 분들의 깊이를 움켜잡을 수가 없어! 현대 미술도 적당히 하세요! (짝!)
이상입니다. 정신이 누덕누덕해.. 이 아픔을 음악으로 위로합시다. 이문세가 부릅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아직은... 끼요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