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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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WCG 2023은 성장통을 남기고 (0) 2023/07/28 PM 11:19

WCG 2023은 성장통을 남기고

 

 

 

WCG 2023 부산! 무사히 다녀왔어! ...우선 사죄부터 올릴게. 코스프레 사진, 1장도 못 찍었다... 모르겠어. 이상하게 카메라에 손이 안 가더라고. 왜지? 왜 난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지? ...벡스코의 보라딩딩 실내조명 때문에?

 

조명 탓을 하기에는 혓바닥이 길어. 찾으면 빛이 좋은 곳이 얼마든지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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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가운데, 하얀 LED가 내려쬐는 곳, 여기는 플리커조차 없더라고. 이곳에서 찍으면 딱 일 것 같은데, 문제는 뭐다? 내가 나태하다! 코스어에게 말 걸 용기가 없다! 이런 허약한 자식! (...)

 

다만, 코스어 대신 다른 귀한 분을 찍어 왔어. 박수로 맞아주세요. 지클레프 캐스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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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시공의 폭풍이 돌아가고 있을 무렵, 히오스 해설을 맡으셨지. 하! 시공인의 정은 영원하다고! ...잠깐, 그러고 보니 WCG에 히오스가 없네? 하스스톤, 워크, 스타, 블리자드 게임을 다 출동시켰으면서, 어떻게! 블리자드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히오스를 뺄 수 있어! (...) ...라고 지나가는 “오르피아”가 속삭였습니다...

 

아무튼. WCG. 이실직고 할게. 이 더위에 여러분의 주말을 소비시킬 만큼 알찬 행사는 아닌 것 같아.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 있거나, 선망하는 선수가 출전하거나, 혹 사모하는 스트리머를 보러 가려는 분은 제외야. 이런 분들은 맘껏 가시라. ...다만 나처럼 경쟁게임보다 혼자 하는 게임을 좋아하는 분, 딱히 팬심을 불태울 대상이 없는 분이라면 실망할 걸?

 

 

말 나온 김에, 이번 WCG에 지적하고 싶은 점을 사정없이 고발하겠어. 일단 음식료 코너! 꽝이다! 사장 나오라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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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식탁에 의지가 없어. 이게 가당키나 할 자세냐? 국밥을 서서 먹으라는 거냐? 내 상식에선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 설마 회전율을 올리려고 의도적으로 의자를 치운 거라면, 응, 안 가면 그만이야! (짝!) ...뭐, 의자를 치운 이유도 여러 있겠다만, 그럼에도 난 음식료 코너에 의자가 있으면 좋겠어...

 

다음, 냉혹한 “스파링존”! 패자에게는 아무것도 안 줘! (..?) 스파링존이라고, 스타, 오버워치, 롤, 발로란트, 피파, 카트라이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 이곳에서 사람을 상대로 승리해야만 상품을 받을 수 있거든? 지면 코인 한 푼 안 주거든? 시간만 날리는 꼴이거든!

 

아무리 WCG가 이스포츠를 표방한 행사라지만, 너무한 거 아니니? 내가 특히 악랄하게 느낀 곳이 카트라이더 부스였어. 운빨 아이템전을 금지하고, 무려 1:1 스피드전을 치루더라니까. 맙소사... 그야 어른들은 패배의 아픔을 감당할 수 있어. 받아들이라지. 그러나 섬세한 아이들이 스파링존에서 쥐어터진다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게임쇼에서 도리어 게임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지 않을까? 이래서야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겠어?

 

..참고로 나, 스타에서 3연승 했어. 자랑이자 수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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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말하노니, 나 스타 찐 초보야. 기만 아니냐고? 천만에! 그런데 어떻게 3연승을 했냐고? 그야 상대방 분들이 죄다 순결하신 뉴비셨으니까! 인구수 막혔는데 어떻게 뚫는지 여쭈는 분도 계셨어. 그런데 난 4드론이나 달리고! 죄송해서 고개를 들 수 없더라... 더 이상 이런 죄악이 펼쳐져서는 안 된다! 스파링존 개선하시오!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이상입니다! WCG 2023 이야기는 여기서 끝! ...지금부터는 개인 하소연이니, 심성이 착하고 아량이 드넓으신 분만 남기! (...)

 



사실 오늘 행사장에서 간절히 찍고 싶은 대상을 만났어. 그런데 코스어님이 아냐. 일반 관객이셨다고. ...내 몸은 행사장을 걷고 있는데, 머리는 온통 그 분 생각으로 가득했어.... 관람하시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방해를 하나. 아니다, 용기를 내서 사진을 요청 드리자. 혹시 허락하실지 누가 알아, 그래도 아니다, 왔다 갔다, 참...

 

여성 분이셨고, 베이지 린넨 치마와 베이지 자켓을 걸치 분이었어. 속에는 하늘색 티. 눈동자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가 떠오르듯 투명했고, 얼굴에는 흠마저 아름다운 희미한 주근깨. 손톱은 꾸밈없는 그대로, 금발의 서양인이었어. ...말로는 제대로 전달이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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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Vlada Roslyakova입니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이 사진의 느낌을 주는 분이셨어. 정말... 지금도 속이 탄다...

 

행사장에서는 끝내 말 한마디 건네지 못 했어. 우물쭈물! ...그러다 집에 돌아오는 길, 운명처럼 그녀와 같은 지하철 칸을 타게 된 거야. 놀랐어! 황망했어! 그녀 팔에는 아직 WCG 입장띠가 매어 있더라... 신이 주신 마지막 기회건만, 난 여전히 망설였고, 아련함만 남았지...

 

여러분 앞에서나마 석고대죄 할게. 난 원래 부산 서면에서 내리면 안 됐어. 그런데 서면에서 내렸어. 그녀가 서면에서 내렸으니까. 스토커 짓 했지! 죄송합니다! ...그럼 이왕 스토커 짓 한 김에 말이라도 붙였어야지! 우리말이든, 영어든, 러시아 번역이든! 당신을 보자마자 꼭 담고 싶었습니다. 부디 한 컷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아마추어 사진사입니다. 부디...

 

현실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 난 서면 지하철역에서 사라져가는 그녀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봤어... 그리고 여태까지 가슴앓이만 하고 있어... 이게, 이번 WCG가 내게 안겨준 가장 큰 교훈이야... 용기를 내지 못한 놈, 체면치레 따지는 놈, 그런 내가 놓쳐버린 순간.

 

...그래도 성장했어. 다음번엔 반드시 저지를 거야. 거절의 아픔 따위 상관치 않을 거야. 가능성을 제로에 수렴하게 놔두진 않을 거야. 들이대! (...) 이걸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에휴... 설마 내일이나 모래에 그녀가 WCG에 다시 올까? 그렇다면 난 기꺼이 다시 벡스코로 출두할 각오가 돼 있어. 그런데 그녀가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아오...

 

그렇습니다... 하소연 들어줘서 고마워. 여러분 덕에 내가 산다... 지금의 심정을 담아 김동률의 Replay 듣겠습니다. Replay? ...는, 아니! 어리석음은 1번이면 충분하다! 장기하가 부릅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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