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나는 사랑한다
김명순을 아십니까? (...) 일제강점기, 남녀차별 신분차별이 만연할 때, 홀연히 자유를 꿈꾸었던 여성 작가... 사실 나도 오늘에서야 김명순을 알았어. 유머게시판을 두리번거리던 중 김명순에 대한 글을 봤거든.
그 글에는 김명순과 더불어 “방정환” 선생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어.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을 개창하신 분. 매년 5월 5일이면 난 방정환 선생님께 고마움을 담아 기도 드렸어. 여러분도 그렇지? (...) ...헌데 방정환이 김명순에게는 차마 사람으로서 도리를 던져버렸다는 거야. 언론인으로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거야.
난 처음에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커뮤니티에 떠도는 선동글로 치부했어. 어디 감히 방정환 선생님을 음해해! ...내가 하나하나 검증해 볼 참이었지. 나무위키를 살펴보고, 위키백과를 살펴보고, EBS 다큐멘터리를 살펴보고, 여성운동가들의 기고글을 살펴보고, 그렇게 몰랐던 역사를 파헤친 순간, 그래, 커뮤니티 글이 맞더라. 난 이제 어린이날에 방정환을 기꺼이 찬미할 수 없을 것 같아..
방정환의 필명 “은파리”. 은파리가 잡지에 기고하길, 김명순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도 처녀 행세를 한다... 이 글 때문에 김명순은 언론사 직장을 잃었어. 1920년대 엄혹한 남성위주 사회에서는 투고 하나로 사람 인생을 망칠 수 있구나...
만약 김명순이 정말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 처녀 행세를 했다 쳐. 이 사실을 구태여 대중 잡지에 기고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더 중요한 건 김명순은 남편 다섯을 갈지 않았어. 처녀 행세 또한 하지 않았어. 김명순은 방정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방정환은 짤막하게 구치소 생활을 보냈지.
김명순을 괴롭힌 이는 비단 방정환뿐만 아녔어. “배따라기”로 유명한 김동인. 김동인은 김명순을 모델로 삼아 “김연실전”이라는 중편소설을 발표했걸랑. 여기서 그는 “신여성”을 대대적으로 비꼬았어. ..자유연애를 꿈꾸는 여성들이여, 그대들은 음탕하고, 저속하며, 타락했다. 이 과부처녀들이여! 남편 많은 처녀들이여!
대체 김명순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야박한 대우를 받았을까? 방정환은 독립운동가였고, 김동인은 반민족행위자였고, 이 상반된 지식인 모두에게 배척받은 김명순... 내 딴에 김명순의 생애를 찬찬히 살펴봤지만, 죄라고 칭할 만큼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으셨거든?
다만, 그녀에게 차별적 시선을 보낼 요소는 종종 보였어. 일단 김명순의 어머니는 기생이야. 출생의 굴레가 그녀를 죽을 때까지 뒤쫓아 다녔더군. ...한편 김명순은 일본 유학을 떠날 만큼 공부를 잘 했고, 춘원 이광수가 극찬할 만큼 글쓰기에도 뛰어났어. 이 찬란한 재능이 오히려 당대 남성 지식인들을 자극했나 봐. 시기와 질투에 눈을 멀게 했나 봐...
그러는 가운데 김명순은 “신여성”을 꿈꾸고, “자유연애”를 실천했으니, 정말 맘껏 사랑하셨어. 사랑을 위해 대학을 중도포기하기까지 하고, 때로는 이 사람과 사귀고, 헤어져서는 애인의 친구와 사귀고, 그야말로 관습을 탈피한 연애를 했지. 성관계 또한 여러 하셨나 봐...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 제법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한 나, 자유주의자라 자처했던 나, 이런 나조차 김명순의 자유연애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들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꼰대 남성인가? 여러분은 어때? (...) ...난 해탈하지 못했나 봐. 사랑만큼은 공유하고 싶지 않아. 온전히 나만의 소유로 두고 싶어..
이쯤에서 발칙한 상상 건의할게. 방정환은, 김동인은, 기타 김명순을 비판한 이들은, ...실은 그 누구보다 김명순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 아닐까? 저 총명하고 발랄한 여성이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는데,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니 용납을 할 수가 없었던 거지. 혹은, 김명순이 이들과는 관계를 거부했나? (짝!)
농담처럼 말했다만, 진심이 담긴 통탄이었어. ...자유롭게 사랑하는 그녀에게조차 선택받지 못했다고 상상하면, 어후... 나라도 마음속에 증오가 몰아칠 거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의 불행을 기원할 거야! 분노를 담아 모욕할 거야! ...에휴, 이 좀팽이 자식!
아무튼. 주변의 시기, 질투, 비난으로 인해 김명순은 이후 문학 활동을 펼칠 수 없었대. 일자리를 잃고, 꽃다운 청춘은 사그라지고, 결국 가난 속에서 정신병에 시달리며 생을 마감했어. 참... 고인의 명복을 뒤늦게나마 빕니다...
끝으로, 스스로 다짐한 점이 있어. 내 비록 찐따일지언정 애증에 빠지지는 말자! 가질 수 없다면 부수긴 뭘 부숴! 행복하다면 OK입니다!
김명순 (1896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EBS 다큐프라임] 여성백년사 1부 – 신여성 내음새 - YouTube
김명순 작가의 『의심의 소녀』 - YouTube (국립중앙도서관)
인문360 (culture.go.kr) (신여성과 자유연애)
방정환 - 나무위키 (namu.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