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보정하고 싶은 밤
오늘은 사진에 대해 떠들 겁니다. 많관부! ...지난 주말 부산 코믹월드에서 찍어 온 사진을 드문드문 보정하고 있어. 보정 하는 중에 여러 생각과 감정이 날 흔들었지. 그 소감을 여러분에게 터놓고 싶어.
일단 몇몇 코스프레 모델 분들은 본인이 직접 최후 보정을 하겠다고 말씀하셨거든? 난 그 말을 듣고 섣불리 동의할 수 없었어. 내가 찍은 사진을 남이 보정하다니, 괜스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 ...그러나 지금은 내 고집을 꺾었어. 내가 아무리 사진에 애정을 쏟는다 한들, 사진의 주인공보다야 더 사랑할까? 세상 누구보다 모델 당사자가 가장 해당 사진을 어루만지지 않을까?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사진 원본을 보내드렸어.
다음. 나는 정말 코스프레 사진을 좋아하는가? 소품과 의상과 캐릭터를 사랑하는가? ...는, 갈수록 모르겠어. 난 단지 여성 코스프레어를 찍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노출도 높은 여성 코스어만 헤벌레 좋다는 건 아냐. 그건 아닌데... 내가 나를 모르겠네...
분명한 사실,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를 코스프레한 대상을 찍어야겠더라고. 그래야 보정을 하더라도 방향을 잡기 쉽지. 정성을 들여 보정을 하지. 그런데 내게 그럴만한 덕력이 남아있나? 내가 애니를 언제 봤었더라? 기억조차 희미해... 그래도 부코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오니까! 그 중에는 분명 내가 추억할만한 캐릭터가 있을 거라 믿어.
아참, 이번에 내가 괜한 오지랖을 많이도 떨었어. 내 지레짐작으로 코스프레 캐릭터를 유추했지. 가령, 호그라이더를 코스하신 분에게는 오버워치 라인하르트라 하지 않나, 트라이건 울프우드 코스하신 분에게 주술회전이라 하지 않나, 원피스 사보를 코스하신 분에게 롤 제리라 하지 않나, 끄아악! 열심히 코스프레 준비해 오신 분들에게 이 무슨 실례될 망언이냐... .죄송합니다. 머리 박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아는 시늉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전신사진. 코스프레 사진이면 머리 가발부터 발끝 밑창까지 다 나와야 정보성이 높잖아? 그래서 의도적으로 전신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 그런데 내 성향에는 전신사진이 맞지 않더라고. 예상은 했다만, 더 고역이었어... 어떻게 해야 힘이 느껴지는 전신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어렵다야.
잠깐 2022 WPA 올해의 사진을 감상하겠습니다.
전신이고, 주변 환경은 번잡하고, 그런데도 Adam Ferguson 작가의 사진은 왜 힘이 실리지? 흡입하는 힘 말야. ...설마 선입관 때문인가? 이 사진이 WPA 대상작임을 인지하고 감상하기에 그런 건가? ...아니면 배경 스토리 때문에? 참고로 이 사진은 멕시코에서 찍었어. 살 길을 찾아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이들, 난민에 가까운 삶, 그 속에 서린 슬픔과 애환. ...워워. 너무 간 것 같아. 이렇게까지 무겁게 폼 잡을 의도는 없었는데,
아차, 주제니, 구도니, 전신이니 따지기 전에 난 기본부터 다시 익혀야 해. 바로 카메라 다루는 법! 정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명색이 ‘장비가’라 자칭하는 놈이, 카메라 세팅을 잘못해서 사진을 날려 먹었어.
ISO를 50에 고정해서 찍질 않나, 플래시 고속동조 설정을 잘못 만져서 뻥뻥 새하얗게 찍질 않나, 조리개를 F16에 두고 찍질 않나, 총체적 난국이야. ISO, 셔속, 조리개를 반드시 확인하고 셔터를 누르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 까먹고, 계속 까먹고, 셔터 막 누르고,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모니터로 사진을 열어 본 뒤에야 사고 쳤다는 걸 깨닫고, 수습 불가고, 후회막급이고!
아무튼. 부산 코믹월드. 내가 부코 아니면 언제 인물사진을 연습할까. 모델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든지, 태양빛 아래에서는 모델이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든지, 플래시를 이용한 인물 촬영이라든지, 부코 아니었으면 평생 깨닫지 못 했을 거야.
그러니 앞으로 부코가 열릴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해서 경험을 쌓아야 할 터이지만, 글쎄다, 뭔가가 뭔가야. 가기가 싫어. 힘들고, 아프고, 의미 없어 보이고, 그래. 이 멜랑꼴리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끄응... 뭐랄까, 마음가짐이랄까, 목적의식이랄까, 난 좀 더 명명백백하게 내 자신을 알아야 해. ...아잇, 횡설수설 개똥철학 늘어놔서 죄송합니다.
이상! 남은 사진 마저 보정해야지... 꺼흑. 하기 싫어. 보정을 하면 할수록 내 부족한 실력을 직시해야 해. 내가 사진에 재능이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 이러다 보니 재미가 없어. 씁쓸함이 몰려와. 아오! 이거 완전 슬럼프인데...
아니! 난 할 수 있다! 그래도 일부 장면은 내 심장을 고동 시켰어! 부끄럽지만 내 사진 볼래?
아담스 패밀리에 웬즈데이 아담스를 코스프레 하신 분! 번역기를 써가며 촬영 동의를 구하고, 어렵사리 소통을 하고, 그래서일까? 난 이 사진이 정말 좋아! 눈물 머금은 눈동자가 좋아... 이번 부코 내 최애 컷이다!
아차차, 1장 더 있다. 이 사진!
얼마나 귀엽게요! 카메라를 보자 절로 브이를 지어주신 어린이! 옆에서는 부모님이 그 모습에 깔깔깔 웃으셨고, 나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지었고,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동이었고, 부러웠고! ...아이는 아름답구나.
엇? 그렇구나! 사진에 사연과 추억이 담기면 사랑이 샘솟는구나! 지금 기세를 살려 보정을 계속한다! 하기 싫어! 살려줘! 끼요옷!
1st Place: Migrantes by Adam Ferguson | World Photography Organi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