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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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풍자쇼] 곤충, 학습된 선호 (0) 2024/02/19 PM 10:07

곤충, 학습된 선호

 

 

 

오늘 아침이었지. 부스스한 상태로 소변을 누고, 냉장고를 열고, 냉수 한 모금 마시고, 그리고 부엌 천장을 바라보는데 시커먼 물체가 보이는 거야. 마치 더듬이가 4개인 듯, 꽁지에 뾰족한 두 개의 피뢰침이 돋아난 곤충. 크기는 새끼손가락 끄트머리 정도 했어.

 

글쎄다. 이 곤충이 무엇인지 나름 조사해 본 결과, ‘집게벌레’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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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우리 집에 어떻게 흘러들어왔을까? 추측하건데 설날에 받은 각종 과일류 부산물 더미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왔을까? 아니면 시궁창 한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녀석이 기온이 올라가자 깨어나서 그런 걸까? 이곳 부산은 이미 봄이거든. 기후위기는 계속됩니다.

 

아무튼. 집게벌레는 투명 유리컵으로 포획한 후 밖으로 고이 내보내주었어. 이래봬도 내가 살생을 극히 꺼리는 사람이걸랑. 모기, 지네, 바퀴벌레는 가차 없이 압사 시키지만 말야. 난 모기마저 용서해 줄 만큼 자비로운 경지에 이르지 못 했어. ..지네는 공포증 때문에 죽여. 군대에 있을 때 지네에게 물려서 고생한 적이 있거든..

 

그리고 바퀴벌레. 분명 어릴 적에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저 검고 딱딱한 곤충으로만 인식했지. 바퀴벌레를 잡아서 장난감처럼 갖고 놀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잡은 바퀴벌레를 태워 죽이기까지 했어. 중세시대 마녀 화형식을 바라보는 것처럼 흥미진진이었다고. (...)

 

그런데 지금은 바퀴벌레가 무서워서 죽이는 꼴이야. 학습된 공포지. 바퀴벌레는 세균 덩어리다, 죽을 때마저 알을 퍼뜨린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나서는 감히 바퀴벌레를 편하게 대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예전에는 바퀴벌레를 재미로 죽일 만큼 순진무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서워서 바퀴를 죽인다. 이 결정적 차이를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싶어. 제 맘 이해하시죠? (...) ...아잇, 말해놓고 보니 사이코패스 같네.

 

 

반대로 학습을 통해 공포를 극복한 사례도 몇 있어. 가령 잠자리! 어렸을 때는 잠자리 눈이 그렇게 무서웠어. 그런데 머리가 크고, 잠자리가 일생동안 모기 수천마리를 잡아먹는다는 걸 배우고 나서는 잠자리가 무섭지 않더라. 오히려 고맙더라. 무려 95%에 달하는 사냥성공률을 보이는 포식자, 숭배하라! 킹자리!

 

 

또, 동애 등에.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동시에, 통통하게 커서는 닭의 먹이로 희생한대. 동애 등에의 숭고한 삶, 어쩌면 인간에게 쓰임만 당하고 죽는 삶을 바라보니 동정과 사랑이 동시에 마음속에 일어났어. 징그럽기만 하던 꿈틀거림이 이제 귀엽기만 하더군.

 

단!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든 등에, 구더기를 좋아하는 건 아냐. 동물 몸을 파고드는 말파리 구더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니까. 차마 해당 영상은 갖고 오지 않았어. 유튜브는 이상하리만큼 등에, 피지낭종, 비듬각질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이런 쪽 영상 하나만 틀어도 추천목록이 죄다 등에 피지 비듬 무좀으로 가득 차던데? 여러분도 그래? (...) 나만 이상한가...

 

 

끝으로. 거미! 꼬꼬마 시절에는 거미 한 마리만 나타나도 몸이 경직될 만큼 무서워했어. 일례로 아빠랑 지리산 여행 갔을 때, 텐트에 실거미 한 마리가 들어왔거든? 그 가냘픈 녀석에도 난 꼼짝을 못 했어. 엉엉 울고, 아빠 살려줘 소리치고, 그런데 아빠는 거미는 좋은 동물이라 그러고, 난 더 서럽게 울고, 그랬지.

 

아빠의 충고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어. 어느새 자연스레 거미가 무섭지 않아. 천장에 붙은 집유령거미를 보면 무심히 바라봐. 넌 세상 참 조용히 산다, 그러고 집유령거미랑 방안에서 공생하는 편이야. (...)

 

한편, 깡충거미!

 

얘는 이제 귀여울 지경이야. 어쩔 때는 손바닥 위에 태우고 싶을 정도라니까. ...흐음, 내가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이유 역시 학습 때문일까? 거미가 익충이라는 사실을 듣고 또 듣다 보니 무덤덤해졌나?

 

물론 그럼에도 큼직한 호랑거미는 본능적으로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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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사진 찍을 때 카메라를 놓칠 뻔 했어. 거미줄에 걸린 메뚜기(?)를 한참 방치하기에 살려주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빛의 속도로 달려들어서 메뚜기를 미라로 만들어 버리는데, 내가 다 손이 떨리더라. 그제야 예쁜 꽃밭이 실은 생사를 건 장소임을 깨달았어. 여기도 거미줄, 저기도 거미줄, 이런 데서 나비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경탄스러울 만큼 대단하다.

 

 

아무튼. 집게벌레 이야기를 꺼내다는 것이 어느새 내 곤충 선호도를 풀어냈구나. 잡설이 길었네요. ...이제 곧 봄이니까, 생명이 싹트고, 우리 맘도 싹트고, 응 모기도 태어나겠지요! 난 겨울이 좋소! 가지 마오 겨울아! 끼요옷!





집게벌레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바퀴벌레는 왜 인간과의 동거를 선택했을까?│다큐프라임 #골라듄다큐 (youtube.com)
🦟모기 3천마리나 잡아먹는 잠자리 유충!! 그래 해충은 일찍이 없어져야지!!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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