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랑니 뽑다 (혐 주의)
주의. 오늘은 혐오스러운 사진이 나옵니다. 내 분명 경고했다! 오리발 내밀었다!
1달 전이었지. 내 기준으로 왼쪽 아래, X레이 사진으로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뽑았어. 사랑니가 잇몸을 찌르는 터라 아파서 견딜 수 없었거든.
치과선생님이 더 큰 견인기를 동원하고, 뚝뚝 힘주시고, 심지어 편도선염 때문에 잇몸이 부어있었던 터라 고름이 흐르고, 출혈이 많고, 그럼에도 시원하게 뽑아주셨어.
그리고 오늘. X레이 사진으로 왼쪽 사랑니 2개를 뽑았다! 얼떨결에! ...사실 턱 근육이 아파서, 혹시나 사랑니 때문인가 싶어서 치과에 방문했거든? 쌤이 사랑니를 톡톡 건드려 보시더니 치아에는 문제가 없대. 다분히 턱 근육이 놀라서 잠시 아팠을 거라 하셨어. ...이럼 활기차게 치과 문을 나오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집돌이인 내가 이왕 치과까지 나온 겸, 남은 사랑니를 뽑을까? 당찬 용기를 낸 거지. 전에 여러 애청자님께서 말하시길, 남은 사랑니도 뽑아야 좋다고 그러셨으니까. 특히 왼쪽 아래 사랑니는 어정쩡하게 튀어나온 것에 더해 충치가 진행됐다고도 그러셨으니까. ...X레이 사진만으로 충치를 알아보는 분이 우리 루리웹에 계실 줄이야, 역시 나만 빼고 학식덕식 웹!
그리고, 문득 ‘캐스트 어웨이’의 한 장면이 떠올랐거든. 톰 행크스가 아픈 이를 날려버리는 장면.
평소 아픈 이를 방치하다, 외딴 무인도에서 후회 속에 본인 스스로 이를 제거해야만 했던 주인공을 보며, 나는 기회가 있을 때 치아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어. 1살이라도 젊을 때, 차가운 겨울이 가기 전에, 뽁!
문제는 발치 난이도. 왼쪽 아래 사랑니 뿌리가 굴곡진 것이, 조각내서 뽑아야 해. 치아 주변의 뼈를 갈아야 할 수도 있고, 뿌리 주변 잇몸을 긁어내야 할 수도 있고, 이에 따라 수술 후에 통증도 클 수 있고, 푸아하... 그러나 난 용기를 냈다! 뽑아주세요!
그렇게 내 몸에서 꺼낸 사랑니 2덩이야...
왼쪽 위 큰 덩어리가 윗 사랑니. 쌤이 이 녀석은 1분 남짓 만에 뽑으셨어. 견인기로 뚝뚝 하시더니 어느새 끝났더라고. 참고로 아랫 사랑니를 뽑고 나서 윗 사랑니를 적출했어. ...문제는 뿌리가 휘어있던 아래 사랑니! 조각을 내서 뽑으셨지.
아래 사랑니 뽑을 때는 솔직히 겁났어. 뽑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 것에 더해, 윙윙 뼈 갈아내는 소리가 살벌했거든. 품안에 안겨주신 강아지 인형을 꼭 잡고 있었다고.. 쌤도 뽑는 도중 끙끙 소리 내셨고, 사랑니가 제대로 붙어있다며 칭찬도 하시고, 어려움을 토로하셨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쌤은 간호사님과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더라? 자연스럽게? 그 여유! 알게 모르게 쌤에게 신뢰가 가더라니까.
최대한 안 아프게 뽑아주셨어. 치아 주변 뼈를 갈아내는 대신, 최대한 사랑니만 여러 번 쪼개서 발치한 정성,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사랑니를 뽑아주신 쌤이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시더라? 나는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어.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쉽게 말해 턱과 얼굴 부위 질환 전문가래. 사랑니, 턱관절, 임플란트, 침샘 질환, 구강암 진단 등의 대가랄까.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추가로 인턴 1년과 전문의 수련 3년 과정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전문의 시험까지 통과해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었어. 치대생들의 선망 코스! 과정이 험난하지만, 대신 결과 또한 승승장구인 길!
그제야 퍼즐이 풀리더군. 전에 치과를 방문했을 때 CT촬영을 했거든? 사랑니가 신경과 붙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야. 난 CT촬영을 모든 치과에서 다 하는 줄 알았어. 근데 아니더라. 없는 치과도 많더라. ...그런데 내가 갔던 치과에는 CT촬영기가 있었던 이유, 쌤이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니까! 사랑니에 진심이니까!
난 운이 좋았네. 그저 집 근처 치과 중에, 네이버 평점 높은 치과를 찾아갔을 뿐인데, 쌤이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라는 것도 모르고 찾아갔을 뿐인데, 실은 내 사랑니를 가장 전문적으로 뽑아줄 분을 찾아간 거였어. 다시 한 번 더 고맙습니다! 내 인생 치과는 이곳으로 정했다!
여하튼. 사랑니 2개 발치하는데 3만 8천 원 정도 들었어. 일주일 치 약값이 대략 4천원. ..전에 사랑니 1개 뽑고 CT촬영했을 때가 5만 8천 원 정도 들었거든? CT촬영비가 사랑니 뽑는 것 보다 더 비싸구나. 호오.
뽑고 나서 통증은.... 전보다 살짝 더 아픈 편이긴 한데, 크게 거슬리지는 않아. 난 동시에 2개 뽑았겠다, 아래 사랑니는 조각내서 뽑았겠다, 지옥이 펼쳐질 거라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평온해. ...물론 기분 나쁜 얼얼함이 감도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내가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 ...사랑니 뽑기 전에 맛있는 거 잔뜩 먹고 뽑을 걸! 즉흥적으로 사랑니를 뽑기로 결정한 탓에 미처 위장을 배불리지 못 했어. 흑흑... 난 이틀간 단식하려고.. 강제 다이어트네!
아무튼, 사랑니!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오른쪽 위! 사랑니답지 않게 작고 다소곳하게 난 사랑니! 얘는 정말 말썽 없이 잘 붙어있는데, 그냥 둬야 하나 고민이네. 내 몸에 ‘사랑’ 하나는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 (...) 죄송합니다. 헛소리 그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