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PCM-A10을 구매한 이유
작년 9월 부산 해운대에서 열렸던 붕괴 스타레일 공연. 김혜성 성우, 김현모 베이시스트, 덕찌밴드가 붕괴 OST를 생생하게 연주했고, 나는 그 소리를 녹음하여 평생 간직하고 싶었어. 나름 소니 ‘ECM-M1‘ 마이크를 준비했을 만큼 기대가 컸어. ..그러나 녹음 결과물은 좋지 못 했어.
왜 이렇게 소리가 탁할까? 울릴까? ...당시에 나는 장비 탓만 했어. ECM-M1이 이상하다. 더 비싼 마이크를 써야 한다. 후아... 다행히 소리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 내 잘못된 판단을 고쳐먹었어. ...그래, 장비 잘못이 아냐. 내 실력 부족이고, 내 무지 때문에 녹음을 망친 거야.
나는 소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음원과 마이크 간의 거리, 마이크 위치의 중요성, 마이크의 지향성, 샘플레이트고 다이나믹이고, 전혀 공부하지 않은 채 무작정 녹음을 했으니 결과물이 좋을 리가 있나... 한탄은 그만!
소리에 대해 조금은 공부하고 나서, 녹음 장비 구성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어. 내가 원하는 녹음 장비란, 첫째, 위치에 제약을 받지 않는 기기! 음원이랑 최대한 가까이 붙일 수 있는 마이크! ...휴대용 녹음기가 이 역할을 수행하기에 딱이었어.
둘째, 휴대용 녹음기 중에서도 32bit float을 지원하는 기기!
나는 녹음 초보자고, 녹음 할 때마다 적정 게인을 맞출 자신이 없어. 게다가 나는 사진이 주력이라 손에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 녹음이야 덜렁 녹음기 재량에 온전히 맡겨야 하는 상황이 많거든. 그러므로 폭넓은 외부음량에도 대응 할 수 있는 32bit float이 간절했어.
셋째, 스테레오를 지원하는 기기! ...내가 녹음하고 싶은 소리가 주로 환경음이나 공연이다 보니, 모노보다 스테레오가 끌렸어. 아울러 언젠가 내 사랑을 만나면 스테레오 마이크로 ASMR 녹음해 달라고 할 거야. 그때를 위한 스테레오야. (...) ..꿈은 원대하게 가집시다!
정리하면 작고, 가볍고, 32bit float과 스테레오를 지원하는 고음질 휴대용 녹음기!
이 조건을 만족하는 후보군으로, 1번 타자. 타스캠 포타캡쳐 X6.
탈락! ...녹음 성능은 좋아. 그런데 외장 마감이 꽝이야. 플라스틱 외장이며 마이크 캡슐이며 싸구려 티가 팍팍 난대. 그야 외부 만듦새 따위 무시하고 쓰면 된다지만, 아니! 나 장비가는 껍데기 플라스틱조차 중대 사항이다! 차마 타스캠 X6를 사고 싶지 않았어... 아잇, 이런 내가 스스로 한심해.. 그래도 어쩔!
2번 타자, 줌 F3.
정말 좋은데, 32bit 192khz까지 지원하는 프로급 휴대용 녹음기인데, 그런데 가격과 크기가 문제야. 국내 정식유통품은 50만원이 넘고, 알리에서 직구한다 해도 30만원이야. 여기에 XLR 마이크 2개 따로 사야지, 지갑 털리지, 부피 늘어나지, 난관이 높았어.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제외!
3번 타자, DJI 마이크2 송신기.
칼린쇼 애청자님께서 강력 추천해 주신 기기이기도 하거니와, 이 조그마한 녀석이 32bit float까지 지원하니 얼마나 대단하게요. 송신기 단독으로 구매하는 경우 12만 9천원으로 앞서 X8이나 F3보다 저렴해. ...허나 안타깝게도 탈락. DJI 마이크2는 스테레오가 안 돼. 송신기에 3.5mm 입력조차 모노만 가능해. 정 스테레오로 쓰고 싶으면 송신기를 2개 사야 하는데, 이럼 예산이나 부피가 매력을 잃어서 말이지.
끝으로 4번 타자, 줌 H1essential!
내가 내걸었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기야. 내 얼마나 기대했다고. 나오면 당장 아마존에서 직구할 참이었어. 가격 역시 99달러로 합리적이야. ...그런데, 후우... 줌 H1 에센셜 탈락! ...포타캡쳐 X6와 마찬가지로 외장재 품질이 영 좋지 못하대. 거기다 프리앰프의 성능이 전작 H1n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는군.
결국 나는 의외의 대안을 최종 낙점했어. 바로 소니 PCM-A10!
예전에 내가 PCM-A10을 대차게 깠거든? 배터리 내장 리튬이라 교체하기 힘들고, 이제 점점 사그라지는 USB A 규격 단자를 쓴다는 이유로 말야. 심지어 PCM-A10은 32bit float을 지원하지 않아. 24bit가 최대야. ...근데 왜 나는 갑자기 PCM-A10을 샀단 말이뇨!
사실 단점으로 지적했던 점 빼고는 정말 마음에 드는 녹음기거든. 작지, 줌 H1보다 더 작아,
가볍지, 스테레오 지원하지, 마이크를 XY AB 직선으로 방향 조절할 수 있지, 블루투스 전송 기본 내장해서 폰으로 녹음기를 조작할 수 있지, 소니답게 마감 깔끔하지. ...딱 하나, 가격이 경쟁품들에 비해 살짝 비싸. 소니스토어가 24만 9천원. 그런데 나는 마침 싼 매물을 구할 수 있었어. 19만 7천원에 신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면 믿어져? 현금영수증까지 받았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
더구나 내가 지적했던 약점들,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어. 우선 내장 리튬 배터리, 자가로 교체할 수 있더라고.
‘303450’규격의 리튬 배터리와 인두기를 준비해야 하구나. 303450배터리는 알리에서 만원 아래로 팔았어. ...나중에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까짓것 인두기 들고 새 배터리로 바꾸면 되겠다.
내장 USB A는 젠더를 사용해서 C타입으로 변경할 수 있어.
가령 오리코에서 나온 OTG USB C to A 케이블. 괜찮지? (...) 오리코 광고는 아닌데, 이 케이블 제법 성능이 좋아. 데이터 전송속도 10Gbps, 전력 또한 PD 60W까지 감당한대.
자, 문제는 32bit float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건데, 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소리 전문가님들 가라사대, 24bit로 각 상황마다 적절한 게인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연습해야 한다. 32bit로 편하게 녹음하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라고 위로해 보지만, 32bit float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네. ...소니는 언제쯤 32bit float 녹음기를 내놓을까...
한편 PCM-A10 녹음 음질. 소니 PCM-D10, 타스캠 X8, 줌 F3과 같은 고급기종에 비해서는 노이즈 비율이 높은 편이야. EIN(Equivalent Inpuyt Noise) 수치를 따졌을 때, 줌 F3는 –128dBu인 반면 PCM-A10은 –116dBu거든. ...그러나 비슷한 크기의 녹음기, 줌 H1에 비해서는 압도적일 만큼 PCM-A10 음질이 좋아.
게다가 PCM-A10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외장 마이크를 연결했을 때 음질이 상급기 수준으로 올라간대. 소니의 전설적 녹음기 PCM-D100과 동급의 성능을 보여준다나? 참고로 PCM-D100의 EIN은 –127dBu야.
그렇다면 PCM-A10에 연결해서 쓰기 좋은 외부 마이크는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Clippy EM272 무지향성 마이크를 추천했어.
XLR 단자로도 주문할 수 있고, PCM-A10에 맞게 3.5mm로도 주문할 수 있지. 다만 이 마이크를 만드는 곳이 영국에 있어. 배송료 내야지, 직구 해야지, 불량 나오면 골치 아파지지, 그래도 나는 용기를 냈다! 질렀다! EM272M 페어드 스테레오 3.5mm 라이트 앵글! 일주일 전에 구매했건만 아직 배송출발도 하지 않았어. 따흑.
배송료까지 총 125.8파운드가 들었어. 한화로 약 20만원. 에휴... 내가 무슨 대단한 소리를 녹음할 거라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 근데 EM272M 성능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저렴한 거래. 하나에 60~80만원 하는 마이크보다 EM272M이 더 좋대. ...마이크야 사 두면 두고두고 쓸 테니까, 렌즈 하나 샀다 치지 뭐.
아무튼, 나는 PCM-A10으로 녹음 인생을 개창했어. 부디 내가 PCM-A10의 잠재력을 80%만이라도 끌어낼 수 있길 빌어. 부디 내가 어떤 소리를 담고 싶은지 깨닫고 싶어...
이미 다 질러놓고 나서 얘기지만, 내심 PCM-D100이 어떻게 생겼는지 만이라도 보고 싶어. 어디 실물 구경해 볼 수 있는 곳이 없나? 아시는 분? 부산이어야 합니다. 에헴. (...)
캬, 잘 생겼다! 1990년대 일본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외관, 금속의 아름다움, 탁월한 녹음 성능, 내가 바로 녹음기다! 소리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 같아. ...이미 단종 됐고, 구하려면 중고를 사야하고, 중고마저 100만원이 넘었어. ...왜 소니는 PCM-D100을 단종 시켰을까? 여전히 많은 오디오 전문가들이 찾던데? 수지타산이 안 맞았나? 흐음...
이상! 며칠간 PCM-A10으로 녹음한 소리야. 들어보실 분은 재생하기!
..아참, 오늘은 PCM-A10에 대해 좋은 소리만 했는데, 다음번에는 안 좋은 소리만 해 볼게! PCM-A10을 직접 써보고 느낀 불만사항! 계속!
오디오 : 워크맨/녹음기 : 102263709 : PCM-A10 (son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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