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마주하기
여러분은 셀카 찍어? (...) 나는 전혀! 실수로라도 폰 전면 카메라가 켜지는 날이면 심장이 덜컥 해. 화면이 비친 내 모습은 뭐랄까, 그는 초라하고, 불쌍하고, 꾀죄죄하고, 그러나 사랑스럽고, 부끄럽고, 그래. ...제 심정 이해하시죠? 우리 찐따들? (짝!)
이렇게 자기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내가 자화상을 촬영했다면 믿겨? ...어쩔 수 없었어. 여권을 갱신해야 하고, 어느덧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새로 받아야 하고, 반드시 증명사진이 필요했어. ..이래봬도 내가 사진이 취미 아니겠니! 이참에 내 모습을 찍어보자! 무모한 용기를 냈어.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고, 플래시를 고정하고, 조명우산을 펴고, 만만의 준비를 마친 후에 셔터를 눌렀어. 그래도 내심 잘 나올 거라 기대했다? ...응, 희망고문이었고요. 결과물을 보는데 충격 먹었어. 비록 미리 각오했다만, 진실은 내 예상보다 더욱 적나라하더군. ...나의 추적한 피부, 어느덧 청춘이 사라져버린 얼굴... 받아들여야 하나!
더 큰 문제는 얼굴의 균형. 내가 고개를 항상 오른쪽으로 살짝 숙이고 있었어. 그러니 좌우 얼굴을 똑바로 하려면 오른쪽 목 근육이 뻐근할 만큼 고개를 왼쪽으로 당겨야하더군. 후아... 나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게 다 카메라 때문이다! 숄더백이며 카메라를 한쪽 어깨로 매고 다닌 탓에 몸의 좌우 균형이 무너진 것 같아. 흑흑..
아무튼. 자화상... 맘에 들지 않았어. 내 모습을 보고 슬펐어... 그래도 괜찮아! 까짓것 보정하지 뭐! 피부 백옥처럼 밀고, 얼굴 원빈처럼 고치라지 뭐! ...는 그러나 나는 보정을 하지 않았어. 그럴 게, 증명사진이란 무엇인가? 나를 확인하기 위한 사진 아닌가? 여기에 굳이 미학이 가미될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원본 사진을 그대로 제출했다! 여권에 떡하니 무보정 내 얼굴을 박았지. 5월에 새로 받을 운전면허증에도 떡하니 있는 그대로 모습을 넣었고 말야. 나 잘한 거 맞지? 나중에 후회하려나? (...) ..후아, 괜찮아! 여권? 난 이제 해외에 나갈 자본금이 없습니다! ..운전면허증? 어차피 장롱면허라 여태 들고 다니지도 않았어.
아무튼. 자화상... 이참에 화가들이 왜 자화상을 그렸는지 알아봤거든? 렘브란트니, 반 고흐니, 굳이 자기 얼굴을 그릴 이유가 뭐람... 해설가 선생님 왈, 아무도 그리지 않기 때문에 그리는 거래. ...내 이 말을 보고 불알이 떨렸어. ...그래, 내 얼굴을 내가 아니면 누가 그리리오. 캬!
대가들은 자화상을 그리며 자유를 맛보았대. 하긴, 자기가 자기 얼굴을 그리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더 잘생기게 그려달라니, 근엄하게 표현해 달라니, 청렴하게 꾸며 달라니, 이러한 요구를 전혀 따르지 않아도 되잖아? 오롯이 자신이 갈망하는 대로 붓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렇구나. 어쩌면 나도 자화상을 통해 자유로운 사진을 만끽할 수 있을까? 근데..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내 모습을 찍고 싶지 않아. 사진에 찍힌 내 눈동자,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통스러울 지경이었어.. 왤까? 왜지? ...모르겠어.
얼굴뿐만 아니지. 녹음된 내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절망감이란 대단했어. 내 목소리가 이렇다고? 이렇게나 처참하다고? 안 그래도 나는 어눌하게 말하는데, 공기로 전파되는 목소리는 더욱 어눌어눌했으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본인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장 귀를 막고 싶을 겁니다. 내 장담하겠습니다. (짝!)
여하튼 자화상. 간신히 내 모습과 정면으로 대면했다만, 뭔가가 뭔가였어. 난 아직 자신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됐나 봐... 한편, 모델님들, 방송하시는 분들은 대단하시구나.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 박수를 보냅니다. 부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 방송인 '김도' 님 영상 보며 오늘 쇼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도! 그는 대체!
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 [여권 사진] (passport.go.kr)
[명화를 보다, 경제를 읽다] 부유한 렘브란트도 가난한 반 고흐도… 거울 속 자신을 쉼 없이 그린 이유 (hankookilbo.com)
녹음된 내 목소리, 왜 어색할까? [유아_인싸]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