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보며 떠올렸던 우리나라 역사
삼일절. 평온한 일요일 저녁 보내고 계십니까. ..삼일절, 우리나라가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외친 날. 이러한 날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심란했어.
어느 쪽이 옳은지, 타당한지는 오늘 이야기하지 않을게. 나는 이란을 모르고, 이스라엘을 모르고, 미국의 내부 사정도 모르고, 모르는 것 투성이 속에서 함부로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
다만 ‘감정적’으로 이번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보자면, 나는 무기력감을 느꼈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하지만, 정작 현실은 내가 어느 나라의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났느냐에 따라, 국가 의지에 따라, 소수의 의도에 따라 내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아 비통했다.
이란의 현 상태를 보며 우리나라 역사의 순간이 떠올랐어.
하나.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하필 그 때 팔만대장경을 제작했더군.(1236년 ~ 1251년) 고려가 불교의 힘을 빌리려 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에서야 팔만대장경의 빼어남을 칭송하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고려 조정이 전쟁 와중에 강화도에서 25년 간 목판을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 통탄스러워.
둘. 병자호란.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의미로 삼전도에서 청 황제(당시 홍타이지 본인이 직접 삼전도에 온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리는 장면. ..나는 침략자 청나라보다, 당시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 조정이 더 원망스럽다.
셋. 조선 말 을미사변. 민비가 일본의 낭인들에게 살해 된 사건. ..나는 조선이 몰락하고, 백성이 고통을 겪고, 일제에게 주권을 뺏긴 이유가 민비에게 아주 상당히 있다고 생각해. 민씨 일가 정치를 심화시켰으며, 부패와 무능이 만연했으며, 금강산에서 굿을 한다고 국가재정을 허투루 쓰지 않나, 더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세에 이리저리 붙었으니까. 자기 나라 국민마저 외세 총칼 앞에 내세웠으니까.(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참패한 일)
문제는 민비가 일제의 손에 죽었다는 것. 우리 손으로 그녀를 단죄시키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마찬가지로 미국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 지도부가 사망한 현재, 과연 이란 국민들은 어떤 심정일까? 하메네이에 비판적인 이란 국민들조차 외세의 개입에 분노할 것 같아..
넷. 1945년 이후 미국의 한국정치 개입. AI에게 그 사례를 찾아달라고 했어.
내 예상보다 더 많은 개입이 있었구나.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 근대사가 미국의 입맛에 따라, 당시 미국 대통령 및 정치권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크게 휘둘려 왔던 것 같아.
여기까지. 내 감정을 우리 역사에 비추어 털어놨어. ..사실 내 관심사는 따로 있어. 호르무즈 해협.
이란이 바다를 막으면, 중동의 석유와 가스 길이 막히니까. 참고로 우리나라는 원유의 69.1%, 액화천연가스의 20.4%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대. ..부끄럽게도 나는 전쟁의 참상이나, 이념이나 이상보다, 당장 내가 먹고 살 일이 가장 걱정이다. 아니,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세계가 평화롭길 바랍니다.
이란 37년 절대권력, 하루아침에 ‘폭사’…하메네이는 누구
[조선을 움직인 사건과 인물] 1637년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 아카이브 - 한국역사연구회





저는 거기서 일제와 이란 독재신정을 동일하게 보고 이란 국민들의 열망이 이뤄져서 다행이다 라는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