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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름다운 구속] 아름다운 구속 2 (0) 2013/04/25 PM 10:54
그리고 OT가 시작된 그 다음날. 그때부터가 내 대학생활 아니 지옥의 시작이었다. 이른 아침 시간. 나는 다소 무거운 기분으로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참 내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뭐 하자는 건지.”

과 학생들과 교수님은 전부 학교 운동장 앞에서 서로 웃으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는 모양이다. 나는 그 뒤에서 약간 떨어져, 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OT 때문에 들뜬 기분이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쓴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몇 년 휴학한 탓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큰 문제가 하나 더 자리 잡고 있었다.

‘선배 보자마자 이런 말 하면 너무 갑작스럽겠지만 나랑 사귈래?’

‘역시나 너도 당했네. 작년에도 우리 과 남학생들 거의 다 당했거든. 물론 난 임자가 있어서 안 당했지롱. 아마 네가 임자가 없어 보여서 너부터 건드린 모양이네.’

무시무시한 위압감으로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남겼던 그 인간과,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촐싹이’ 선배. 그 둘을 다시 마주칠 것 같아, 나는 손톱을 입 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등 뒤에 불벼락이 내리쳤다.

“으악! 누구야!”

손톱이 혀 표면을 살짝 찢으면서 손가락이 입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물론 손가락도 앞니에 찢겨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어제의 ‘킹콩’이 아닌가 싶어,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거기에는 킹콩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작은 여자가 서 있었다.

다만 아직도 꽃샘추위가 남아 있는 3월 초인데 배꼽티에 핫팬츠. 군데군데 염색한 머리 등. 멀쩡한 학생처럼 보이지 않고 어디서 많이 놀던 여자처럼 보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에게 ‘나가요’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생뚱맞게도 ‘저 작은 몸에도 킹콩 같은 힘이 나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 여자는 이번엔 내 등판을 가볍게 두들기며 질문을 던졌다.

“C선배. 다들 분위기 좋게 모여 있는데. 혼자 거기에서 뭐 하고 계세요?”

자꾸 난데없이 낮선 선후배들이 날 건드리거나 아는 척 하는 게, 마치 RPG 같았다. 갑자기 몬스터와 조우하는 그거 말이다. 나는 뒤로 살짝 물러나며 ‘나가요’에게 퉁명스러운 투로 질문을 던졌다.

“넌 또 뭐야?”

내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물어보자, ‘나가요’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C 선배 의외로 사람 얼굴 잘 기억하지 못하네요.”

“무슨 소리인데?”

내가 짜증 섞인 투로 질문을 내던지자, ‘나가요’는 일부러 놀라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크게 웃으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라고 중얼거렸다. ‘킹콩’이나 ‘촐싹이’보다는 그나마 덜 했지만, ‘나가요’도 은근히 사람 짜증나게 만드는 데에는 뭐가 있긴 있었다.

“개강식 날 각자 자기소개 했잖아요. 그 때 선배도 자기소개 했었고. 저는 가장 먼저 자기소개 했던 J인데 혹시 잊어버리신 건 아니죠?”

솔직히 말해 자기소개를 대충 한 다음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그 때 내가 자기소개를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

“어쨌건C 선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요?”

‘뭐야 이 인간은 또.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는 척하고 말 거는 사람이 많아. 복학생 되면 아싸된다는 거 다 허풍이었나?’

정작 나는 자기소개도 대충 하고, 그마저도 하고 난 뒤에 다 잊어버렸지만. 계속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아는 척을 하는 게 약간 의아하긴 했다.

“어제 물건 나르는 거 봤는데 체력이 꽤 좋아 보이는 게 멋지더라고요. C선배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

아주 불행하게도 내 이십대 중반이 넘은 인생에 그런 거 없었다. 아니 자기랑 사귀자고 우겨대는 이상한 녀석은 하나 있긴 했다. 더욱 불행하게도 말이다.

“잘 되었네. 제 친구가 선배한테 관심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관심 있는 사람이 와야지 왜 네가 대신 얘기하는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별로 관심 없는 척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나가요’는 잠깐 당황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여우 눈을 뜬 채 슬쩍 웃음을 흘리더니, 마치 자기 이야기라도 되는 것처럼 몸을 비비 꼬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나중에 그 친구 소개시켜 줄게요. 아마 선배도 꽤 좋아할 걸요. 애가 의외로 부끄러움을 잘 타거든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가요’는 종종걸음으로 물러나, 여자들 무리에 끼어들었다. 나는 그녀가 사라지자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저기에서 관심을 보이는 게 마냥 나쁘기만 한 게 아니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의 친구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부터 이미 지뢰밭에 한 발짝 들여놓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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