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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5 (0) 2013/04/27 PM 07:38
아테네는 그녀는 은색 주얼 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 들어있는 렌즈를 유리에게 건네줬다. 보라색 렌즈 한 가운데에, 하얀 새 그림이 그려져 있는 특이한 모양의 물건이었다.

“일단 이건 눈에 끼우는 렌즈입니다. 이름은 기어…. 뭐라고 했더라. 뭐 자세한 이름은 몰라도 됩니다. 일단 이름은 몰라도 성능만 좋으면 그만 아닙니까.”

“어이 이봐 그게 무슨 소리….”

커스터 대령이 식은땀을 흘리며 떫은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 하자, 유리는 곧바로 그의 말을 끊기 위해 전혀 앞이 보일 것 같지 않은 렌즈를 오른쪽 눈에 끼웠다.

“사용법은 이렇게 눈에 끼운 다음. 상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외치면 됩니다.”

커스터 대령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말을 미처 다 잇지도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유리는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면서 기세 좋게 외쳤다.

“유리 스타크의 이름으로 명한다! 전부 벗고 춤을 춰라!”

그러자 아테네는 기껏 갈아입은 옷을 죄다 벗어던진 뒤, 다리를 쩍 벌린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눈을 뜬 커스터 대령은, 가운데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며 춤을 추는 아테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유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씩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아테네는 여전히 홀라당 벗은 채, 엉덩이를 세차게 흔들며 춤을 췄다.

“이렇게 사용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 번 명령을 내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한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죠 그리고 또 지속시간은 반영구적입니다.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 이상, 사용자가 죽더라도 계속 명령이 유지된다는 것도 꽤나 큰 메리트죠.”

유리가 손가락을 튕겨 큰 소리를 내자, 아테네는 곧바로 정신이 들었는지 춤을 추는 걸 멈췄다. 그리고 뱀 허물처럼 벗어둔 옷을 대충 주워 입기 시작했다. 커스터 대령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이마를 살짝 구기더니, 이내 유리의 멱살을 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걸 나한테도 사용했단 말이야?!”

유리는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 씩 웃으며, 렌즈를 떼어내 다시 주얼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 앞으로 케이스를 내밀었다.

“아 괜찮아요. 대신에 효과는 명령 하나당 한 번이거든요. 게다가 방금 전처럼 눈을 가린다면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그러자 커스터 대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은색 주얼 케이스를 밀어냈다.

“그게 대체 뭐야? 마치 어딘가의 중학생 애들이나 생각할 법한 발상은….”

유리는 넉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커스터 대령에게 은색 케이스를 건넸다.

“좀 어린애 같은 물건이라고 해도 효과는 확실한 진품입니다. 이 렌즈는 존속살인이 주특기인 어느 황태자의 각막을 사용해서 만들었거든요. 재료 구하느라 아주 진땀을 뺐습니다.”

커스터 대령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는 금색 케이스를 가리켰다.

“거기 하나 더 있는 건 뭐지?”

유리는 주얼케이스를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내 보였다. 이번에는 문어 모양의 은색 호루라기였다.

“아 이것 말씀이십니까? 의외로 안목이 높으시네요. 이건 비슷한 효과를 가진 5공 호루라기입니다. 이걸 만드는 데 아고리국 화폐로 딱 정확히 29만원 들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대머리 독재자의 머리카락과 불알 털. 그 마누라의 음부 털과 턱뼈 약간. 그리고 그 둘의 양심 등을 재료로 써서 만들었죠.”

커스터 대령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유리에게 질문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군 그래. 그거 믿을 수 있는 물건이긴 한가?”

유리는 커스터 대령의 불만을 무시한 채 계속 물건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횟수와 지속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하루에 딱 세 번. 지속시간은 명령 하나당 한 시간. 그 대신 호루라기 소리가 닿는 범위라면, 어지간한 사람은 전부 다 명령에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커스터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 유리의 마지막 한마디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누구에게나 다 먹히는 게 아니었어?”

이에 유리는 다시 한 번 커스터 대령의 의문을 묵살한 뒤, 호루라기를 입으로 가져가면서 한마디 했다.

“뭐 사용해보시면 알 겁니다. 아니면 제가 이 자리에서 한 번 시범을 보여드릴까요?”

커스터 대령이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서 고개를 마구 저어댔다.

“그만두게. 방금 전 렌즈처럼 이상한 명령을 내리려고?”

그러자 유리는 호루라기를 내려놓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쳇. 아쉽군.’

커스터 대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유리와 아테네가 주얼 케이스를 그가 있는 곳으로 밀어내며 질문을 던졌다.

“자 그러면 어떤 물건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대령님?”

커스터 대령은 별 고민도 없이 금색 주얼 케이스를 집었다. 그리고 은색 케이스를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이 렌즈는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중학생 애들이나 쓸 것 같단 말이야. 게다가 내가 지금 한두 놈 잡아서 지금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러자 아테네는 은색 케이스를 집어 들고 치마 안에 집어넣었다. 커스터 대령은 눈살을 한 번 찌푸린 뒤,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호루라기를 꺼냈다.

“이 호루라기를 쓰겠네.”

유리는 손뼉을 치며 치마 안에서 소책자 한 권과 캔 오프너를 꺼냈고, 아테네는 폭죽을 터트린 뒤 종이 한 장과 나이프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예 역시 대령님은 그걸 고를 줄 알았습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러면 바로 매뉴얼하고. 약속드렸던 ‘약탈품 통조림’의 키를 드리겠습니다.”

커스터 대령은 열쇠랍시고 내민 캔 오프너를 보며 혀를 찼다.

“이게 대체 뭔가? 이건 그냥 통조림 따는 칼이잖아?”

유리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커스터 대령의 상의 주머니에 열쇠와 소책자를 넣어줬다.

“당연하잖습니까. 약탈품 통조림인데 통조림 따는 칼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요? 아 그리고 같이 넣어드린 이 책은 약탈품 통조림과 5공 호루라기의 매뉴얼입니다. 그냥 여기에 나와 있는 대로 하시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겁니다.”

“이제 끝인가? 그러면 난 바로 가 보겠네.”

커스터 대령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리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아테네가 그 옆에서 계약서를 커스터 대령에게 내밀고, 나이프를 테이블에 힘껏 내리찍었다. 나이프의 칼날이 박힌 곳은 커스터의 오른손 바로 옆이었다. 조금만 더 오른쪽을 향해 찔렀다면, 엄지손가락이 깍두기 마냥 썰려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 끝은 아니죠. 계약서에 서명을 해주셔야 진짜 끝이라고 할 수 있죠.”

유리 스타크는 커스터 대령 앞에 놓인 계약서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면서 씩 웃었다. 순간 커스터 대령의 눈에 유리와 아테네의 모습이 흉측한 괴물로 보였다. 양 이마에 돋아난 염소 같은 뿔. 새빨간 피부에 입 밖으로 길게 튀어나온 송곳니와 말발굽 발.

커스터 대령은 주일마다 다니던 교회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 중,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유리와 아테네의 모습과 비슷한 게 그려진 목판화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화들짝 놀라면서 의자를 뒤로 슬슬 빼기 시작했다.

“계약서라고?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공짜가 아니라니 이것들이 날 속인 거냐!”

유리는 여전히 환한 미소를 띠며, 계약서를 들어 커스터 대령의 얼굴에 바짝 붙이다시피 밀었다. 그리고 아테네는 칼날이 절반 이상 박힌 나이프를 당근처럼 쉽게 뽑아낸 뒤, 그의 왼쪽 엄지손가락을 살짝 그었다. 그러자 커스터의 엄지손가락에서 피가 서서히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절대로 거짓말 따위는 한 적도 없습니다. 분명히 초대장에도 대령님을 위한 물건이 있다고 했지, 그게 공짜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안 읽으신 겁니까? 아니면 초대장을 다 찢어 없애버리기라도 하셨습니까? 커스터 대령님.”

유리는 입 끝을 귀에 닿을 정도로 높이 찢어 올리며, 가운데가 텅 빈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들겨댔다. 그 한편으로 아테네는 바늘로 유리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두 사람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리는 계약서를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은 뒤, 서명 란을 손가락으로 두들겨 가며 커스터 대령을 빤히 쳐다봤다.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서명 란에 피로 지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커스터 대령님 설마 이번에도 계약서를 대충 읽고 지장을 찍으시면 더 크게 후회할 겁니다. 아시겠죠?”

말을 마친 유리는 커스터 대령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끝까지 다 읽은 뒤, 방금 칼에 베여 피가 흐르고 있는 왼손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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