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입이 쩍 벌어질 일을 당한 나는 일단 담배부터 찾았다.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야 너 뭐 한 거냐?”
갑자기 맹수가 울부짖는 것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뭔가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묵직한 뭔가가 뒤통수를 후려치자, 눈에 불이 번쩍 들어오면서 라이터 불이 콧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콧구멍이 화끈거리면서 짐승 털 태우는 독한 냄새가 콧속을 확 찔렀다.
“야! 누구야!”
크게 화를 내며 고개를 돌리자, 나 못지않을 정도로 한 덩치 하는 조교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얼굴 표정과 빨갛게 부은 손바닥을 보니 내 뒤통수를 누가 후렸는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건 내 뒤통수를 때린 이유였다.
“예? 저 말인가요?”
조교는 다시 한 번 내 가슴팍을 치면서 한마디 뱉었다.
“그래. 여자 울리고 다니는 너.”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을 향해 크게 한숨을 내뱉은 뒤, 곧바로 상황 정리를 위한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말이죠. 저는 다래 걔를 울릴 생각도 없는…. 아니 겨우 딱 두 번 얼굴 마주친 게 전부라니까요!”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만난 지 하루 만에 내 신상을 전부 다 팠다거나, 또 그걸 기억하겠다고 밤을 샜다는 얘기를 차마 꺼낼 수도 없었고. 꺼낸다 해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 때 지나가던 스님. 아니 후배 한 명이 나를 대신해 방금 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주 짧고 간단하게 요약해줬다.
“다래가 C한테 고백했는데 C가 그걸 거절했어요.”
참 간결하게도 요약했다. 다만 중요한 부분까지 요약해버렸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리고 더 가관인 게, 뇌관에 불을 붙인 후배는 생선을 입에 문 도둑고양이 마냥 슬그머니 물러났다. 나는 뭔가 변명 한마디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입을 풀로 붙인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덕분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가슴속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누가 바늘로 찌른다면 그 자리에서 풍선처럼 터질지도 모를 일이겠다.
나는 잠깐 조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곧바로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곧바로 조교의 입에서 기관총을 쏴 갈기는 것 같은 꾸지람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니가? 야 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적당히 잘 구슬리고 달래야지. 저렇게 소리 지르다가 울면서 도망가게 만들어? 대체 쟤한테 무슨 악담이라도 쏟아 부은 거야? 그리고 너한테 저런 기회가 몇 번이나 올 것 같아? 이야 C 너 정말 대단하다. 하여튼 걔도 뭣 때문에 너 같은 놈한테 고백까지 하고 우냐?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 놈 나쁜 놈이네? 너 다래 다시 만나면 꼭 사귄다고 해! 아니 꼭 사귀자고 울고불고 매달리라고 알았어?”
내 고개는 마치 힘을 잃어가는 중년 남자처럼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었다. 나는 삼십 분 정도 조교의 따발총에 맞아가며, 내 정신 여기저기에 쥐구멍이 뚫리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단 그 한편으로는 조교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래와 사귀라고 밀어붙이는 낌새도 맡았다. 그 때부터 물 묻은 책상 모서리에 유리컵을 올려놓은 것 같은 불길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