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뒤에야 말콤 이병의 시체에서 피가 다 빠져나갔다. 그 때 연병장은 물론, 막사 안에도 병사들이 없는 걸 확인한 시몬즈 상사는, 말콤 이병의 시체를 천막 밖으로 내던졌다. 뒤이어 커스터 대령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온 뒤, 호루라기를 힘껏 불고 일부러 당황한 척하며 꼬리에 불붙은 소 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큰일 났다! 모두들 집합! 집합!”
커스터 대령의 호루라기 소리에, 숲 이곳저곳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더니. 병사들이 각자 뱀이나 쥐. 개구리 등의 작은 동물과, 잡초와 화려한 색의 버섯 등을 손에 든 채 연병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연병장 한 가운데 패대기쳐진 말콤 이병의 목 없는 시체를 보며 크게 놀랐다. 병사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커스터 대령은 간부들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사들을 총으로 겨눈 채 인간 울타리를 만들었다.
간부들은 일부러 큰 소리가 나게 노리쇠를 당겼다가 앞으로 놓았다. 병사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간부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간부들은 커스터 대령이 미리 말해둔 대로 눈이 보이지 않게 철모를 꾹 눌러쓴 상태였다. 그러자 병사들끼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비상사태라서 강경조치를 취한 것뿐이니까.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자네들한테 의사표시를 할 기회는 줄 것이고.”
커스터 대령은 호루라기를 입에 갖다 댄 채 한마디 덧붙였다.
“만약 지금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여긴다면 손을 들고 자기주장을 펴 줬으면 하는데.”
그러자 모두 입을 다물고 커스터 대령만을 쳐다봤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은근히 번져 나오려는 미소를 숨긴 뒤, 비통한 표정. 아니 억지로 웃음을 참는 비통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불만은 없는 것 같군. 그러면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겠다. 지금 바닥에 뒹굴고 있는 말콤 이병이 시체가 보이나?”
병사들은 여전히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말콤 이병의 시체를 쳐다본 뒤, 다시 커스터 대령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양초를 씹어 먹는 것 같았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호루라기를 힘껏 불어 그들의 시선을 고정시킨 뒤, 말콤 이병의 시체를 가리키며 목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외쳤다.
방금 전 빨갱이 놈이 몰래 숨어 들어와서 말콤 이병까지 죽였다!”
그러자 병사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서로를 노려봤다. 이에 커스터 대령은 소리죽여 웃은 뒤, 다시 한 번 침통한 척 하며 입술에 침을 발랐다.
“요즘 빨갱이들이 우리가 모으고 있는 식량을 몰래 훔쳐가는 정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래서 빨갱이들의 우두머리인 말콤 이병을 잘 설득시켜서 이 부대 안에 남아있는 빨갱이들을 전부 다 색출해낼 생각이었다.”
커스터 대령이 억지로 쥐어 짜내는 것 같은 투로 말을 마치자마자, 간부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간부들은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며,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안전장치를 풀었다. 병사들은 더욱 움츠려들어, 마치 만원 전철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서로 겹치고 부대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한 빨갱이 몇 마리가 몰래 말콤 이병을 죽이고 달아났다.”
커스터 대령이 말을 마치자마자 병사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당장에라도 씹어 먹을 것처럼 이를 드러내고 각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커스터 대령은 다시 한 번 목청껏 소리를 질러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을 모았다.
“모두 잘 들어라! 빨갱이 녀석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같은 편. 심지어 자신들의 우두머리의 목을 따는 놈들이다. 물론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참혹하게 죽일 것이라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병사들은 이미 자신들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때 커스터 대령은 입 꼬리를 쭉 찢어 올린 뒤, 주먹을 쥔 채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빨갱이들을 목격한 간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놈들이 달아난 곳은….”
병사들이 전부 커스터의 손끝을 쳐다보자, 커스터 대령은 주먹을 쥔 채 검지를 앞으로 쭉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곳이다! 빨갱이 놈들은 저 방향으로 도망쳤다.”
커스터 대령이 가리킨 곳은, 막사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있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