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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유리와 아테네의 블랙마켓 17 (0) 2013/06/17 PM 07:59
커스터 대령이 다시 눈을 떴을 땐 유리의 가게 안이었다. 커스터 대령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죽 둘러보았다. 커스터 대령은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워진 게 신경 쓰였지만, 그것보다는 난데없이 유리의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이 더욱 기분 나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드디어 계약이 무사히 만료되었군요. 다시 우리 가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의 귀에 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흘러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커스터 대령의 오른쪽 옆에 유리 스타크와 아테네가 서 있었다.

“이런 벌써 잊어버리셨다고 말하시지는 않겠죠? 몇 달 전에 당신에게 ‘복종의 호루라기’와 ‘약탈품 통조림’을 드렸던 유리 스타크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아가씨는 우리 가게의 유일한 직원인 아테네죠.”

커스터 대령은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게 아니라 왜 지금 너희들이 내 눈앞에 있냔 말이야!”

“이런. 이런. 계약을 만료하면 다들 이렇게 나온다니까. 아테네 그거 보여줘.”

아테네는 일부러 인상을 찌푸리는 척 하다가 씩 웃었다.

“으으 마스터도 참 악취미네요. 그런데 저도 그런 거 아주 좋아해요. 그럴 줄 알고 미리 준비해뒀죠. 짜잔!”

아테네는 발밑에 있는 검은 비닐봉투를 칼로 뜯어,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꺼냈다. 아테네가 꺼낸 것은 누가 뜯어먹다 남긴 것 같은 시체였다. 시체는 이미 썩기 시작했는지,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냄새를 피우고 주변에 파리가 들끓는 것은 물론. 오래되어 검붉은 색을 띤 살코기에 구더기가 마치 마블링처럼 깔려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커스터 대령은 계급장과 명찰. 인식표 등을 보고 이미 그게 자신의 시체인 줄 알았지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모르는 척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테네는 명찰을 떼서 커스터 대령의 가슴에 붙이며 한마디 했다.

“에이. 뭐긴 뭐겠어요. 대령님의 ‘시체’죠.”

커스터 대령은 자신의 명찰을 잡아 뜯어, 바닥에 던진 뒤 마구 밟아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이랑 대화를 할 수 있냔 말이야? 이건 꿈이라고 그냥 기분 나쁘기만 한 악몽이란 말이야! 난 죽지 않았다고 이 미친 년놈들아!”

유리는 피식 웃으며 빨간 점프슈트를 입은 파란머리 남자의 마네킹의 손에서 매그넘 자동권총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커스터 대령을 향해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기자, 대령의 가슴팍에 큼직한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커스터 대령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심지어 피나 육편 같은 것도 전혀 튀지 않았다.

커스터는 자신의 가슴팍에 뚫린 구멍을 한참 동안 내려 보다가,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며 괴성을 질러댔다.

“뭐, 뭐야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장난이라고!”

유리는 이마에 손을 짚은 상태로 폭소를 터트린 뒤, 간신히 웃음을 가라앉히고 한마디 던졌다.

“이미 죽은 사람이 또 죽는다고 달라질 건 없잖습니까?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시죠. 커스터 대령님.”

뒤이어 아테네가 커스터 대령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채 일 초도 지나지 않아 손을 치우자. 커스터 대령의 눈앞에는 유리와 아테네 대신, 온갖 흉측한 것을 죄다 뭉쳐놓은 것 같은 괴물 두 마리가 서 있었다.

“이래야만 믿겠어요. 대령님?”

그제야 커스터 대령의 머릿속에서, 계약서를 받기 전 유리와 아테네가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던 게 떠올랐다. 커스터 대령은 오줌 마려운 사람처럼 다리를 오므린 채 뒷걸음질을 치며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물러나라 이 더러운 악마 놈들!”

이에 유리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서 십자가를 꺼내 잘근잘근 씹다 뱉었고, 아테네는 폭소를 터트리며 성수 병을 꺼낸 뒤,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아직 입에 머금고 있던 성수를 커스터 대령의 얼굴을 향해 힘껏 내뿜었다. 성수는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아테네의 입에서 나오자,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커스터를 덮쳤다.

아테네는 몸에 불이 붙어 데굴데굴 구르는 커스터 대령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폭소를 터트렸다. 이에 유리가 앞으로 걸어 나와, 간신히 몸에 붙은 불을 끈 커스터 대령의 멱살을 틀어쥐며 씩 웃었다. 그 때 유리의 모습은 평상시의 곱고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었다.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본모습? 저희는 이게 본모습입니다만? 세상에 어떤 미친 사장이 영업사원을 구역질 나오게 생긴 놈들을 뽑아 쓴답니까? 혹시 당신 눈에는 천사가 악마로 보이는 게 아닙니까?”

그제야 커스터 대령은 모든 걸 다 포기했는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그대로 주저앉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너, 너희들이 악마라고? 그, 그러면 나는 지옥에 가는 건가?”

유리와 아테네는 각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뒤, 아예 무릎을 꿇고 바닥을 두들겨가며 한참 동안 웃어댔다. 그리고 유리가 눈물을 머금은 채 커스터 대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 지옥 말입니까?”

말문이 막힌 커스터 대령이 눈살을 찌푸리자, 유리가 다시 웃음을 참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하하 대령님 본모습을 드러내라는 소리도 그렇고. 너무 순진하게 살아오셨군요. 혹시 산타할아버지도 믿고 계신 거 아닙니까?”

커스터 대령은 여전히 할 말을 잃은 채 유리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고, 유리는 웃어대면서 커스터 대령의 턱을 손으로 잡고 억지로 돌렸다. 그 때 커스터 대령은 뱀 같은 유리의 눈빛에 겁에 질려 아래를 축축하게 적셨다.

“빨갱이 딱지만 붙으면 동족끼리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서로 물어뜯고 씹어 먹는 쓰레기나 만들어대는 병신이 지옥 말고 뭘 더 만들어내겠습니까? 지옥 말입니까? 바로 여기가 지옥이라고요 지옥!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네들이 만든 무기를 사용해서 지상을 불바다로 만드는 당신들이 바로 악마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으하하하!”

“그, 그러면 네놈이 원하는 게 대체 뭔데?!”

“이 계약서를 보시죠.”

유리는 커스터 대령에게 계약서와 돋보기를 내밀며, 계약서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계약서 끝부분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밑줄 부분이었는데, 유리가 그곳에 돋보기를 가져가자 아주 큼직한 글씨로 변했다.

‘계약 만료 후의 대가는 판매자에게 전부 위임된다. 제품에 하자가 없거나 판매자가 구매자를 기만하지 않은 이상 구매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커스터 대령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유리가 내민 계약서를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초승달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대가를 받을 때가 되었네요. 제가 원하는 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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