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주말을 이용해서 몰이 감상했음.
일견 명품 드라마로 불리는 한드에서의 미덕이라면 연기자의 연기나 촌철살인의 대사 등에서 공감을 찾았다면(대표적으로 인정옥 작가의 네멋대로 해라 정도?) 나인은 순수하게 각본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드라마다. 과거에 비슷한 느낌의 한드를 찾으라면 현재 상어를 집필 중인 김지우 작가의 부활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서사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어서 부활에서는 거의 모든 복선이 1화에 드러나고 하은(엄태웅)은 그 모든 정해진 길을 따라 결말로 치닫는 구조라면, 나인은 20년 전의 과거가 능동적으로 변화해 가며 현실에 영향을 끼쳐 극적인 반전을 만드는 구조다.
비슷한 소재의 드라마를 찾자면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되었었던 프로포즈 대작전과 소재가 상당히 흡사한데, 물론 드라마의 장르나 풀어나가는 방식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한정된 시간회귀의 기회(프로포즈 대작전에서는 결혼식장에서 소개되는 사진을 매개체로, 나인에서는 9개라는 한정된 수량의 향으로)를 가졌다는 것과, 과거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프로포즈 대작전은 대체로 불규칙적이지만 사진이 찍히는 순간 다시 현재로의 회귀, 나인에서는 향이 다 피워질 때까지의 30분 내외), 그리고 과거에서의 자신이 행적이 현재에 반영된다는 점 등, 비슷한 점이 많았다.
20년 전의 과거가 20년 후의 현재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오히려 두 연결된 시공간이 분리된 듯한 느낌을 준 것도 흥미로웠고, 후반으로 갈수록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루프물의 느낌을 주는 것도 굉장히 재밌었다. 19화에서 선우의 유언을 듣는 주민영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향을 사용하던 박선우는 드라마에서 모습을 감추고, 20화는 온전히 1993년도의 고등학생 박선우가 주인공으로 나타나는데, 이미 단죄되어 복수해야 할 최진철도 없고, 과거로 돌아갈 이유가 없는 박선우가 마지막에 결국 다시 네팔로 떠나게 되는 건, 향 자체가 스스로의 의지로 루프를 계속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서브컬쳐에 찌든 나는 이런 식의 해석밖엔 할 수 없나 보다.
개인적으로 정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지막에 나와 정우의 손을 잡는 늙은 선우의 모습은 이런 향의 의지를(향이 본인이라는 언급을 했으니, 결국 모든 업보를 해결한) 이겨내고 루프에서 탈출한 선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공중파보다는 케이블 드라마의 시대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