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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조금 답답해서 쓰는 넋두리 (0) 2015/11/07 PM 12:19
일단 그 게임이 둘로 나뉘기 전, 아마 2013년 정도부터 이미 한국어화는 결정이 되어 있었다. 기종은 PC를 포함해서 총 5기종.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어화는 그냥 성사되는게 아니고, 한국어화를 했을 때 그만한 수익이 발생을 한다는 근거가 있어야 개발진을 설득할 수가 있는건데, 5기종으로 낸다는 가정을 해야 그만한 수량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모자라서 아시아 지역도 함께 설득해서 중국어판, 한국어판을 합쳐서 수량을 늘렸고, 결국은 한국어화 약속을 받아냈다. 정말로 기뻤다.

그래서 조금씩 로컬라이징도 하면서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게임이 둘로 나뉘어졌다. 워낙 갑자기 결정된데다가 발매일이 급박해서 한국어화는 무리.

게다가 한 기종의 예측 수량이 워낙 적었던 탓에 이쪽은 발매 자체를 취소. PC는 아예 본사쪽에서 취소가 되었고 또 한 기종은 기기 발매일을 볼 때 낼 수가 없는 상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본사에서 해외쪽 지사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바람에 한국 지사 인원이 1/5로 줄어버렸다.

정말 어떻게든 해 보려고 어떤 곳에도 도움을 요청 해 보았으나 자신들이 취급하지 않는 기종으로도 나오니까 어렵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만 들었고, 나중에 후편이 나올 때에나 고려 해 보자는 소리를 들었다. 어쨌든 전편은 비한국어화에 비싼 가격으로 출시가 되어 욕만 된통 먹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을 수는 없어서 지속적으로 제작팀에 후편 한국어화에 관한 요청을 하고, 당장은 비한국어화가 이치에 맞을지 몰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한국어화 했을 때의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자료 등을 근거로 하여 겨우겨우 후편도 한국어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물론 이 시점에서도 발매 기종은 5기종으로 잡혀 있었다.

특히 나중을 생각하면 한국어화를 하는게 이익이 클 것이라는 근거는, 그 전에 발매되었던 HD콜렉션류 게임들 덕이 컸는데, 한 번 한국어화를 포기하니 그 타이틀 하나만 손해가 나는게 아니고 추후에 리마스터를 할 때에도 한국어화가 성사되기 어려워서 유저들을 계속 놓치게 되니. 어차피 나중을 생각하면 지금 해 놓는게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지만...

여하튼 그래서 한국어화는 계속 진행을 했다. 한국 지사 자체가 축소된 탓도 있지만, 본사에서도 다른 타이틀들을 다 취소했고 2014년에 나올 타이틀이 딱 두 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계속 후편 발매에 집중하면서 로컬라이징과 함께 마케팅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한국 지사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이미 한 번 구조조정을 당한 상태라서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했는데 없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본사에서 볼 때엔 1년에 겨우 게임 두 개만 발매하는데 사무실을 유지하고 인원을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8년 가까이 일하던 회사가 숫자놀음 하나에 없어진다는 것도 슬펐지만, 겨우겨우 성사시킨 내 마지막 게임만은 꼭 마무리를 하고 떠나고 싶었다. 딱 3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사무실은 닫아도 좋으니 집에서라도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미 번역도 꽤 진행이 되었고, 그 정도 기간이면 어떻게든 마무리를 하고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매일이 십여개월 후로 다시 더 밀려버렸다... 더 이상 내가 남아있겠다는 요청 자체가 어렵게 된 거다.

결국 사무실을 정리하고 모든 인원을 해고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 후에도 간간히 도움 요청이 왔다. 숫자만 계산하고 없애긴 없앴는데 일이 안되니 결국 손을 벌리는거다. 난 그래도 좋다고 계속 도움을 줬다. 마지막은 내 손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었기에.

그러다가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도움을 요청했었던 그 곳에서 번역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아니 예전엔 안 된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끼어드는지 이해가 안 갔다. 언제는 타 기종에도 발매되니까 어렵다고 하더니... 여하튼 그 곳은 인원도 풍부하고 번역 경험도 많으니 결과적으로는 그게 좋지 않나 싶긴 했다. 그만 둔 내가 참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또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곳이 한국어화 발표를 하기로 했다고. 그래서 발표를 봤다. 한국어화는 자신들의 독점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그 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노력했던 건 쏙 빼놓고 마치 자신들이 모든 걸 이루어 낸 것 처럼 발표가 되었다. 이건 정말로 충격이었다. 뒤통수를 맞아도 이렇게 호되게 맞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PC 등 다른 기종 발매 계획이 뻔히 잡혀있는데 독점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뭐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모든 사실을 밝히고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도 있었지만, 아직 게임은 나오지도 않았다. 괜히 억울함을 토로하자고 내 마지막 유산에 흠집이 나는게 싫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냥, 가만히...

내가 그토록 마무리 짓고 싶었지만 결국 손을 떼어야 했던 마지막 유산. 어제가 발매일이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게임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내 마지막 임무가 이렇게나마 세상에 선보이게 된 점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아아... 이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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