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 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를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렵지 않게 ‘오픈 월드 게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호평 이후 제작자들 사이에서 오픈 월드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임은 대부분 ‘모험’이라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매체이며, 오픈 월드 게임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구속이 최소화된 자유로운 ‘모험’에 대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험’이란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내려본 ‘모험’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험은 월드를 돌아다니면서 어려움을 헤치고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것
위 정의를 통해 모험을 구성하는 요소를 정리해보면 ⑴ 플레이어가 활약하는 월드, ⑵ 게임의 목적인 미션의 배치, ⑶ 게임이 들려주는 서사 구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며, 본 기사에서는 모험을 구성하는 위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이상적인 오픈 월드 게임의 디자인에 대한 고찰을 해봅니다. 본 기사에서는 오픈 월드를 모범적으로 구현해 낸 몇 가지 게임으로 1985년작 Ultima IV: Quest of the Avatar (이하 울티마4)와 2017년작 The Legend of the Zelda: Breath of the Wild (이하 젤다 야숨)을 예제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플레이어의 모험은 월드에 발을 들여 놓으며 시작됩니다. 월드는 플레이어의 모험이 시작이며, 플레이어의 모험담이 고스란히 담기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중요합니다. 게다가 오픈 월드일 경우 ‘이음새가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장르적 특징 때문에 월드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게임들에는 월드(혹은 맵)는 그 중요성에 비해 컨텐츠를 충분히 담고있지 못했으며, 단순히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적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평가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체로 모험을 하는 도중, 또 모험을 마치고 난 후 전체 월드의 지리에 대해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지 않았으며, 이는 나의 모험담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월드는 여러 개의 날씨, 지형적 특징을 가진 지역들의 모임입니다. 오픈월드 내에서의 플레이어는 지역간에 훨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을 충분히 경험하고 기억에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오픈월드 게임에서는 각 지역별 특징을 잘 살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역별 특징은 시각적인 특징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억에 남을 경험을 제공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각적인 특징 이외에 모험에 시련을 주는 장애물인 지형과 날씨같은 자연 환경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주어져야만 플레이어들은 각 지역에 대해 뚜렷한 기억을 담을 수 있습니다.
울티마4는 고전 게임이면서도 오픈 월드의 장점을 잘 살린 게임으로 월드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쓴 게임이었습니다. 울티마4에서는 지형들마다 이동 제약 및 전투시 패널티를 통해 각 지역마다 플레이어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플레이어는 모험을 할 때 이동이 힘든 지역, 지름길, 전투에 불리한 지역등이 이미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들의 기억속에 각인되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브리타니아 지리와 모험 경험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습니다. Castle Britannia에서 Bloody Plains로 이동할 때 큰 장애물인 북부 Serpent’s Spine 산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산맥을 관통하는 언덕길을 이용할 것인가 (루트 A), 아니면 산맥을 서쪽으로 우회하는 좀 더 안전한 풀밭을 이용할 것인가 (루트 B) 고민하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젤다 야숨에서는 시각, 날씨, 지형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랜드마크들은 서로 매우 다르고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 있어서 실제 모험을 할 때 가장 1차원적인 시각적 지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고 있습니다. 지대도 이러한 시각적 지표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전체 월드의 중앙은 낮은 평원으로, 평원을 둘러싼 주변 지역은 고지대가 배치되어 있어 다른 오픈 월드 게임들에 비해 ‘시각적’ 효과 뿐이 아닌 ‘기능적’ 효과까지 함께 주고 있다는 것은 월드 디자인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야의 확보가 기능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주는 게임이다보니 폭우 및 폭설 지역에서 플레이어에게 가해지는 시야 제한은 일종의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랜드마크들이 시야에서 흐릿해지면 플레이어는 방향 감각을 상실하며 (미니 맵을 없앤다면) 적들과의 조우는 훨씬 근거리에서 벌어지게 되어 악천후 지역 모험이 꺼려지게 됩니다. 특히 Hebra 북부 산악지역은 지금도 모험할 생각을 하면 끔찍할 정도입니다.
지형은 울티마처럼 플레이어의 안전과 이동 속도를 통해 제약을 가합니다. 길을 따라 여행하면 몬스터와의 조우 위험성이 낮으며 대부분 잘 닦인 길이기 때문에 말을 타고 쉽게 전투를 피할 수도 있으며, 안전지대인 마굿간에서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름길은 체력을 필요로하며 훨씬 강한 적들과의 조우 위험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게임은 이런 지역적 특징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플레이어 주도로 탐험을 하도록 유도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험에서 얻게 되는 경험은 다른 어떤 게임들에 비해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진 것 같습니다.
게임은 월드를 배경으로 플레이어의 모험 경험을 담습니다. 충분한 탐험이 가능한 자유로운 플레이 환경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강한 목표의식을 제공하는 것은 미션입니다. 미션은 게임 전반에 걸친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어떻게 디자인 되어 있는가에 따라 게임 플레이를 선형적으로도, 혹은 비선형적으로도 만들어주는 요소가 됩니다. 울티마4와 젤다 야숨의 미션 구성 디자인에서 매우 흡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수직적 단계가 없이 수평선상에 스토리를 끝내기 위한 주요 미션들이 배치가 되어 있다는 부분입니다.
젤다 야숨은 하나의 단순한 배경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100년 전 ‘칼라미티 가논’이 부활한 순간부터 세상에 풀려나는 것을 막고 있는 젤다 공주와 큰 상처로 100년간 치유의 잠에 빠져 있던 링크, 잠에서 깬 링크는 세상으로 풀려나려하는 칼라미티 가논을 막고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주요 미션들을 나열해 보자면 링크는 100년간 잠을 자면서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고, 잃어버린 힘을 다시 복원해야하며, 가논에게 통제권을 잃어버린 무기 4마리 신수의 통제권을 되찾아야하고, 전설의 검 ‘마스터 소드’를 얻어야 합니다. 모든 미션들은 수평선상에 배치가 되어 있으며, 그 덕분에 일정한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아 플레이어가 미션 수행 흐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울티마4는 이보다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젤다에서는 하나의 수평선 상에 미션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비해 울티마 4는 복수의 수평선들이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간추린 미션의 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단계 1: 8개의 룬을 수집한다.
단계 2: 8개의 만트라를 배운다.
단계 3: 8개의 사원에서 명상을 수행한다.
단계 4: 8개의 스톤을 찾는다.
단계 5: 3개의 열쇠(key)를 만든다.
어떻게 보면 전체 미션이 단수의 수평선 상에 놓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미션들이지만, 이들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인해 단계적 순차 접근을 요구합니다.
1. 사원에 입장하려면 ‘룬’이 필요하며, 사원에서 명상을 하려면 ‘만트라’를 알고 있어야 한다.
2. 3개의 열쇠는 8개의 스톤 중 3개의 스톤을 조합해 만들 수 있다.
3. 이들을 모두 완수하면 The Stygian Abyss에 들어가 Codex를 얻고 깨달음을 통해 아바타가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젤다에서도 ‘마스터 소드’ 획득은 단계가 필요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울티마4에 비해 구조는 훨씬 단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울티마4가 이런 수직적 미션으로 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항상 단계를 모두 완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룬과 만트라를 모두 얻기 전에 특정 사원을 열고 명상할 수 있는 해당 룬과 만트라만 얻어서 명상을 먼저 수행할 수가 있어 각 수직적 단계들의 집합은 교묘하게 서로를 넘나듭니다. 이런식으로 미션을 수평적으로 배치함으로서 플레이어는 선형적 플레이의 틀을 깨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며, 또한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 경험은 훨씬 복합적이고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미션의 배치는 게임이 가지는 서사의 구조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서사 구조가 플레이어를 선형적으로 끌고 다니는가 아니면 비선형적으로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하는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동안 오픈 월드 게임들은 선형적 메인 스토리 + 비선형적 서브 미션의 복합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런 이유로 게임 플레이는 전체적으로 선형적인 구조의 틀에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울티마4나 젤다 야숨의 서사는 제작자가 아닌 플레이어가 자신의 플레이 경험을 통해 만들어 가는 구조이며, 오픈 월드 게임에서는 좀 더 이상적인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의견이 나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것이 이상적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오픈 월드가 추구하는 자유로움을 생각해본다면 플레이어를 선형적 스토리의 레일 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모험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해 오픈월드 게임의 이상적인 디자인 방향을 살펴 봤습니다. 오픈월드 게임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통해 좀 더 우리 앞으로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아직까지는 실험적이고 더욱 발전이 필요한 장르이며,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아직까지 오픈월드 게임에는 기존 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게임 디자인의 구조와 공식들의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이상적인 오픈월드 게임으로의 진입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이런 잔재들 역시 짚어보면서 기존 게임들속에 존재하는 오픈월드 게임에 적합한 디자인들을 소개, 이상적인 게임으로 이들을 결합할 수 있는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제시해 봤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고찰이지만 이 글이 오픈월드 게임에 대한 논의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S. 처음으로 써 본 기사라 보완할 부분이 많은 미흡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미흡하게나마 오픈월드 게임 디자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와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보고자 작성한 글입니다. 더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