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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쏘가리의 추억 (6) 2013/05/27 PM 05:25

 한 지역의 하늘을 지키는 포대는 대체로 200 여명의 규모로 이루어진 외딴 독립부대지.
대대와 여단을 작은 도시에 비유하자면 포대는 한적한 시골 같은 작은 군부대야.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있어.

하루는 우리 포대에 신입 소위가 막 임관했어.
알다시피 소위는 장교계의 이등병이야. 회사로 치면 신입사원, 집안으로 치면 막내지. 실제로 나이도 어린 편이야.
그만큼 어리버리해. 그래서 짬 좀 찬 병사들은 이제 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소위를 놀려먹곤 하지.

점심 때.
한 병장이 막 식당에 들어서려는 소위에게 이등병이 모범으로 삼을 정도로 우렁찬 소리로 경례를 하더라고.
그 자세와 목소리가 어찌나 시원스러운지 멀리서 보는 내가 맞경례를 해주고 싶더라고.
경례를 받은 소위 기분은 어떻겠어?
‘아! 씨바 이 맛에 장교 하는구나!!’ 라는 표정이 읽힐 정도로 실실 쪼개더라고.
예측 하건대 그 소위 분명 다른 선임장교들 앞에서는 벌벌 떨며 지내고 있었을 거야.
본래 병사들 사이에서의 군기보다 하사관이나 장교들 사이에서의 군기가 더 빡세거든.
여하튼 소위는 좋아라 하며 경례를 받아줬지.
자기가 밑바닥인지 알았는데 이렇게 병사들이 치켜 올려주니 좀 기분 좋겠어?
그렇게 둘은 기분 좋게 경례를 나누고는 식당으로 들어갔어.

큰 부대는 사병과 간부의 식당이 나뉘어져 있지만 포대는 달라. 한 식당에서 밥을 먹지.
그래서 줄이 길고, 그 사이에 사병과 간부가 같이 줄을 서곤 해.
병장은 짬 좀 있고 해서인지 눈치 있는 후임 넘 몇 명이 ‘이제 오십니까?’라며 마치 잠시 자리를 뜨고 온 사람을 반기듯이 병장에게 새치기 자리를 만들어주더라고.

후임의 배려로 병장은 순식간에 짬밥을 푸고 자릴 잡았어.
소위는 줄대로 퍼서 2~3분 정도 뒤에 짬밥을 펐지.
소위가 막 밥 먹을 자리를 찾으러 가는 순간 갑자기 아까 경례를 한 병장이 일어서더니 소위에게 이러는 거야.

“어이쿠, 소위님 여기 깨끗한 자리 맡아놨습니다.”

소위는 잠깐 놀랬지만 곧 실실 쪼개며 고맙다고 하고는 병장이 의자를 빼준 자리에 앉았어.
그리고는 사병들과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하더라고.
그 때 난 잠시 고개를 돌려 창가 쪽 자리를 바라보았어.

창가 쪽에는 꽃병과 식탁보가 세팅 된, 약소하나마 약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리가 있어.
거기가 간부석이야. 식당은 같아도 간부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어.
거기에 작전장교(중위)가 앉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눈이 병장 옆에 앉은 소위의 등에 향해있더라고.
자신의 후임이 사병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아주 뜨겁고도 훈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 옆에서 포대장(소령)이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꽤나 기억에 남았어.

그날, 점심 이후로 작전장교와 소위의 모습을 못 본 거 같아.
그 사람들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상황실에도 안 나타나더라고.
우리들은 직감했지
‘좃뺑이 치겠네.’

 다음날.
소위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어.
그런데 다리를 좀 절더라고. 작전장교가 신중하게 귀여워해준 모습이 눈에 선했지.
여하튼 그 소위는 계급에 걸 맞는 행동을 하라고 주의를 받지 않았나 싶어.
그 날 이후, 소위는 병사들하고 한 마디도 안 하려고 하더라.
대신 경례를 안 하고 지나가는 병사들에게만은 불러 세워 경례를 시키더라고.
짬 좀 찬 상병 이상의 병사들은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불쌍해서라도 경례를 해줬지.
예의 그 병장은 어땠냐고?
여전히 그 소위만 보면 큰 소리로 경례를 해줘.
심지어 포대장에게 할 때보다 더 크게 해.

***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하튼 소위는 그 와중에서도 이거 하나는 깨달은 거 같아.
경례를 받음으로써 계급간의 상하를 구분 짓자. 선을 긋자.
병사들에게 경례를 시키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겠지.
하사나 중사는 포대장 성격을 아는 지라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하더라고.
포대장의 지랄이 짜증나서 같잖은 소위라도 경례를 해주는 거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여단인가? 사령부인가?
하여간 상부에서부터 장병들의 스트레스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주임원사 한 분이 방문을 했어.

대체로 이런 원사들은 50세 이상인 경우가 많고 하사관뿐 아니라 장교의 인사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더군.
그 사람이 보좌하는 장군들에게 ‘여기 병사들 스트레스가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포대장에게 문제가 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날로 우리 부대 포대장은 옷 벗는 건 물론이고 영창까지도 갈 수 있다더라고.
그 주임원사가 예의 그 신참 소위하고 관사 입구에서 딱 마주친 거야.
주임원사는 마침 옆에 있는 우리부대 다른 하사관들이랑 얘기를 하느라 소위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어.
어쩌면 외딴 포대 소위 따위는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을 위치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저기 원사님.”

소위가 지나가는 원사를 부르더라고.
원사가 돌아보았어.

“원사님. 왜 경례를 안 하십니까?”

나이만을 배려한 소위의 존대에 막상 원사보다 옆에 있는 우리부대 하사관들 표정이 가관이었어.
뭐라 형용하기 힘든데, 여하튼 만화에서나 볼 듯한 표정이었지.
반면 원사 분께서는 정말정말 인자하신 얼굴로 허허허 웃으시더라고.
그리고 자기 자식뻘인 소위에게 멋들어진 경례를 해주셨지.

그 때 그 장면을 목격한 우리부대 최고연장자 준위 한 분이 포대장실로 뛰어들어가더라고.
머리도 희긋한 분이 참 잘 뛴다 싶었는데, 잠시 후 포대장실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포대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조낸 뛰어 내려가더라.
포대장이 전력질주 하는 걸 본 게 아마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그날 저녁.
취약시간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주임원사의 경례를 받은 소위가 완전군장 차림으로 알파와 브라보 사이의 골짜기를 열심히 뛰고 있더라고.
그 소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땀인지 눈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가 참으로 애처롭더군.
그래서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내 후임에게 가서 말했지

“저기 저 소위님이 지나가면 큰 소리로 응원을 해드려라.”
후임 녀석은 소위가 지나갈 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어.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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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퇴고를 거쳐도 어딘가 미묘한데.

수지가이쁘다    친구신청

원사보고 경례하라고 시키는 물소위가

존재하긴 했군요...

잡았다요놈!    친구신청

상사 원사하고 근무서면서 막걸리 소주 꺽던 우리 소대장이 생각난다

Stuck    친구신청

오늘도 포대는 평화롭습니다.
...라는 거죠. ㅡㅡ

난핸들이고장난    친구신청

어쩐지저녁 1편 보스 이름이 쏘가리

Stuck    친구신청

어쩐지 턱이 아파오는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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