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의 하늘을 지키는 포대는 대체로 200 여명의 규모로 이루어진 외딴 독립부대지.
대대와 여단을 작은 도시에 비유하자면 포대는 한적한 시골 같은 작은 군부대야.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할 때가 있어.
하루는 우리 포대에 신입 소위가 막 임관했어.
알다시피 소위는 장교계의 이등병이야. 회사로 치면 신입사원, 집안으로 치면 막내지. 실제로 나이도 어린 편이야.
그만큼 어리버리해. 그래서 짬 좀 찬 병사들은 이제 막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소위를 놀려먹곤 하지.
점심 때.
한 병장이 막 식당에 들어서려는 소위에게 이등병이 모범으로 삼을 정도로 우렁찬 소리로 경례를 하더라고.
그 자세와 목소리가 어찌나 시원스러운지 멀리서 보는 내가 맞경례를 해주고 싶더라고.
경례를 받은 소위 기분은 어떻겠어?
‘아! 씨바 이 맛에 장교 하는구나!!’ 라는 표정이 읽힐 정도로 실실 쪼개더라고.
예측 하건대 그 소위 분명 다른 선임장교들 앞에서는 벌벌 떨며 지내고 있었을 거야.
본래 병사들 사이에서의 군기보다 하사관이나 장교들 사이에서의 군기가 더 빡세거든.
여하튼 소위는 좋아라 하며 경례를 받아줬지.
자기가 밑바닥인지 알았는데 이렇게 병사들이 치켜 올려주니 좀 기분 좋겠어?
그렇게 둘은 기분 좋게 경례를 나누고는 식당으로 들어갔어.
큰 부대는 사병과 간부의 식당이 나뉘어져 있지만 포대는 달라. 한 식당에서 밥을 먹지.
그래서 줄이 길고, 그 사이에 사병과 간부가 같이 줄을 서곤 해.
병장은 짬 좀 있고 해서인지 눈치 있는 후임 넘 몇 명이 ‘이제 오십니까?’라며 마치 잠시 자리를 뜨고 온 사람을 반기듯이 병장에게 새치기 자리를 만들어주더라고.
후임의 배려로 병장은 순식간에 짬밥을 푸고 자릴 잡았어.
소위는 줄대로 퍼서 2~3분 정도 뒤에 짬밥을 펐지.
소위가 막 밥 먹을 자리를 찾으러 가는 순간 갑자기 아까 경례를 한 병장이 일어서더니 소위에게 이러는 거야.
“어이쿠, 소위님 여기 깨끗한 자리 맡아놨습니다.”
소위는 잠깐 놀랬지만 곧 실실 쪼개며 고맙다고 하고는 병장이 의자를 빼준 자리에 앉았어.
그리고는 사병들과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하더라고.
그 때 난 잠시 고개를 돌려 창가 쪽 자리를 바라보았어.
창가 쪽에는 꽃병과 식탁보가 세팅 된, 약소하나마 약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리가 있어.
거기가 간부석이야. 식당은 같아도 간부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어.
거기에 작전장교(중위)가 앉아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눈이 병장 옆에 앉은 소위의 등에 향해있더라고.
자신의 후임이 사병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아주 뜨겁고도 훈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 옆에서 포대장(소령)이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꽤나 기억에 남았어.
그날, 점심 이후로 작전장교와 소위의 모습을 못 본 거 같아.
그 사람들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상황실에도 안 나타나더라고.
우리들은 직감했지
‘좃뺑이 치겠네.’
다음날.
소위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어.
그런데 다리를 좀 절더라고. 작전장교가 신중하게 귀여워해준 모습이 눈에 선했지.
여하튼 그 소위는 계급에 걸 맞는 행동을 하라고 주의를 받지 않았나 싶어.
그 날 이후, 소위는 병사들하고 한 마디도 안 하려고 하더라.
대신 경례를 안 하고 지나가는 병사들에게만은 불러 세워 경례를 시키더라고.
짬 좀 찬 상병 이상의 병사들은 가소롭다고 생각했지만 여하튼 불쌍해서라도 경례를 해줬지.
예의 그 병장은 어땠냐고?
여전히 그 소위만 보면 큰 소리로 경례를 해줘.
심지어 포대장에게 할 때보다 더 크게 해.
***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하튼 소위는 그 와중에서도 이거 하나는 깨달은 거 같아.
경례를 받음으로써 계급간의 상하를 구분 짓자. 선을 긋자.
병사들에게 경례를 시키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겠지.
하사나 중사는 포대장 성격을 아는 지라 굳이 말 안 해도 알아서 잘 하더라고.
포대장의 지랄이 짜증나서 같잖은 소위라도 경례를 해주는 거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여단인가? 사령부인가?
하여간 상부에서부터 장병들의 스트레스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주임원사 한 분이 방문을 했어.
대체로 이런 원사들은 50세 이상인 경우가 많고 하사관뿐 아니라 장교의 인사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더군.
그 사람이 보좌하는 장군들에게 ‘여기 병사들 스트레스가 심각합니다. 아무래도 포대장에게 문제가 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날로 우리 부대 포대장은 옷 벗는 건 물론이고 영창까지도 갈 수 있다더라고.
그 주임원사가 예의 그 신참 소위하고 관사 입구에서 딱 마주친 거야.
주임원사는 마침 옆에 있는 우리부대 다른 하사관들이랑 얘기를 하느라 소위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어.
어쩌면 외딴 포대 소위 따위는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을 위치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저기 원사님.”
소위가 지나가는 원사를 부르더라고.
원사가 돌아보았어.
“원사님. 왜 경례를 안 하십니까?”
나이만을 배려한 소위의 존대에 막상 원사보다 옆에 있는 우리부대 하사관들 표정이 가관이었어.
뭐라 형용하기 힘든데, 여하튼 만화에서나 볼 듯한 표정이었지.
반면 원사 분께서는 정말정말 인자하신 얼굴로 허허허 웃으시더라고.
그리고 자기 자식뻘인 소위에게 멋들어진 경례를 해주셨지.
그 때 그 장면을 목격한 우리부대 최고연장자 준위 한 분이 포대장실로 뛰어들어가더라고.
머리도 희긋한 분이 참 잘 뛴다 싶었는데, 잠시 후 포대장실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포대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조낸 뛰어 내려가더라.
포대장이 전력질주 하는 걸 본 게 아마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그날 저녁.
취약시간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주임원사의 경례를 받은 소위가 완전군장 차림으로 알파와 브라보 사이의 골짜기를 열심히 뛰고 있더라고.
그 소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땀인지 눈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가 참으로 애처롭더군.
그래서 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내 후임에게 가서 말했지
“저기 저 소위님이 지나가면 큰 소리로 응원을 해드려라.”
후임 녀석은 소위가 지나갈 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어.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