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10:30 정도가 되어서 뉴욕 돈까스 쪽으로 향했습니다.
강화읍은 7~80년대 거리 느낌이라 이런 골목길이 자주 보입니다.
이런 길을 가는 이유는 이곳에 조봉암 선생님의 생가 터가 있다고 해서입니다.
그런데….
생가 터가 안 보입니다.
분명 네비는 여기인데 안 보입니다.
그러다 겨우 발견했습니다.
강화읍사무소 근처.
마치 주차 표지판철머 장애인 표지판 옆에
[조봉암 선생] 생가 터라 쓰인 비석이 있네요.
이게 뭥….
저거 말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진짜 저게 끝이에요.
사실 상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의 기반을 닦은 위대한 업적이 농지개혁입니다.
최근 이승만 추켜 세우면서 농지개혁을 얘기하는데.
그 농지개혁을 실행한 사람이 조봉암 선생입니다.
이승만 집권 시기에 조봉암 선생님이 이루어낸 업적입니다.
그렇게 농지개혁 얘기하면서, 조봉암 선생 취급이 영 별로네요.
하긴 이승만이 사법살인을 했다는 얘기가 있으니…
에휴.
보시다시피 저기 읍사무서 건물 오른쪽에 초라하게 있는 비석입니다.
주차장 한 켠에 있는 비석이니 못 찾을만 하죠.
지금은 운치 있는 사잇길이지만, 옛날에는 담배피던 무서운 형아들이 앞뒤로 길막하고 통행료 내라고 할 거 같은 길이네요.
뉴욕 돈까스에서 100 미터도 안 되는 곳에 용흥궁이 있습니다.
궁전이라고 해도 대단한 것은 아니고,
잘 보존된 한옥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네요.
마당의 진흙이 좀 아쉽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땅이 젖어도 빠지지 않게,
자갈이나 긴 돌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서 빠지지 않는 길이 있곤 했는데.
여기는 없네요.
별채가 훤히 보이는 주인 어르신 시선으로 찍어봤습니다.
시골에서는 저기에 불 때면 아랫목이 따뜻했죠.
화장실이 아니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는데.
굳이 저 문구가 붙은 이유를 생각하면… 조금 한심한 인간이 있었나보네요.
주변에 술집이 많아서 그런가?
소화기의 필요성은 알겠는데.
주변 분위기랑 좀….
몰래 들어갈 뒷문 같지만, 시골에서 저런 문은 환기할 때만 열었던 거 같네요.
여름에 앞문과 뒷문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겠죠.
조상님이나 부모님을 모시든 작은 사당같은 게 아닌가 싶군요.
여기도 불떼면 따뜻하겠죠.
추운 차 안에서 차박해서 그런가 자꾸 아랫목이 땡기네요.
진흙이 싫군요.
궁에서 나와 조금 떨어져서 찍어봤습니다.
여기서 뒤돌아 보면 뉴욕 돈가쓰 집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