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뻑 가게한 위조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
-자신의 과오를 바로 잡으려는 주인공-
-풍림각 액션씬은 지금봐도 정말 잘 빠졌다.-
먼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웅본색>은 리메이크영화다. 골든하베스트에서 코미디영화들을 감독하던 오우삼은 드디어 자기 스타일의 액션영화를 꿈꾸게 되는데, 당시 신흥영화사 시네마시티의 지원으로 ‘전영공작실’을 차린 후배 서극을 만나게 되고, 이내 용강 감독의 흑백영화 <영웅본색>(1967)을 영화화하고자 의기투합한다(원작의 영어제목은 ‘A Better Tomorrow’가 아닌 ‘Story of a Discharged Prisoner’다).
거의 10년 넘게 감옥에 있다 출소한 한 남자(<영웅본색>의 적룡)가 그를 다시 조직으로 끌어들이려는 보스, 그리고 경찰인 동생(<영웅본색>의 장국영)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원작과 비교하면 주윤발 캐릭터가 굉장히 커진 셈인데, 원작에서의 주윤발의 역활은 두 형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직장여성이었다고 한다.
형제의 정을 넘어서서 남자들의 우정을 포괄한 영화가 된 것이다. 또한 그 당시 홍콩에 살면서 오우삼이 느꼈던 사회적 위축감 등을 주윤발 캐릭터에 모두 쏟아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을 맡은 사현이 바로 장백지로 인해 상처가 컸을 사정봉의 아버지이자, <소림축구>에서 선글라스를 낀 악마팀 감독을 연기한 배우였다는 사실이다. 악당 보스는 바로 <용쟁호투>(1973)에서 섬의 주인 ‘한’을 연기한 석견이었다.
이 작품에서 오우삼이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앞서 깡패들의 세계의 매력 또는 진실을 파해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진정으로 매력을 느끼는 남성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다. 어린 시절 빈민가에서 자랐다는 오우삼은 깡패들과 재난들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무수히 봐왔다고 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 곳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진짜 현실 속 깡패들의 실상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그들의 구질구질한 세계를 다룬다는 것에 있어서 매력을 느꼈을리가 만무하다.
오우삼은 그의 모든 영화들 속에서 항상 폭력이 패배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그는 깡패들의 제멋대로인 삶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과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미덕의 매력을 보여주려하고 있다. 오우삼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항상 추구하는 것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문화, 다양한 성격, 다양한 이상 등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다르지만 거기에 공통된 점을 추구하는 것이 있는데 오우삼은 이 것이 사랑, 도덕심, 정의에 대한 믿음, 세상의 아름다움 등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항상 이러한 것들을 중심으로 다뤄내려 한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오우삼은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하고 있다. 고대 무사도, 사무라이의 정신, 프랑스의 로맨틱함을 숭배하는 진정한 호걸은 마치 가을 나뭇잎처럼 들어왔다 나가는 것으로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명성은 그에게 있어서 중요치 않은 것으로 오로지 그의 행위 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는 그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삶조차도 말이다. 정의와 의리, 사랑 그리고 그의 조국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의 삶은 구름과도 같아서 언제라도 즉시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오우삼은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비록 그 것이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영웅본색은 여지껏 오우삼이 만들어 온 영화들 중에서 각본이 가장 탄탄한 작품같다. 대부분의 오우삼 영화들이 추구하는 영화 속 주제를 그저 감각적인 스타일로 대충 얼버무린데 비해 이 작품에서 그는 극적인 인물관계와 탄탄한 드라마를 통해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주제는 흔희들 사나이들 간의 의리라고 알려졌는데, 솔직히 그 것은 내 생각에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만약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 주윤발이라면 그런 주제가 성립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실상 주윤발이 아니고, 영화의 내용도 적룡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책임감이 있는 한 남자의 역경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살면서 항상 옳은 결정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항상 의도치않게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대체로 손해를 자처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진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도 그런 용기의 미덕 때문일 것이다. 오우삼은 이 작품을 통해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들이 불리해진 상황에서 도망침으로 인해서 보다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도망치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비극적인 상황 속으로 빠져든다. 적룡이 그 때 태국에서 끝까지 도망쳤다면 또 주윤발이 적룡을 뒤로한 체 떠났다면 그들의 삶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더 나쁜 선택이란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들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남들의 시선과 자신의 평판 때문이 아니다. 이들에게 남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 자신 만의 신념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다. 주인공이 쉽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는 것은 사실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항상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늘 무책임한 사람들로부터 이용당하려 들게 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현실세계에서 책임감 있는 사람은 대접받기가 쉽지 않다. 이는 오우삼의 말처럼 남들이 제대로 알아 주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본 사람 중에서도 또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람들 조차 이들이 지닌 책임감의 위대함을 모를 수 있다. 그저 우리 편끼리는 끝까지 돌봐주는 조직 내 의리에만 매료된 이들도 있다. 사실 범죄자들에게 의리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 것이 깨지면 그들의 삶도 파탄나기 때문이다. 거기에 진실성과 순수성은 없다. 하지만 범죄자에게 책임감이 있다면 그 것은 범죄자라 할지라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 영화의 주요내용은 자신이 그 동안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한 남자의 고난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를 저버리게된 주인공은 어느 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부터 깨끗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그러기에는 그 동안 자신이 저질러 놓은 잘못이 너무 컸고, 그러한 그의 과거들이 현재의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다시 과거의 화려했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어느 정도 복귀하려는데 있다.
영화는 과거 깡패였던 형과 현재 경찰이지만 형으로 인해 진급이 누락되고, 또 가족을 잃은 동생의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형은 과거를 청산하고 깨끗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동생은 형을 불신하고 조직에서는 과거 한 번 그를 잔인하게 이용해 놓고, 이번에도 또 뻔뻔하게 그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그의 동생을 자신들의 끄나풀로 사용하기위해 주인공을 스토킹하는 것이다. 거기에 그를 위해 복수를 해줬다가 지금은 폐인이 되버린 동료도 있다. 그 동료는 화려한 복귀를 꿈꾸지만 주인공이 그를 위해 진정으로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은 매우 곤란한 위치이다.
영웅본색은 액션이 그렇게 난무하는 작품이 아니다. 이후로 만들어지는 오우삼의 다른 여러영화들과 비교해보아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액션 씬의 강도나 분량에 있어서 비교적 상당히 적은 분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액션씬들은 비교적 오우삼 특유의 액션에 있어서 아직은 약간 비교적 미숙한 시작단계 임에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액션씬들이 매우 드라마틱한 극의 흐름과 잘 조화를 이뤄 극적효과를 배가시키는데 아주 효율적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했던 액션씬은 아무래도 초반 주윤발이 풍림각에서 배신자들을 소탕하는 장면일 것이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남자들을 총으로 화끈하게 쏴죽이는 장면을 마치 페킨파처럼 슬로우 모션과 리듬감있는 편집을 사용해가면서 멋지게 표현했는데, 오우삼이 자신의 액션씬에서 슬로우모션을 사용하는 것은 알려진 바와 같이 우아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폭력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대면하길 꺼려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다루면서 때론 낭만적으로 포장한다.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 또는 영웅들은 강한 의지와 수양을 통해서 폭력과 불의를 향해 싸우는 자로 그는 이 작품에서 폭력을 통해 인간미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액션을 만화나 조심스럽게 안무된 뮤지컬처럼 표현한다고 한다. 그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는 폭력의 추한 면모로 주인공을 물들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덕분에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정말 멋지게 싸운다.
캐릭터는 현실적이지만, 액션은 허구스럽게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액션을 통해서 폭력을 표출하기보다는 주인공의 영웅성을 표현하려 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가지 주요 액션씬들 모두 공통점이 그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멋진 면모를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그 동안 비참하게 기도 못피던 주윤발이 적들을 화려하게 쓸어버리는 부분만 봐도 이 부분에서 확실히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켜주었다. 그 부분에서 오우삼은 대량학살의 통쾌함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주윤발의 숨겨진 영웅적인 면모를 이끌어낸 것을 통한 통쾌함을 원했던 것이다. 바로 진정한 영웅에 화려한 복귀 말이다.
오우삼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늘 삶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항상 대량학살을 등장시키는 감독으로 악명높은 그로서는 의외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는 늘 폭력을 사용한 자들이 그로 인해서 패배를 거듭한다는 내용을 다루려한다고 한다. 다른 시기 작품들은 몰라도 그의 80년대 영화들은 특히 그런 특징이 도드라졌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는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의 패배를 유치하게 권성징악의 논리가 아닌 삶의 아이러니한 면모를 통해서 잘 보여줬다.
오우삼은 자신이 액션영화 감독으로 인식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자신은 언제나 인간미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갱스터 영화나 액션영화보다는 그의 그런 개성이 잘드러난 작품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갈등이 이 작품의 중점으로 여기서 갱사업이나 액션은 그렇게 중심적 요소는 못된다. 하지만 시종일관 이야기는 드라마틱함과 긴장감을 잘 유지시키며 전개됐다.
이 작품은 오우삼에게 있어서 당시 새로운 시도였다. 기존의 그가 만들어 왔던 영화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였었는데, 일단 연출면에 있어서도 이 작품 이전에 그가 만든 영웅무류와 비교해도 여러모로 세련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감각적이고 새련된 스타일을 보여줬다. 미술부터가 상당히 깔끔한 것이 칙칙하고 암울한 갱스터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세트를 비롯한 미술부터가 기존의 범죄영화에서처럼 구질구질한 것들이 아닌 80년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음악도 좋았다. 피터 가브리엘이 알란 파커 감독의 버디를 위해 작곡한 곡을 도용해서 쓴 부분도 아주 좋았다. 버디 때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해줬던 강렬한 음악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장면을 매우 돋보이게 해줬다.
원래 이 작품은 오우삼이 당시 점차 하락해가던 적룡의 전성기를 다시 되찾아 줄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을 주윤발로 알고 있을 정도로 이 영화를 통해서 주목받은 이는 정작 주윤발이였다.
영웅본색 이전까지 주윤발은 대체로 TV스타로 유명했지 영화로서는 그렇게 흥행력이 있는 배우는 아니였다고 한다. 당시 오우삼은 주윤발이 맡은 캐릭터가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 연기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때마침 그는 신문에서 주윤발이 고아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 그는 주윤발을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랐었지만, 이러한 점. 바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강한 남자이기에 그를 캐스팅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그가 그 캐릭터에 부합한 배우 이미지는 캐리 그랜트,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랑 드롱, 험프리 보가트 등이였다고 한다. 그는 이들의 모든 면모를 주윤발을 통해서 봤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 작품은 주윤발의 명백한 출세작은 아니다. 어떻게보면 존 트라볼타와 비슷한 논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존 트라볼타도 오우삼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스타였다. 토요일 밤의 열기로 이미 젊었을 때 한 번 날렸고, 또 펄프 픽션과 겟 쇼티로 그 때 당시 이미 다시 재기했었다. 하지만 그가 오우삼을 만나면서 블럭버스터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 임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대중성을 가짐을 증명시킬 수 있었듯이 주윤발도 이전에도 활발히 활동했고, 홍콩에서 인지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이후로 모두들 그와 일하고 싶어하는 배우가 돼었으며 무슨 영화를 찍던 일단 주윤발부터 섭외하고 보게 됐었다.
한 때 오우삼은 할리우드에서 잘나갈 때 아마존 레인포레스트에서 자신의 약점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투쟁을 벌이는 5명의 남자들에 관한 얘기를 만들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작품은 마이클 치미노가 각본을 맡으면서 다시 그가 영화계로 복귀하려고 하는 작품으로 로저 에버리와 함께 집필한 각본이기도 했다. 풀 써클'Full Circle'이란 제목으로 그는 첩혈쌍웅과 같은 스타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항상 할리우드에서는 성사되는 계획보다 실패되는 계획이 훨씬 많았다.
특히 9/11 사태 이후 당시 미국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게 폭력을 조장한 원인이라고 공격을 많이 했었나 보다. 그 때부터 그는 폭력을 표현하는데 있어 더욱 거부감이 심해졌다고 한다. 게다가 그의 액션 스타일은 지금 너무나도 많이 모방되고 있어 식상한 액션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오우삼은 근래 들어 인터뷰에서 자신이 하드보일드 영화로 다시 과거의 명성을 누리긴 어려울 것이란 것을 자신도 안다고 했다. 어쨌든 한 때 그의 열렬했던 팬으로서 그의 헐리우드 진출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지만 지금 부진한 것에 대해선 심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