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출신의 부모 밑에서 자란 홍금보는 10살때부터 경극을 배웠으며 <애적교육>에 아역으로 출연했다. 성룡과 원표와 더불어 현재 홍콩영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른바 '칠소복' 출신이다.
어린시절 유명한 북경경극학원에 입학하여 그 또래에서는 보스노릇을 한다. 성룡자서전을 보면 어린 시절 홍금보에게 정말 많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까지 한다.
칠복성이란 이름으로 경극공연을 하던 홍금보는 그만 발목부상을 당하고 만다.그래서 병원에 입원하는데 그 와중에 체중이 엄청 불게 되어 부득이 경극학교에서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영화계에 투신, 어린나이에 스턴트맨이자 무술감독으로 명성을 쌓아간다.호금전 영화에서 주요 스텝으로 활동했고 이소룡에게 발탁되어 <용쟁호투>에서 오프닝 액션씬의 상대가 될 정도로 성장한다.
이 때만 해도 홍금보, 원화가 제일 잘나가는 축이었고 원표, 성룡, 임정영 등은 이소룡 영화에
그저 살짝 얼굴만 비출 정도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소룡이 영화촬영시 스텝들에게 자꾸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여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홍금보가 골든하베스트사 사무실에서 결투신청을 하여서 약식 영춘권으로 실제 대련을 했다고 하는데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다.(성룡 자서전에서 소심하게 언급한 사실)
바로 인중의 흉터가 '스트리트 파이터'시절 상대에게 깨진 콜라병으로맞아서 생긴 상처이니 젋어서는 한 성질 한것 같다.
1978년 맥가, 유가영과 합작으로 가보 영화사를 설립했고 뒤어어 보상영화사, 보화영화사를 설립해 고전적 액션 영화에 공포와 코미디가 결합된 혼합장르 <귀타귀>로 성공을 거둔다.
홍금보는 홍가반을 조직해서 홍콩 액션영화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스턴트팀을 꾸린다.
홍가반 출신은 전가락, 주비리, 원표, 원화 등으로 80년대를 성룡의 성가반, 원화평의 원가반과 더불어
사실상 삼등분 하며 액션 영화계를 이끌어 간다.
홍금보는 2살 아래 동생이자 영원한 라이벌 성룡과는 애증의 관계인데 미국진출실패에 주춤해져 있던 성룡에게 <오복성>에 참여하게 해 원표와 함께 '가화삼보' 합작의 성공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성공이 크다보니 <비룡맹장>이후 성룡과 사이가 조금 틀어져 한동안 작업을 하지 않다가 홍금보가 영화
제작을 포기한 90년대 이후 <썬더볼트>의 액션연출을 맞기전까지함께 작업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룡이 항상 차기작으로 염두해 두었던 미국서부시절로 간 중국무사의 스토리를서극이 이연걸과 함께 <황비홍지서역웅사>가 베꼈고 이 영화의 감독을 홈금보가 맡으면서 완전히 사이가 멀어져 버렸다. 후에 홍금보가 성룡에게 결국 사과한다.(결국 이 계획은 상하이눈으로 실현된다)
성룡이 자신을 스타로서 만들기를 좋아한다면 일찍이 배우보다 무술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선지 본인보다 남을 밀어주기를 좋아하는데 양자경을 발굴해 원규등과 '마담 시리즈'를 만든것도 홍금보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예전만 못한 성적을 올리다가 성룡의 <홍번구>의 대성공 이후 당겨례와 함께 한 <동양특급 로형사>라는 TV 시리즈는 시즌2까지 제작되어 미국에 얼굴을 알렸고 성룡과의 합작, 서극의 <넉오프>의 무술감독 등으로 반짝 했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고 만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의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의견차이로 중도에 하차하고 만다.(<쿵푸허슬>에서 초반 돼지촌에서의 액션장면과 음공의 고수와 벌이는 결투장면이 홍금보가 연출한 것이다.)
이렇게 긴 슬럼프 끝에 드디어 견자단과 <살파랑>을 만들며 엄청난 카리스마를 뽐내며 제2의 전성기를 알린다.
최근 사망설이다 뭐다 해서 악재가 있었지만 또다시 견자단과 함께한 <엽문>에서 무술감독을 맡아 건재를 알린다.